어느 사제의 고백
어느 사제의 고백
성목요일을 맞아 성남 ‘안나의 집’을 맡고 계시는 김하종 빈첸시오 외국인 신부님의 글을 옮겨 싣습니다. 안나의 집은 노숙인, 가출청소년, 난독증 장애인 등을 보호하고 상담 치료하는 곳입니다.
저, 김하종 빈첸시오 신부는 장애를 가진 사람입니다. 네, 정말입니다. 저는 난독증을 겪는 장애인입니다. 난독증이란 읽는 것이 어렵거나, 각 낱말들은 다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해도 텍스트의 전체적인 뜻을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는 장애입니다.
학창시절에 저는 이 장애 때문에 정말 고통스러웠고 좌절감도 깊이 느꼈습니다. 저는 학우들보다 몇 배나 더 책을 오래 읽고 노력을 많이 하였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암기하기 어려웠고 오래 집중하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서서히 나의 머릿속에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 것은 내가 어쩌면 바보이고 정신적으로 뒤쳐지고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제 자신이 다른 학우들을 따라가지 못하는 멍청하기 짝이 없는 사람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못하다는 강한 열등감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매우 고통스러웠고 그 고통 속에서 저는 점점 제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 고통 덕분에 저는 단단해졌고 현재의 제가 되었습니다. 저는 제 목표를 실현했습니다. 그렇게 원하던 목표였습니다. 어려움을 겪는 꼴찌들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신부가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여러 번 제 자신에게 되물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버림받은 사람들한테 전념하는 걸까? 왜, 고등학교 다닐 때도 그렇게 많은 시간을 봉사활동에 투자했을까? 다른 친구들처럼 신나게 놀러 다닐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신부가 되었을 때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복음화’라는 카리스마를 가진 성모 마리아의 오블라띠 수도회를 골랐을까? 좀 더 평범한 수도회도 있었을 텐데....... 왜, 한국에 오자마자 많은 노력과 희생을 바쳐서 독거노인과 버림받은 청소년들, 거리에 사는 사람들에게 전념했을까? 똑같이 아름답지만, 덜 힘든 사제직을 고를 수도 있었을 텐데....... 왜 노숙자들, 정신지체아들, 교도소에 있는 젊은이들과 동고동락하면서 살아야하나, 왜 ....... 왜 그럴까?”
아마도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서 심히 고통스러웠고, 그 고통이 저의 영을 섬세하게 만들고 제 머리를 예민하게 만들었습니다. 바로 그 고통이 저를 이렇게 다듬어주었습니다. 심각한 이유로 고통 받는 사람을 봤을 때 말하지 않아도 그들의 고통을 저의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다른 이야기나 설명이 필요 없이 그의 고통을 제 영이 먼저 인식합니다. 그의 고통은 저의 고통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저도 같은 아픔과 소외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저의 장애인 난독증을 어떻게 극복했냐고요? 저의 체험을 되돌아보면 그것을 헤쳐 나가는데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세 가지 요소였던 것 같습니다.
첫 번째 도움은 저의 부모님이었습니다. 조금 ‘느린’ 아들 앞에서 포기하지 않으시고 많은 시간을 투자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해주셨습니다. 이러한 관심과 사랑이 저로 하여금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나의 한계들을 스스로 극복하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또 큰 도움을 줬던 요소는 제 친구들이었습니다. 제가 조금 낯을 가리고 수줍어하고 마음이 닫힌 아이였지만, 저를 왕따 시키지 않고 오히려 우리 집을 찾아와서 저를 ‘밖으로 끌어내서’ 같이 신나게 놀아주었고 저를 그들의 일원으로 초대해주었습니다. 그 친구들이 저로 하여금 제 자신 안에 갇히지 않고 어둡고 부정적인 사고방식에 빠지지 않게 도와줬습니다.
세 번째 요소는 바로 저의 강하고, 결단력 있고, 도전적인 성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난독증이 가져오는 어려움들 앞에서 저는 한 번도 주저앉은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항상 용기 있게 상황에 굴하지 않고 어려움들을 이겨나갔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지금 많은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은인들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안나의 집이라는 센터를 설립했고, 이곳에서 매일 400명에게 무료급식을 제공하고 거리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많은 다른 봉사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가출 청소년을 위한 집도 세 채 마련할 수 있었고, 한국에 난독증을 알리기 위한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난독증의 고통을 통해 정신과 영이 제 주위에 있는 고통들을 민감하게 느낄 수 있도록 다져졌기에 저는 이 일들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고통이라는 자매여, 고맙습니다.
당신의 강하고 아픈 포옹으로 저의 위선과 자존심을 깨부수셨으니 감사합니다. 당신은 저의 손을 잡고 겸손함으로 “친구야 도와줘, 너의 도움이 필요해”라고 말할 수 있게 가르치셨습니다.
저의 벗, 난독증이여, 고맙습니다.
당신은 저를 힘들어하는 사람들 곁으로 인도하였고 인생의 길을 걷는 동안에 멋진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게 도와줬습니다.
고독함이여, 고맙습니다.
당신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 이해하기 힘든 인간 심리의 어두운 미궁 속으로 저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부모님, 고맙습니다.
당신들의 가련한 아들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모르셨음에도 저를 계속 신뢰하시고 보잘것없는 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셨기에 감사드립니다.
친구들도, 고맙습니다.
함께 하는 단순한 놀이들로 그리고 기쁨과 순수함으로 저를 치료해준 여러분들이기에 감사합니다.
주님, 고맙습니다.
항상 어렵고 힘든 이 여정을 함께 하시고 당신의 힘을 주셔서, 제가 싸우면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주님, 죄송합니다. 가끔은 제가 의심을 하고 유혹에 빠져 실수하고 죄를 지었습니다. 때때로 어떤 순간에는 힘에 부쳤습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가능하다면 제게서 힘듦과 고통을 떨쳐버리소서. 이제는 제가 많이 자란 것 같습니다. 더 이상 고통이라는 학교가 필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당신께서 제 여정이 아직 많이 남았다고 판단되시면 천사를 한명 보내주시어 제가 깊은 고독함에 빠질 때 위로 받을 수 있게 하소서. 지겨운 고통의 순간들이 찾아오면 주여, 저에게 Cireneo를 보내시어 그가 잠시라도 저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주도록 허락하소서. 큰 의심과 불확신의 순간들이 찾아오면 저에게 베로니카를 보내시어 그녀가 저를 보고 온유함과 사랑으로 저의 눈물을 닦아 주게 하소서. 당신을 보지 못하게 하고 그리고 앞에 놓인 길을 보지 못하게 가로막는 눈물을 닦아주게 하소서.
주님 제가 항상 고통 속에서도 당신께 감사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주님 감사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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