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1월 9일 주님 공현 후 토요일…양승국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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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9일 주님 공현 후 토요일 - 요한 3,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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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다 땅으로 가시어, 그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시며 세례를 주셨다. 요한도 살림에 가까운 애논에 물이 많아, 거기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가서 세례를 받았다. 그때는 요한이 감옥에 갇히기 전이었다.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정결례를 두고 말다툼이 벌어졌다. 그래서 그 제자들이 요한에게 가서 말하였다.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그러자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 하고 내가 말한 사실에 관하여, 너희 자신이 내 증인이다.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요한 3,22-30)


<신림동, 장충동>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자 세례자 요한은 "마지막 증언", 다시 말해서 "고별사"를 남기고 인류구원사의 전면에서 사라집니다.

세례자 요한이 이러한 고별사를 하게 된 배경이 있는데, 소위 "세례 원조 논쟁" 때문이었습니다.

신림동에 가면 떡볶이 집들이 많기로 유명합니다. 장충동에 가면 돼지 족발집들이 셀 수도 없이 많이 밀집되어 있지요.

그런데 재미있는 일은 상당수의 음식점 주인들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바가 "내가 원조"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 인간들의 보편적인 심리 근저에는 원조에 대한 집착이랄까 애착심이 깔려있는 듯 합니다.

세례자 요한 시대 당시 "세례!" 하면 요한이었습니다. 당연히 세례의 원조는 요한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름까지 그냥 요한이 아니라 세례자 요한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세례자 요한은 세례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개운동, 갱신운동, 자정운동을 전개하였고, 이러한 운동은 당시 유다 백성들 사이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물론 세리와 창녀들까지 요한에게 찾아와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조차도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활동을 개시하면서 돌아가는 상황을 가만히 보자 하니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슬슬 속이 끓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아이들 표현에 따르면 "꼭지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의 스승 세례자 요한은 요즘 손님이 없어서 파리를 날리고 있는 반면 예수님네는 몰려드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질투심과 분노로 가득 찬 나머지 이런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분에게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한때 잘 나가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세례자 요한과 그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안드레아를 비롯한 중요 인사들마저 세례자 요한 당 사무국에 탈당계를 제출하고 예수님 당으로 입당하는 판국이었습니다.

찬밥 신세가 된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자신들의 존재 자체가 갑자기 쇠락해져간다는 느낌을 받았고, 여기에 대해서 속수무책인 스승의 태도에 크게 실망한 나머지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따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세례자 요한은 결정적인 말 한마디를 던집니다. "사람은 하늘이 주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

존경하는 송봉모 신부님의 해석에 의하면 이 말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쇠락도 예수님의 흥성함도 모두 다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인가 조금이라도 좋은 것을 지녔다면 그것은 다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욕심을 버리고 자족하며 살라는 말입니다.

결국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원조, 영원하고 참된 원조는 오직 한분 주님뿐이십니다.

우리가 찾아갈 때 마다 단 한 번도 손해 보지 않게 하시는 분, 찾아갈 때 마다 맛 갈지고 정성어린 음식, 영양가 만점인 음식을 주시는 주님, 단 한번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시는 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이런 표현까지 쓰면서 주님이야말로 원조중의 원조, 마지막 원조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주님, 주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고 계시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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