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공학과 생명윤리(9)
유전공학과 생명윤리(9)
안명옥 주교 특별 기고-유전공학과 생명윤리(9)-교회의 가르침
3) 인간복제와 관련된 여러가지 윤리 문제
복제 과정에서 친자관계, 친족관계, 혈족관계, 어버이 관계 등 인간의 기본적인 관계들이 혼란에 빠지게 된다.
모 든 인위적인 행위처럼, 인간복제도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흉내'내고 '모방'하지만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생물학적 구성요소를 어떻게 초월하는지를 무시하고 있다. 더욱이 그것은 생물학적으로 가장 단순하고 진화가 덜 된 개체에서만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생식 형태로 축소된다. 인간복제는 몇몇 사람이 다른 사람들의 삶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고 그들의 생물학적 본질을 마음대로 또는 순전히 실리적인 기준에 따라 선별하여 계획대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을 조장한다. 여기에서 생물학적 본질은 정신이라는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인격적 본질을 통틀어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인격적 본질의 한 구성요소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인간을 선별한다는 이러한 개념은 수적으로 한계가 있는 복제행위를 넘어서, 그 무엇보다도 심각하고 예기치 못한 문화의 부산물을 가져올 것이다. 그것은 남성과 여성의 가치가 그들의 인격적 본질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높은 평가를 받아 선별될 수 있는 생물학적 특질에 달려 있다는 확신이 점점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복제는 복제된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해서도 비판받아야 한다. 복제인간은 다른 존재에게서 '복사'(생물학적인 복사일뿐이라 하더라도)됨으로써 세상에 등장한다. 이러한 행위는 복제인간에게 근본적인 고통을 안겨 줄 수 있다. '복제인간'은 복제할 가치가 있는 누군가와 닮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숙명적으로 그는 기대와 주목을 받는 대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기대와 주목이 그의 인격적 주체성에 진정 타격이 될 것이다.
앞에서 우리가 지적한 결과들 가운데 적어도 얼마만이라도 피하고자 애쓰면서 인간 복제 계획을 자궁에 이식하기 전까지의 시점에서 중단하겠다고 하는 생각도 도덕적 관점에서는 마찬가지로 부당하다. 복제된 아기의 출생은 막고자 하면서도 배아와 태아의 복제는 여전히 허용하는 복제 금지령은 결국 배아와 태아에 대한 실험을 허용하는 것이며 동시에 그들이 태어나기 전에 없애 버려야할 것을 의미한다. 이는 잔인하고 가증스러운 방법으로 인간을 다루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나 그러한 실험은 비도덕적이다. 인간의 육체는 인간 개인의 존엄과 인격적 본질을 구성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부분이다. 게다가 복제 실험에 쓸 난자를 얻고자 여성을 이용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복제인간의 경우에서도 그것이 비도덕적인 까닭은 배아 단계라도 그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실험목적으로 행해지는 시험관 수정까지도 철저히 단죄하는 모든 도덕적 이유가 인간복제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돼야 한다.
' 초인'에 대한 헛된 희망에서 '신의 죽음'을 선포하는 행위는 '인간의 죽음'이라는 명백한 결과를 낳는다. 복제는 하느님의 전지전능하신 힘을 비극적으로 서투르게 모방하려는 위험한 시도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와 지성을 주시면서, 창조된 세계를 맡기셨다. 인간은 단지 실천에 옮기지 말라는 요구만 받을 뿐 행동에서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는다. 인간은 선과 악을 식별함으로써 스스로 이러한 제약을 두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인간은 다시 한번 선택하도록 요구받는다. 과학기술을 해방의 도구로 변화시키느냐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폭력과 고통을 끌어들임으로써 그것의 노예가 되느냐 하는 것은 인간의 결정에 달려 있다. 생명을 사랑의 선물로 보는 개념과 인간을 상업적 생산품으로 보는 관점의 차이를 다시한번 명확히 해야 한다.
인간을 언제 어디서나 단순한 수단과 대상이 아니라 목적과 가치로 대하는 것은 어느 사회에나 필요한 조건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이 인간 복제에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4) 인권과 연구의 자유
인 권이라는 측면에서, 인간복제는 모든 인간 권리의 바탕이 되는 두가지 기본 원칙에 위배됨을 보여준다. 곧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차별이 없다는 원칙이다. 언뜻 보기와는 달리, 모든 인간이 동등하고 평등하다는 원칙은 인간이 인간을 지배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침해받게 되며, 복제 논리에 내재되어 있는 완전한 우생학적 선택 차원때문에 차별이 생기게 된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우리가 인간복제를 거부하는 이유는 그것이 복제를 당한 사람의 존엄과 인간 생식의 존엄을 부인하기 때문이다.
현재 가장 절실한 문제는 과학탐구에 대한 요구와 반드시 존중하여야 할 인간 가치의 조화를 재확립하는 일일 것이다. 과학자는 인간복제를 도덕적으로 거부하는 행위를 굴욕이라고 여기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이러한 금지는 연구의 존엄성을 회복함으로써 연구의 창조성이 변질되지 않게 한다. 과학 연구의 존엄성은 그것이 인류의 행복을 위한 가장 부요한 자원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에 있다.
과학연구가 인간에게 유익을 주면서 병을 치료하고 고통을 덜어 주며, 영양실조로 생기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지구자원을 더 잘 활용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때 그것은 인류의 희망을 대변해 준다. 그리고 그러한 희망은 과학자들의 재능과 노력에 맡겨져 있다.
교황께서 회칙 '생명의 복음'(Evangelium Vitae)에서 상기시키시듯이 인간과 세계를 하느님의 창조물로 보면서 과학이 인간과 사회의 선익에 어떻게 이바지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며 인간 자신과 세계에 대한 '관조적인 시각'을 길러 나가야 한다.
가톨릭 신문에서 발췌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