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공학과 생명윤리(10·끝)
유전공학과 생명윤리(10·끝)
안명옥 주교 특별 기고-유전공학과 생명윤리(10·끝)
마치면서
우 리는 지금까지 유전공학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을 익히고, 정보를 공유한다는 취지에서 다가올 유전공학의 세기를 조망해 보았다. 그리고 유전 공학의 기본 틀을 살펴보면서 그 틀이 안고있는 윤리적인 문제점들에 대해서도 비록 암시적이기는 하지만 지적하였다.
지 난 20세기가 물리학과 원자력 기술의 시대였다면 새로운 21세기는 생물학의 세기가 될 것이다. 생물학의 세기가 가져다 줄 기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기술은 유전공학 기술이 될 것이다. 생물학의 세기가 다가오면 우리가 얻은 지식을 다양한 형태로 응용할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
인간은 그 속성상 도구 제작인이다. 인간은 지속적으로 환경을 배열하고 바꿈으로서 우리의 복리를 보장하고 좀 더 나은 삶을 추구한다. 새로운 유전공학 기술이 가져올지 모르는 잠재적인 결과들을 모두 예측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바로 여기에 우리의 고뇌가 깃들어 있다. 우리의 고뇌는 유전공학 가술 그 자체의 이용을 찬성할 것인가 또는 거부할 것인가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고뇌는 다가오는 유전공학의 세기에 어떤 종류의 유전공학 기술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데 있다. 예측을 불허하는 불확실성을 두고 선택해야 한다는 사실이 우리를 고뇌하게 하고있다.
지금까지 유전공학을 둘러싼 대부분의 논의는 유전 공학자들의 주장을 소개하고 선전하는 정도에 머물고있다. 우리의 미래를 이들 유전 공학자들의 손에 맡겨 놓아도 괜찮은가라는 중요한 문제에 대한 논의는 아직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우리 각자는 공유해야할 책임이 있다. 유전공학 기술은 다른 어떤 기술보다 우리 개개인 각자에게 직접적으로 그리고 강력하게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다가오는 세기의 유전공학이 진행되는 방향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유전공학을 둘러싼 토론과 논의에는 유전공학 기술자, 기업가, 정책 입안자 등 일부 소수만이 참여했다. 그래서 이제부터 유전공학을 둘러싼 토론과 논의에 입장을 달리하는 전문가들 이외에 사회 구성원 전체도 참여해야 한다.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준비하고 맞이할 것인지에 대해 사회 각계 각층이 활발한 토론과 논의의 전면에 나서야 한다. 그 미래는 우리와 우리의 후손을 위해서 그리고 인간과 함께 이 지구를 공유하는 다른 생물들을 위해 존재하는 미래이기 때문이다.
유전공학은 우리 각자로 하여금 마음 속 깊이 간직하고 거기에 기대어 살아온 가치에 대해 다시금 숙고하고 성찰하게 만들고있다. 즉 유전공학은 인간 존재의 의미와 목적에 관한 궁극적인 문제를 제기하고있다.
과학과 기술의 진보는 속성상 스스로 중단하거나 통제하지 않는다.
일 단 발동이 걸리면 제동이 걸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과학과 기술의 과속을 통제할 방법에 대한 논의가 요청되고있다. 물론 과학 기술을 통제하는 제도와 법규의 제정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과학의 건전한 양식과 건강한 상식에 호소하는 것도 중요하다. 과학은 제도와 법규의 제정을 과학의 연구를 위한 자유와 자율성을 침해한다고 주장하여 왔다. 하지만 과학 역시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는 범위 내에서 학문의 자유와 자율성을 담보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과학의 자유와 자율성을 담보 받기 위해서는 건전한 양식과 건강한 성숙이 전제되어야 한다. 공명심이나 상업성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한 건전한 양식과 건강한 성숙을 기대할 수는 없다. 과학 기술이 인간의 존엄성을 목표로 삼을 때 그 도덕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고 말살하는 과학 기술에 결코 지지를 보낼 수 없다.
과학 기술은 지금까지 자신이 이루어 놓은 눈부신 업적과 결과에 자만하지 말고 자신의 정체성을 거듭 거듭 확인하는 철학적인 고뇌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고있다.
'할 수 있다'고 아무 것이나 해서는 안된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할 수 있음'을 스스로 자제하고 통제하는 능력을 키워낼 때 그리고 그 '할 수 있음'을 필요할 경우 기꺼이 포기하는 용단과 결단을 내릴 때 과학은 도덕성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우리 역시 과학과 기술이 가져다준 업적의 수혜자로서 과학의 도덕성과 신뢰 회복을 위해 그리고 '과학의 인간화'와 '과학의 그리스도화'를 위해 함께 고뇌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유전공학이 가져올 긍정적 결과와 부정적 위험에 관한 논의는 아직 초보 단계에 머물고 있는 동안 유전공학의 기술적 진보는 상당한 수준으로 진행되고있다. 그러므로 유전공학의 기술에 대한 허용과 제한에 대한 논의 역시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하고, 이를 위한 일반 대중의 의식화, 교육, 여론의 환기와 형성이 필요하다. 현실적으로 유전공학이 기술을 완전히 금지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부의 허가권 행사나 사회적 또는 정치적 압력을 통해 다양한 유전공학 기술 가운데 어떤 기술을 선택하고, 어떤 기술을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토론과 민주적인 여론 수렴이 매우 절실하게 요청된다.
다가올 21세기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영원하고 보편적인 가치를 펼쳐 보이는 세기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그 동안 함께 이 글을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인간의 생명을 지키고 가꾸는 일에 동참하시고 앞장 서 주시기를 기대한다.
가톨릭 신문에서 발췌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