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韓國人 안중근 토마스 의사

大韓國人 안중근 토마스 의사

천주교 신자 안중근(토마스) 의사(義士)는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31세 나이로 순국하였다. 안 의사(1879~1910년)는 황해도 청계동 성당에서 18세(1897.1.11)에 영세했다. 안 토마스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포살한 것은 국권 회복을 위한 전투 행위이다. 국가 방위를 위한 전투중 살상은 죄가 아니며 신앙심과 조국애는 분리될 수 없다.

대 륙 침략을 꾀하기 위해 러시아 대장(大藏)대신과 만나기 위해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 도착한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과 복부에 십자 표시를 새긴 세발의 권총을 쏜 후, 안 토마스는 혈서로 '독립자유'라는 글자를 써 넣은 태극기를 품속에서 꺼내 흔들며 '대한제국 만세'를 세 번 목이 터지도록 외쳤다. 이토가 쓰러진 후 곧 죽자 십자성호를 긋고 "천주여, 포악한 놈을 무찌르게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고 기도 드린 후 러시아 헌병에게 태연히 포박되었다.

사형 집행 전 가족들에게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과 아들(준생, 베네딕도) 을 성직자로 키워 주기를 유언했다. 또한 2천만 형제 자매들이 교육과 실업에 힘써 국권을 회복시키며, 성직자들은 민족 복음화에 배전의 노력을 기울이고 냉담한 교우들에게 신앙을 독려할 것을 당부했다.

그 리고 "대한 독립과 동아 민족의 행복을 위해 죽는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예수님의 성화를 간직한 채, "대한 독립 만세" "동양 평화 만세"를 세 번 부른 후 미소를 띠며 여순 형무소 교수대에서 그의 영혼은 거룩하게 하늘로 올라갔다. 이 날은 그가 때 맞춰 죽기를 원했던 예수님이 돌아 가신 금요일이었다. 안 토마스의 거룩한 애국 운동은 우리 민족의 가슴에 영원히 살아 남을 것이다.

한국 천주교회는 안 의사의 신앙심과 애국심을 조화시킨 민족운동을 행동하는 신앙인의 큰 빛으로 널리 기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