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아니시면

당신이 아니시면

주님,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저를 당신의 것으로 삼으실 계획이 있으셨으며
그렇다고 왜 미리 말씀이라도 해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주님, 저는 그것도 모르고 이리저리 헤매며, 버림받을까봐 마음 졸이고
혹시 다른 길이 있었나 기웃거리며 힘을 다 써버렸습니다.

주님, 당신이 오라는 길, 멋모르고 따라 갔다가 눈물 콧물 다 쏟아내며
가슴에는 온통 시퍼렇게 멍까지 들었습니다.

조용한 목소리로, 그러나 끈질기게 부르시는 당신 앞에 있는 힘 다 빼고
어떻게 쓰여지고 싶다는 저의 의지마저도 다 내 던져 버리고,
오로지 저를 온전히 비우는 모습으로만 설 수 있게 해 주소서!

당신의 음성이 들릴 때 그저,
당신이 아니면 갈 곳도 없습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게 해 주소서.

아멘.

***** 이 시는 필립보네리 형제가 기도회 중에 자작시를 낭송한 것이나 여러 가족들이 너무 좋아 하시어 다시 기억해 보고자 싣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