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장 어진 양심의 즐거움
1. 착한 사람의 영광은 어진 양심이 증명하여 주는데 있다. 양심을 어질게 가져라. 그러면 항상 즐거운 것이다. 양심이 어질면 많은 수고를 참아 견딜 수 있고, 역경 중에라도 많이 즐거울 것이다. 양심이 악하면 두려움이 그칠 사이 없고 편한치가 못하잗. 네 마음이 너 자신을 책하지 않는다면 유쾌 하고도 평한할 게 아니겠느냐? 무엇이든지 잘한 다음이 아니면 즐거워 말아라. 악한 사람은 참즐거움이 있을 수 없고 마음속에 평화를 느끼지 못할 것이다. "악인들에게 무슨 평화가 있으라?"(이사 57,21)고 주께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평화한 중에 살고, 우리에게는 아무런 재앙도 미치지 않을 것이며 또 누가 감히 해치라."고 악인들이 말한지라도. 그말을 믿지 말아라. 하느님께서 갑자기 분노하실 때가 있을 것이니, 그때에는 악인들의 행위가 허무로 돌아갈 것이요, 그들의 생각이 멸망하고 말 것이다.
2. 사랑이 있으면 곤란 중에 있음을 영광으로 삼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이렇게 영광을 삼는 것은 주의 십자가로 영광을 삼는 것이다. 사람이 주고받는 그 영광은 잠깐이다. 세속의 영광에는 항상 근심이 따른다. 어진 사람들의 영광은 그 양심에 있고, 사람들의 입에 있지 않다. 의인들이 즐기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것이며, 하느님 안의 것이다. 그들의 즐거움은 진리에 대한 즐거움이다. 참되고 영원한 영광을 원하는 사람은 잠세(潛勢)의 영광을 도모하지 않는다. 참세의 영광을 찾거나, 혹 찾지 않아도 진심으로 자신을 경천히 여기지 않는 사람은, 하늘의 영광을 덜 사랑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칭찬을 듣거나 책망을 듣거나 무관심한 사람은 그 마음이 매우 고요하다.
3. 양심이 깨끗한 사람은 만족을 누리기 쉽고 평화를 누리기도 쉬을 것이다. 네가 칭찬을 듣는다고 더 거룩해지지 않고, 책망을 듣는다고 더 천해지지도 않는다. 너는 그대로 너다. 하느님께서 아시는 그것보다 더한 가치를 가졌다 할 수 없다. 너는 네 속이 어떠한지 잘 살핀다면, 밖에서 사람들이 너를 자기고 무엇이라 하든지 상관치 않을 것이다. 사람은 얼굴을 보고 가치를 헤아리나, 하느님은 마음에 있는 것을 보신다. 사람은 행동을 살피고, 하느님은 마음에 있는 것을 보신다. 사람은 행동을 살피고, 하느님은 그 뜻을 살피신다. 항상 잘하면서도 자기는 변변치 못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겸손한 영혼의 표다. 무슨 조물의 위로를 받고자 하지 않는 것은, 깨끗한 마음과 내적 의탁의 표다.
4. 밖에서 남들이 자기를 인정해 주기를 원치 않는 사람은 하느님께 자기를 완전히 맡긴 분명한 증거다. 성 바오로의 말씀대로 "참으로 인정받을 사람은 스스로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내세워 주시는 바로 그 사람이다"(2고린 10,18). 안으로는 하느님과 더불어 살아 나가고, 밖으로는 어떠한 정에든지 잡히지 않을 만큼 산다면, 이는 내적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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