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을 전하는 것은 - 임문철 신부-
힘이 드네요
그동안 나는 신자들이 “힘드시죠?” 하고 물어올 때
한 번도 “그래, 참 힘이드네요”라고 답해본 적이 없었다.
신자들과 즐겁게 살아야 한다는 내 안의 소명의식이
내 안에도 힘든 부분이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까지도 금지하고 있었고,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신자들에게 보인다는 것은
잘못된 거라는 생각에 발목 잡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런 질문을 받으면 “정말 힘이 드네요.
그런데 그렇게 물어주니 힘이 나네요” 하고 답한다.
“아니요, 힘들 게 뭐 있나요?” 하고 돌아서면
그 신자와 거리감이 생기지만,
힘들다 인정하면 그 신자와 친밀감이 생긴다.
남에게 인정받고 기뻐하고 무시당했다고 분노하는 것은
영적인 삶을 사는 사람으로서 문제다.
한마디로 남에게 휘둘리는 삶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기쁨과 분노를 남과 나누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신자가 나를 무시한다여겨져 서글퍼지거나 화가 났다면,
“내가 아직도 남으로부터 인정받길 간절히 원하고 있구나” 하고
나 자신을 따스한 눈길로 바라보며 어루만져주면 될 일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나 자신은 곧 평화를 찾을 수 있지만,
그 사람과의 관계는 여전히 그대로인 것이다.
“그때 형제님이 날 무시하는 것 같아서 참 섭섭했거든요” 하고
내 느낌을 전하면 “아, 그게 아니고요…” 하면서
자신의 진심을 이야기하게 되고
그러면 비 온 후에 더 땅이 단단해진다고
그 사람과 나의 관계가 더 친밀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내 안에 시시각각 죽 끓듯 생겼다 사라지는
수많은 느낌들을 내가 인정해주지 않고
남과 나누지 않으면 그 느낌들은 사라진 듯하지만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내가 원하지 않는 시간에 괴물로 변해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제 나는 혼자 당당하지만 외로운 용두암이 아니라
나의 속마음을 나눔으로써
한 사람이라도 더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 한다.
친밀한 관계는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사랑의 실천 바로 그 자체인 것을….
-임문철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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