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자렛 예수의 평신도 영성

내가 처음 이 성화를 보았을 때 나는 그저 예수님의 공생활 이전 모습을 담은 성화이려니 하고 무심히 지나쳤다. 그런 후 나는 다시 이 성화를 유심히 바라보면서 “예수님께서는 지금 대패질을 하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 나는 대패질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관상(觀想)하면서 공생활 이전의 예수님의 생활 속으로 강하게 빨려 들어갔다. 예수님께서는 과연 대패질을 하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여러분들도 잠시 대패질하고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관상해 보기 바란다.

우리는 이 질문에 여러 답변을 상상할 수 있다. 아버지 하느님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계셨을까? 성서구절을 묵상하고 계셨을까? 열심히 기도에 몰입하고 계셨을까? 그것은 모를 일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대패질하시는 동안 보다 나무를 잘 다듬어야한다는 실제적인 생각이 그 어떤 다른 생각보다도 우선 이었을 것이다. 즉, 예수님께서는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를 생각하시며 대패질을 하셨던 것이다. “잘 다듬어야 한다.”, “지난번처럼 또 실수하여 제대로 사용할 수 없게 만들면 안 된다.” 등 우리들이 일상 삶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갖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과 다르지 않게 대패질 하셨음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에 대한 생각은 잊어버리시고 오로지 세상의 일인 대패질에만 몰두하셨을까? 그러셨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오로지 대패질에만 전념하셨을 것이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대패질을 하시는 순간은 하느님과 떨어져 세상에 머무르신 것인가? 이 질문을 우리의 구체적인 삶에 적용한다면, 우리가 세상의 일에 몰두하여 하느님을 잊어버릴 때 과연 우리는 하느님으로 부터 멀리 떨어진 것인가? 그렇지 않다. 물론 세상의 부귀와 명예를 목적으로 세상일에 몰두 한다던가 오로지 쾌락을 위해 세상일에 몰두한다면 하느님으로 부터 떨어져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내 지향이 내게 주어진 일들에 최선을 다하고 또 그것이 내 존재의 목적과 부합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면 세상 일 자체에 몰두함으로 해서 우리는 하느님을 잊을 수 있다. 예수님 역시 당신께 주어진 세상일에 최선을 다하셨지만 그 안에 담겨진 욕심은 없으셨다. 그를 통하여 세상의 어떤 부귀와 영화도 추구하지 않으시고, 다만 오늘 당신께 주어진 일상 삶 안에서의 그저 평범한 일에 최선을 다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세상의 일에 몰두할 때 그 일속에 담긴 우리의 지향이다. 바느질을 하면서 바느질에 몰두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오히려 바늘에 찔릴 수 있다. 공부를 하면서 공부에 몰두하지 않고 하느님 생각만 한다면 학업이 진행될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가 바느질과 공부 그 자체에 지향과 의미를 찾고, 결국은 그 일 자체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면 우리는 그 일 자체를 통하여 하느님과 통교하는 것이며, 일을 통하여 우리는 하느님께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고 또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일에 의미와 가치를 찾아야 하고 또 부여하며 세상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세상일을 하면서 식별하여야 할 것은 무엇보다도 나의 지향이 무엇인가를 식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일에 몰두하는 것은 곧 하느님으로 부터 멀어진 것이라는 생각은 세상일과 다시 말해 구체적인 우리 인류의 역사와 개개인의 역사는 하느님과 분리되었다는 잘못된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오늘 하루 만나게 되는 모든 사건들과 일 속에 즉 우리의 역사 안에 구체적으로 현존하시며 함께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결코 예수님께서 대패질에 몰두하시는 것이 하느님과의 분리를 뜻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우리가 지금 세상에서 하고 있는 일들과 하느님과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세상의 일들과 사건들 안에서 그리고 다른 이들과의 관계 안에서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는 나자렛 예수야말로 세상일과 하느님을 가장 완벽하게 통합하시며 일상의 삶을 사셨던 분이라고 생각한다.

30일 동안 영신수련을 하면서 내게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 것 중에 하나는 성서에 기록되지 않은 공생활 이전의 30년 동안을 살아오신 예수님의 평범한 일상생활이었다. 복음사가조차 아무 쓸 말이 없을 정도로 그저 평범한 30세 청년의 삶을 사셨던 그 시간. 그 분은 인간으로서 우리와 별 차이 없을 일상의 삶을 사셨던 것이다. 마당도 청소하셨을 것이고, 또 동네 같은 나이 또래 친구들이 지나가면 반갑게 일상의 대화를 나누시면서 함께 웃기도 하고 또 때로는 슬픈 이야기에 마음 아파하셨을 것이다. 한번 친구들과 길거리에서 만나 대화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관상해 보자. 대화를 나누시는 예수님의 표정, 손짓 또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 그리고 그 대화의 내용들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어머니를 도와 설거지도 하셨을지 모른다. 여기서 또 우리는 그런 아들을 대견스럽게 바라보시는 성모님의 눈길도 느낄 수 있으며, 또 두 분이 나누시는 대화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 또한 우리와 같이 직업을 갖으셨다. 어느 날에는 아버지와 함께 만든 창문틀을 들고 주문한 곳에 배달을 가셨을 것이고, 때로는 주문한 사람의 불평도 들으셨을 것이고 또 물품 대금을 받아 가지고 오셨을 것이다. 나는 예수님의 공생활 이전을 관상하면서 참으로 우리의 일상 삶과 너무나도 다르지 않은 인간으로서의 예수님을 만났으며, 결국 예수 그리스도야 말로 참 하느님이시면 참 인간이심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예수께서 지금 이 시대에 그 같은 공생활 이전의 삶을 사셨다면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살아가셨을 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들처럼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드시고 출근 시간에 맞추기 위해 만원인 지하철로 서둘러 가셨을 것이고, 때로는 엄한 직장 상관이 예수께서 만드신 서류를 마음에 안 든다고 집어 던졌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저녁에는 직장 동료들과 함께 소주집에서 술잔을 기울이셨을 지도 모른다. 그분이 공장에서 일을 하셨든, 건설 현장에서 노동을 하시었든 또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셨든 30세 이전의 예수님의 모습은 우리의 일상 삶 그 자체 이셨다.

바로 여기에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예수께서는 몸소 30여 년간을 우리의 구체적인 역사 안에서 참 인간으로서 일상의 삶을 사시면서 우리에게 “일상 삶의 가치”를 직접 보여 주신 것이며, 또 참으로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가를 몸소 당신의 삶으로 보여 주신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예수님의 평범한 일상의 삶 안에서 우리는 삶의 지혜를 찾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30여년을 그저 평범한 인간들과 다를 바 없이 너무나도 평범한 일상의 삶을 살아가신 그러면서도 하느님과 완전한 의미에서 하나 되어 살아가신 예수님 공생활 이전 삶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곧 우리에게 우리의 일상 삶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가치 있는 것인가를 보여주는 것이며, 참된 하느님의 뜻은 이 세상 우리의 일상 삶 안에서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오늘 우리의 생활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일들 그리고 사건들 안에서 하느님과 하나 되어, 결코 하느님으로 부터 분리된 세상이 아니라 하나 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패질을 하실 때에 예수님께서 일 자체에 최선을 다하시어 생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삶에 주어지는 일에 지향을 갖고 그 일 자체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세상의 모든 일 속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 수 있는가? 우리들의 직업이나 어떤 큰 사건이나 일을 의미하는가? 그렇지 않다. 보다 구체적인 우리의 삶 전부를 의미한다. 가정주부로서 가족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식사를 준비하며 도마질하는 모습일 수도 있고, 회사의 신입 사원이 하나 가득한 서류를 복사하는 일일 수도 있고,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일 수도 있고 또한 청소하는 모습, 운전하는 모습 그리고 시장에서 물건을 사는 모습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보잘것없이 생각할 수 있는 우리의 모든 행동들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꼭 자선을 하거나 기도하는 모습만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모습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모든 행동과 일들이 곧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봉헌되어질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대상을 일상의 일에만 국한 시키지 않고, 우리가 일상의 삶 속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의 만남 그 자체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또 내가 오늘 접하게 되는 모든 일상의 사건들 안에서 하느님을 찾는다면 이것이 곧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찾는 것(Finding God in All Things)”이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가 생활하는 그저 평범한 일상의 삶들 속에 참된 의미와 가치가 있다는 것을 예수님의 공생활 이전 나자렛 생활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은 바로 우리들의 구체적인 역사 안에서, 우리의 평범한 일상의 삶 안에서 만나게 되는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찾는 것이며, 이것이 곧 나자렛 예수의 평신도 영성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매일 마주치게 되는 우리 일상의 삶에서 하느님을 찾아 살아가야 할 것이며 또한 이러한 우리 일상의 삶은 결코 하느님과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인 것이다.

출처: 예수회 영성자료

나자렛 예수의 평신도 영성

댓글

일상을 최선을 다하여...

"일상을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은 하느님 보시기에 정말 아름답다."
언젠가 부터 제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서는 개미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의 지겨움에 지쳤을 때 하곤 하는 화살기도입니다.

"그 일상의 일들에 지향을..."
지겨움에 지칠 일이 없겠네요...
모르고 살았습니다.

좋은 묵상 자료 감사합니다.
안셀모

정말 성실히 열심히 살아야하는데..


저도 연말이 되니까, 마음이 싱숭생숭..
게으러지기만 하는 것 같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그림 인쇄해서...

그림 인쇄해서 컴퓨터 앞에 두었습니다.
잠시 잠시 묵생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감사합니다.
안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