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12/15 대림 제2주간 토요일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율법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그제야 제자들은 그것이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 (마태 17,10-13)
올 한해를 시작하면서 결심한 다짐 중에 첫 번째 다짐이 수도자로서 가장 중요한 일, "집에 잘 붙어있자"였습니다. 집에 붙어있어 보니 너무나 좋더군요. 사실 수도자가 밖으로 다녀봐야 좋을 것 하나도 없다는 것을 늦게 나마 깨닫게 된 것이 올 한해 제게 있어 제일 큰 수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제는 한 사회복지시설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두시간 짜리 강의 때문에 오랜만에 집을 비웠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마음씨를 지닌 사람들이 너무도 행복한 표정으로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헌신하고 계시는 천국 같은 곳이었기에 안 갈 수가 없었습니다.
강의 두 시간,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두 시간 동안 남 앞에 선다는 것, 그것도 잘 모르는 사람들 앞에 서서 뭔가 이야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부담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어제는 꾀를 좀 냈습니다. 학기말 시험 끝낸 수사님 한 명을 살살 꼬셨지요. 물론 레크리에이션이나 성가반주에 탁월한 능력을 지닌 다재다능한 수사님이었습니다.
떠나기 전날 두 시간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에 대해 함께 의논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나름대로의 계획에 따라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결과는 참으로 만족스러웠습니다. 강의일변도로 나갔으면 정말 지루했을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상부상조해서 강의 시작 전 수사님의 성가연습, 그리고 제 간단한 강의, 휴식, 다시 모여 수사님과 함께 레크리에이션, 마무리 제 강의. 이렇게 진행하다보니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가더군요.
작은 체험이었지만 팀으로 일한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찮은 일이라 할지라도 서로 머리 맞대고 계획을 짜고 아이디어를 나누는 일, 고통을 분담하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팀플레이로 대응하려는 노력, 공동으로 행하는 사목이 물론 더디고 때로 짜증도 나겠지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모릅니다.
"내가 이 일의 책임자니 내가 모든 것을 다 해야겠다", "나는 죽어도 이 모든 일의 주인공이다. 절대로 남에게 양보 못 한다", "내가 이 일의 책임자니 모든 영광도 내 몫이다"는 사고방식처럼 피곤한 사고방식도 없습니다.
찰 떡 궁합이란 말이 있습니다. 함께 일을 하면서 서로 양보하고 서로 인내하는 가운데, 서로 한 마음이 되어 서로의 몫을 척척 잘 해내는 경우를 말하겠지요. 이렇게 될 때 진정 일할 맛이 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준비를 갖추어 놓을 것이다."
여기서 엘리야는 세례자 요한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와 세례자 요한은 진정 찰떡 궁합이었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죄인을 구원하는 선교사업에 더할 나위 없는 찰떡 궁합이었습니다.
두 분은 각자가 해야 할 몫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에게는 예수님께서 오실 길을 잘 닦는 역할이 주어졌었는데, 그 역할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잘 마무리 지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이 오실 길을 완벽하게 닦아놓자마자 정확하게 주인공이신 예수님께서 등장하십니다. 예수님이 전면에 등장하자마자 자신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한 세례자 요한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무대 뒤로 물러섭니다.
인간 구원을 위한 더할 나위 없는 콤비 플레이였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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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세례자 요한은..
강직하고, 옳은 말만 골라해서 미움받아 정치인들에게 죽임을 당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은 정말 삶도 그렇고, 일도 궁합이 잘 맞는 것 같습니다.
나의 복음 묵상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제멋대로'라 함은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나의 뜻대로라는 말일 것입니다.
힘 가진 자들이 그 힘을 지키기 위하여 나름대로의 논리를 만들어 내고,
그것이 정말 진리인 양 신봉하고
다른 모든 사람들도 따를 것을 요구하는 것을 흔히 봅니다.
거기에 몸 붙혀 살아가야 하는 많은 민초들은 그냥 말 없이 묵묵히 따라 가야합니다.
거역하면 죄인이 되고 소외됩니다.
그들은 결국 마지막으로 온 예언자인 세례자 요한을 폭행하고,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습니다.
지금 내가 살아 가는 이 현세에서도 다름 아닌 듯 합니다.
주님, 힘 가진 자로 살아가지 못하는 저는 행복합니다.
다만, "예"해야 할 때 "예"하고,
"아니오" 라고 해야할 때 "아니요" 할 수 있는 용기를 저에게 주시어
이미 제게 와 계신 예수님을 또 다시 십자가에 못 박지 않게 하시고,
이 세상을 비겁하게 살아가지 않게 하소서. 아멘!
안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