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12월 20일 대림 제3주간 목요일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 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이 한 세상 살아가다 우리가 만나게 되는 많은 일들 가운데 참으로 견디기 힘든 일, 정녕 용납하기 힘든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한창 상승곡선을 그려야 마땅한 나이에 아쉽게도 이승의 삶을 마감하는 일입니다.
남아있는 사람들이야 어떻게도 살지요. 남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 아쉬움과 안타까움에 차마 눈도 제대로 감지 못하고 떠나는 사람의 모습을 바라본다는 것은 참으로 가슴 미어지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먼저 떠난 한 자매가 홀로 남게 될 남편에게 쓴 편지글을 읽으면서 그분의 심정이 손에 잡힐 듯 느껴져서 한동안 혼났습니다. 그러나 슬픔과 안타까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던 그분의 깊은 신앙이 부러웠습니다.
“사랑하는 당신, 먼저 떠나서 당신께 정말 미안해요. 그렇지만 주님께서 부르시는데 어쩌겠어요? 너무도 무책임한 저를 용서해주세요. 먼저 떠난다고 너무 상심하지 마세요. 먼저 가서 자리 잡고 기다릴게요. 당신께 정말 고맙고 또 미안해요.”
“주님께서 부르시는데 어쩌겠어요?”라는 대목이 하루 온 종일 제 마음속에 남아 있었습니다.
정말 아쉽지만, 정말 안타깝지만, 정말 떠나기 싫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부르시는데 어찌 거역하겠냐는 자매님의 글에서 참 신앙인의 모습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이 한 세상 살아가다보면 여러 형태의 초대 앞에 서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생명에로의 초대를 받아 이 세상에 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광스럽게도 하느님의 자녀로 불리는 초대도 받았지요. 참으로 큰 은총입니다.
그리고 가끔씩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축복과 성공의 삶에로 초대됩니다. 날개를 단 듯한 전도양양하고 화려한 삶에로 초대도 하십니다. 성공한 기업가로서의 삶, 저명인사로서의 삶, 대학자로서의 삶, 소박하지만 단란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삶...
그러나 우리의 삶이란 것은 언제까지나 지속적인 상승곡선을 그리지만은 않습니다. 올라갈 때 까지 올라간 우리의 여정은 어느 순간 반환점을 돌기 시작합니다. 하강곡선을 그리며 추락을 시작하지요. 그리고 마침내 일생을 마감하는 죽음의 순간도 맞이하게 됩니다.
뿐만 아닙니다. 전혀 예기치 않았던 큰 사고를 당해 꼼짝없이 누워 지낼 수도 있습니다. 중병에 걸려 끔찍한 고통에 시달릴 수도 있습니다.
그 모든 인생 국면 앞에서 우리가 취할 자세는 먼저 세상을 떠난 자매님께서 취하신 자세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데 어쩌겠어? 주님께서 부르시는데 어쩌겠어? 주님의 뜻인데 어쩌겠어?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마리아의 삶이 그랬습니다. 마리아의 삶은 일생동안 언제나 한결같았습니다. 하느님의 초대 앞에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우리가 자주 그러는 것처럼 ‘잠깐만요!’라고 답하지 않았습니다. ‘우선 좀 생각해보게 시간을 주십시오’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전후 상황을 면밀히 검토해보고 ‘그건 제게 도저히 무리가 되겠는데요’라고 발을 빼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초대 앞에 언제나 그저 똑같았습니다. “예! 부족하지만 힘자라는데 까지 노력해보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일생을 살다보면 다양한 상황, 여러 국면, 많은 위기, 고통스런 현실과 직면하게 됩니다. 그럴 때 마리아의 응답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생각만 해도 기쁜 초대, 돈이 되는 초대, 득이 되는 초대에만 ‘예!’라고 응답할 것이 아니라 고통스런 초대, 부담스런 초대, 막막한 초대, 정녕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초대라 할지라도 주님께서 부르시는 초대라면, 그리고 어차피 가야할 초대라면 기꺼이 ‘예!’라고 크게 외치며 기쁘게 일어서는 우리가 되면 좋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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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복음 묵상
지난 주말부터 연이어 참석한 장례예절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아흔이 넘게 잘 준비하시면서 주님의 부르심에 응하신 분도
남은 가족들은 아쉬워 눈물을 흘리시는데...
이제 50대 초반으로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
유능한 한 회사의 중역으로서,
열심히 살다 아무런 징후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주님께서 불러 갔을 때...
남은 가족의 애통함, 막막함, 허망함이 어떠하겠습니까?
과연 "주님께서 부르시는데 어쩌겠어요?"라고 응답할 수 있을까요?
나야 주어진 순간순간을 열심히 잘 살면 죽는 그 순간
"주님, 이제까지의 모든 것이 주님의 은총이었습니다. 주님이 부르시니 가야지요."하고 응답할 수도 있겠지만...
남아 있는 가족들은 어떻게 하지요????????
한번 뵙지도 못한 분이었음에도...
어제와 오늘의 문상예절, 장례미사 그리고 하관식에서 슬픔의 파도가 문득문득 가슴으로 밀려 들었는데...
남은 가족들은 어떻게 하지요...????
그래도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라고 응답해야 하나요???
자신 없습니다, 주님...
많이 울적한 안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