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2월 8일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그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저희와 바리사이들은 단식을 많이 하는데,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마태 9,14-¬15)
부끄럽게도 새로 나온 성경, 오늘 처음으로 펼쳐보았습니다. 새로운 번역을 위해 그간 애쓰셨던 많은 신부님들, 평신도신학자들, 봉사자들의 땀과 노고가 고스란히 배어있더군요. 번역이 훨씬 부드러워졌고, 본문에 대한 이해나 의미 파악도 한결 쉬워졌습니다. 경제도 안 좋은데 만만치 않은 가격에 부담스러워하실 분들에게는 죄송스런 말씀이지만.
새 성경을 읽으면서 한 신부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새 성경의 번역 전담자이셨던 신부님, 그 골치 아프고 고된 성서번역 작업에 한 평생을 거셨던 신부님, 아마도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로 인해 작고하신 것이 분명한 존경하는 임승필 신부님의 얼굴. 오늘 성서를 봉독하는 내내 신부님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전에는 ‘전도서’라고 칭했는데, 새 성경에서는 ‘코헬’이라고 부르는 성서 3장 1절 이하에 이런 표현이 있더군요.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긴 것을 뽑을 때가 있다.
죽일 때가 있고
고칠 때가 있으며
부술 때가 있고
지을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기뻐 뛸 때가 있다.”
오늘 복음에서 “스승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을 하지 않습니까?”라고 묻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 없지 않으냐?”
‘코헬’ 작가의 표현처럼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습니다. 슬퍼할 때가 있으면 기뻐 뛸 때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구간 탄생을 기점으로 슬픔의 시기는 지나가고 기쁨의 때가 왔습니다. 예수님의 육화강생으로 인해 이제 절망과 비탄의 시대는 막을 내렸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눈물 흘릴 때가 아닌 것입니다.
코헬의 저자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기쁨은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상기시킵니다. 따라서 삶을 기뻐하고, 현재 이 순간 존재의 기쁨을 만끽하라고 우리를 초대합니다.
“너는 기뻐하며 빵을 먹고
기분 좋게 술을 마셔라.
하느님께서는 이미 네가 하는 일을 좋아하신다.
네 옷은 항상 깨끗하고
네 머리에는 향유가 모자라지 않게 하라.”
그러나 항상 기뻐만 할 수가 있나요. 좀 살만하다, 이것이 행복이구나, 하면 어느새 다가오는 것이 고통입니다. 십자가입니다. 불행입니다.
그러나 성서가 우리에게 강조하는 기쁨은 고통 속에서도 미소 짓는 기쁨입니다. 언제 사형에 처해 질 지 모르는 절박한 감금상태에서도 행복해했던 사도 바오로의 기쁨입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었던 참혹한 옥살이 가운데서도 그리스도 신자들을 위해 편지를 쓰셨는데, 그 고통 속에서도 되풀이해서 강조하신 단어가 ‘기쁨’이었습니다.
극심한 고통,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바오로 사도의 기쁨의 비결이 무엇이었겠는지 묵상해봅니다.
바오로 사도의 기쁨은 하느님께 자신의 전 존재를 내어맡김을 통한 기쁨이었습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이미 형성되어 있기에, 내가 그리스도와 온전히 하나이기에, 더 이상 그 어떤 위협도 두렵지 않았던 기쁨이었습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모두 찰나적인 기쁨입니다. 잠시 지나가는 기쁨입니다. 뜬구름과도 같은 기쁨입니다. 주님이신 그리스도 안의 기쁨이야말로 참 기쁨이며, 영속적인 기쁨입니다.
시편 작가의 표현처럼 우리가 고통 속에서도 꾸준히 기도하며 기쁨을 간직할 때, 언젠가 주님께서는 반드시 우리의 울음을 춤으로 바꾸실 것입니다. 우리의 좌절을 희망으로 바꾸실 것입니다.
“당신께서는 저의 비탄을 춤으로 바꾸시고
저의 자루옷 푸시어 저를 기쁨으로 띠 두르셨습니다.
이에 제 영혼이 당신을 노래하며 잠잠하지 않으오리다.
주 저의 하느님, 제가 당신을 영원히 찬송하오리다.”
(시편 29장 12-13절)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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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때가 있다는...
머리로는 모든 일에 때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항상 그 때를 거슬러
해야 할 때에 하지 못하고
하지 말아야 할 때
행하는 어리석음을 봅니다.
오늘은 뭣을 해야 할 때인지 생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나의 복음 묵상
"그러면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오늘 복음 말씀은 아주 짧습니다.
그러면서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도 아주 간단한 것 같습니다.
우리도 단식을 하라는 것이지요.
가끔 지향을 두고 아침을 거르는 단식을 하곤 합니다.
인간의 첫번째 기본 욕구를 참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그것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참는다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그래도 단식을 통해 주님과 좀더 가까이 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해 볼만 합니다.
*** 나의 삶의 자리에 접지하기 ***
사순기간 동안 좀더 자주 단식을 하도록 애 쓰야겠습니다. 아멘.
안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