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2월 16일 사순 제 1주간 토요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주신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 그리고 너희가 자기 형제들에게만 인사한다면, 너희가 남보다 잘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그런 것은 다른 민족 사람들도 하지 않느냐?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 5,43-¬48)
한 아이를 밤늦은 시간에 경찰서에서 데리고 왔을 때의 일입니다. 이렇게나마 아이가 다시 우리 품으로 돌아온 것이 너무 흐뭇했었지요.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부탁이니 내 말 한번만 들어라. 이번만큼은 속는 셈치고 제발 좀 진득이 붙어 있거라."고 그렇게 당부했는데도 불구하고 사흘을 못 넘긴 녀석이 너무도 얄미웠습니다.
"정신 바짝 들게 종아리를 좀 때려볼까?" 아니면 "새벽까지 말 고문을 좀 시켜볼까?" 생각했었지만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선 배가 고픈 것 같아 간단히 요기를 시켰습니다. 허겁지겁 정신 없이 먹어대는 아이를 보고 있노라니 야단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간단히 씻기고 따뜻한 방으로 안내했습니다. 이부자리를 챙겨주며 그랬습니다.
"잘 왔다. **야, 오늘밤은 아무런 생각도 말고 잘 자거라. 그리고 내일부터 다시 한 번 새로 시작하는 거야."
잔뜩 긴장했던 표정이 풀리면서 아이는 예전의 그 개구쟁이 얼굴로 돌아갔습니다. 편안한 얼굴로 이불을 끌어당기는 아이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진심으로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아이가 내일 또 마음을 못 잡고 뛰쳐나간다 할지라도 오늘 하루만이라도 편히 쉴 수 있는 밤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좀 더 욕심을 부려 아이가 이제 마음을 잡고 "여기가 내 집이려니"하고 지냈으면 하는 기도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요보호청소년들, 다시 말해서 부모님들이나 선생님들 속을 썩이는 아이들, 경찰서를 들락날락거리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문제행동의 원인이 과연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오랜 생각 끝에 밝혀낸 결론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저지르는 문제행동은 "제발 나한테도 관심 좀 가져줘!"라는 강한 외침이었습니다. 그들이 삐딱하게 나가는 것은 "날 좀 더 사랑해주세요! 나한테도 눈길을 좀 주세요"라는 부르짖음이었습니다.
범생이 청소년들을 사랑하는 일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 착하고 예쁘고 고분고분한 청소년들, 내가 쳐놓은 울타리 안에서 내가 제시하는 방침에 따라 너무도 잘 따라오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일은 누워서 떡먹기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랑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사랑, 이방인들도 할 수 있는 사랑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남들이 다 할 수 있는 평범한 사랑에 머물러서는 안 되겠지요. 그리스도인의 사랑은 착한 목자로서의 사랑을 요청합니다.
건강하고 고분고분하고 말 잘 듣는 양들 백 마리 보다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어린 양, 삐쩍 마르고 아직 덜 자라서 팔아봐야 몇 푼 받지도 못하는 그 어린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서는 사랑 말입니다.
우리 비행청소년들도 고분고분한 청소년, 제 갈 길을 잘 가는 범생이 청소년들 못지않게 소중한 청소년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금 이 땅에 오셨다면 가장 먼저 찾아 나설 한 마리 길 잃은 어린양이 바로 우리 문제청소년들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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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나의 복음 묵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어제 복음 말씀에서는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시면서 당대 최고 수준의 도덕 수준보다 한 단계 높은 도덕적 수준을 요구하시더니...
오늘은 그보다도 더 높은 경지의 수준을 요구하십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니요?
안보이는 곳에 데려가서 패 주어도 시원찮을 텐데요...
그런데, 원수가 누구인가를 생각해봅니다.
모두가 제 가까이 함께 지내는 사람들입니다.
어떨 때는 제 자신이 저의 원수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결국 이웃, 그리고 가장 가까운 이웃인 제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 나의 삶의 자리에 접지하기 ***
어제 저녁에 딸의 나쁜 버릇 때문에 또 한 차례 툭탁거렸다.
다른 방법이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잠자리에 들었고
아침 미사도 찜찜한 마을을 한구석에 둔 체로 모셨다.
어제 복음에 이어 오늘 복음 말씀도
어쩌면 분노를 죽이라는 것은 아닐지...???
화가 날 때...
한번만 더 숨 죽이는 참을성을 주님께 청하면서 하루를 보내야겠습니다.
안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