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5/ 8 부활 제7주간 목요일…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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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8일 부활 제7주간 목요일-요한 17장 20-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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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말씀하셨다.] “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의 말을 듣고 저를 믿는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영광을 저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저는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는 제 안에 계십니다. 이는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시고, 또 저를 사랑하셨듯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도 제가 있는 곳에 저와 함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 창조 이전부터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시어 저에게 주신 영광을 그들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의로우신 아버지, 세상은 아버지를 알지 못하였지만 저는 아버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주었고 앞으로도 알려주겠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저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 17,20-26)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얼마 전에 어떤 모임에 갔다가 기억에 남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갓난아기의 똥 싼 모습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갓난아기의 똥 싼 것을 치우는 엄마의 모습이지요. 사실 이 갓난아기의 응아(새벽부터 자극적인 단어를 쓰면 안 될 것 같아서 이제부터 ‘응아’로 표현하겠습니다.) 냄새는 정말로 지독했습니다. 변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쁘고 귀여운 아이의 모습과는 달리 제 코를 자극하는 그 냄새는 도저히 견디기 힘들었지요. 그래서 차마 코는 막지 못하고(혹시 아기엄마를 곤란하게 하는 것이 될까봐), 숨을 최대한 쉬지 않으면서 그 자리를 버티고 있었지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기엄마의 표정입니다. 그렇게 냄새가 지독한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웃으면서 기저귀를 갈아주네요. 아니 그것도 부족했는지, 가까이 얼굴을 대고 응아 색깔까지 이리저리 살핀 뒤에 기저귀를 갈아주는 것이 아닙니까?

결혼해서 아기를 가지면 코가 막혀서 냄새를 맡지 못할까요? 아니지요. 아기가 너무나 사랑스럽기 때문에, 아기와 관계되는 모든 것이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심지어 응아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여기서 엉뚱한 상상을 한번 해봐요. 만약 아기가 냄새나고 지저분한 응아로 엄마를 괴롭힌다고 생각하면서, ‘이제 응아 싸지 않겠어.’라고 다짐하고는 응아를 꾹 참는다면 어떨까요? 만약 아기가 이러면 엄마는 “에구, 우리 새끼……. 엄마 생각해서 응아도 꾹 참고, 너무 예쁘고 착하네.”라고 말할까요? 아니지요. 제때에 응아를 하지 않으면, 어디 잘못된 것이 아닐까 걱정하면서 병원에 데리고 갈 것입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도 이렇지 않을까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이 갓난아기보다도 더 철없고 어릴지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의 죄와 잘못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 하느님을 어려운 분으로만 생각하며, 죄책감으로 하느님과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엄마 힘들게 하지 않겠다고 응아를 참는다고 그것이 효도가 되지 않는 것처럼, 죄책감으로 인해 고개만 푹 숙이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하느님께 충실한 모습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십니다.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 됨은 바로 하느님과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 안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나와 주님과의 관계는 과연 어떤가요? 혹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는 노래 제목처럼, 주님을 내게서 멀리 떨어진 분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주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아주 가까이에서 가장 큰 사랑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조그만 노력으로도 주님과 충분히 하나 될 수 있습니다.
+ 조명연 마태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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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아직까지 양승국 신부님 묵상글이...

올라오지 않아
대신 빠다 킹 신부님 복음 묵상글을 올립니다.
안셀모

나의 복음 묵상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신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저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느님의 사랑이 머물 수 있도록 절절히 기도하십니다.
하느님 사랑의 본질은
함께하시며 돌보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야훼 이레', 그리고 에벤 에채르'입니다.
선한 마음으로 일상도를 살아가면
야훼 이레 하느님께서 함께 해 주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나의 삶의 자리에 접지하기 ***
오늘 하루, 다가올 모든 일을 선한 열린 마음으로 맞이하자.
어버이 날입니다. 전화 한 통화로 그리움을 달랠 수 밖에 없는 멀리 계신 어머니를 기억합니다.
안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