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5/9 부활 제7주간 금요일…양승국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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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9일 부활 제7주간 금요일-요한 21장 15-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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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과 함께 아침을 드신 다음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 양들을 돌보아라.” 예수님께서 다시 두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어,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이렇게 이르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요한 21,15-19)


<결국 사랑입니다>

대인관계 안에서 정말 참아내기 힘든 모습이 무관심인 것 같습니다. 그 어떤 표현을 해도 그저 무표정입니다. 심드렁합니다. 분위기도 냉랭합니다. 얼굴 마주치지 않는 편이 마음 편합니다. 차라리 내면의 분노나 공격성을 드러내놓는 편이 훨씬 더 낫습니다. 미움보다 더 나쁜 것이 무관심이란 말 백번 맞는 말 같습니다.

그런가 하면 마치 갓 낚아 올린 물고기 같은 싱싱한 관계맺음이 있습니다. 그 관계는 생동감이 넘칩니다. 파닥파닥 뜁니다. 생기 있는 대화가 오고 갑니다. 살아있는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예수님과 베드로 사도 사이의 관계가 그랬습니다. 공생활 기간 동안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에 맺어진 관계 맺은 방식은 참으로 역동적입니다. 때로 서로 상처를 주고받기도 합니다. 한때 등을 돌리기도 합니다. 때로 떠나가기도 합니다. 죽고 싶을 정도로 후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 관계는 더욱 심오해집니다. 성숙해집니다. 흥미진진해 집니다.

그 배경에는 ‘예수님’이란 ‘보물창고’가 있습니다. 다른 인간과는 달리 예수님과의 관계는 싫증나지 않습니다. 식상하지 않습니다. 정체되지 않습니다. 어색하게 끝나지 않습니다. 관계가 진전되어갈수록 더 깊이 빠져 들어갑니다. 점점 더 매력이 증대됩니다. 점점 더 감미롭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에 이루어졌던 관계맺음 방식의 특징이었습니다.

공생활 기간 동안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에 이루어졌던 관계, 참으로 다사다난했습니다. 마치 한권의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진진합니다.

반신반의와 불신, 배신으로 얼룩진 베드로의 부실한 처신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노력은 한결같습니다. 눈물겹습니다. 끊임없이 용서하십니다. 지속적으로 화해를 시도하십니다. 끝도 없이 넘치도록 생명의 에너지를 공급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들을 떠나가기에 앞서 수제자 베드로와 그간 이어져왔던 관계를 최종적으로 종합하시는데, 결국 결론은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세 번이나 반복해서 당신을 향한 베드로의 사랑을 확인하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사람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바위틈에 숨겨져 있는 물건이라도 되는 듯이 ‘사랑을 찾았다’고 말들을 하는데, 사실 그 사랑은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변함없는 사랑, 한없는 사랑, 한결같은 사랑, 깊고 조용한 사랑,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 그 사랑이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건네신 사랑이었고, 오늘 복음에서 확인하신 사랑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사랑하십시오. 그것이 전부입니다.”

“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영원한 사랑과의 영원한 만남을 준비하기 위해 주어진 약간의 시간일 뿐입니다.”(아베, 피에르 신부)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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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나의 복음 묵상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세번에 걸친 "베드로야,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는 주님의 물음에 베드로는...
"예, 사랑합니다."
"사랑하고 말고요. 주님께서 아시잖아요?"
"사랑하다마다요, 그거야 주님께서 아시잖아요? 아시면서 왜 자꾸 뭇고 그러세요?"
이렇게 갈수록 확신에 찬 대답을 합니다.

만약 주님께서 "안셀모야,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번을 연이어 물으시면...
"예, 사랑합니다."
"글쎄요, 사랑..."
"..."
이렇게 갈수록 대답이 희미해질 것 같습니다.

믿음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온전히 사랑할 수 없습니다.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이 가장 사랑했던 제자는 사도 요한이나 막달라 마리아였고,
예수님을 가장 사랑했던 제자는 베드로였지 않았을까요?

*** 나의 삶의 자리에 접지하기 ***
나 자신부터 사랑해야겠습니다.
나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보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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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를 얼마나 사랑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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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