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5/23 연중 제7주간 금요일…양승국 신부님
5월 23일 연중 제7주간 금요일-마르코 10장 1-12절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 지방과 요르단 건너편으로 가셨다. 그러자 군중이 다시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늘 하시던 대로 다시 그들을 가르치셨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모세는 너희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였느냐?” 하고 되물으시니, 그들이 “‘이혼장을 써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모세는 허락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런 계명을 기록하여 너희에게 남긴 것이다. 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집에 들어갔을 때에 제자들이 그 일에 관하여 다시 묻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면, 그 아내를 두고 간음하는 것이다. 또한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혼인하여도 간음하는 것이다.” (마르 10,1-12)
<때로 쓰디쓴 현실, 결혼>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좋습니까?”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를 연구하던 한 학자가 기막힌 내용의 글귀를 발견했답니다.
“요즘 아이들, 정말 버릇도 없고 문제가 심각하다.”
참 재미있습니다. ‘청소년 문제’, 오늘 우리 시대만 심각한 것인 줄 알았는데, 이미 수천 년 전 어른들도 머리 싸매고 고민했던 문제가 청소년 문제라는 것입니다.
이혼 문제도 마찬가지임을 오늘 복음을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복음서가 씌어 진 후 벌써 2천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요즘 우리 시대만 이혼문제가 심각한 줄 알았는데, 예수님 시대 당시뿐만 아니라, 더 거슬러 올라가서 모세 시대 역시 이혼문제는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혼인의 불가해소성’을 완화시키고, 이혼을 합리화시키려는 경향이 모세 시대뿐만 아니라 예수님 시대에도 만연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모세가 이혼장을 써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해주었는데, 그렇다면 살다가 마음에 안 들면 이혼해도 큰 문제없지 않겠느냐’고 예수님께 따집니다.
사람들이 가만히 있는데, 괜히 모세가 앞장서서 이혼을 허락했겠습니까? 또 별 이유도 아닌데 이혼을 허락했겠습니까?
사람들이 당시 백성들이 지도자였던 모세에게 갖은 협박을 가하고 괴롭히니 할 수 없이 특별한 케이스에 한해서 선별적으로 허락을 해준 것을 가지고 바리사이들은 이토록 물고 늘어진 것입니다.
이혼하는 부부들, 그들 나름대로의 사정을 들어보면 참으로 ‘기막힌’ 케이스들이 많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헤어지는 것이 서로가 사는 길인 부부도 있습니다. 속아서 결혼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혼사유로 ‘성격차이’를 내세우는 분들도 있는데, 이것만큼은 재고되어야 합니다. 30년 가까이 서로 다른 가정환경, 문화, 분위기, 가족관계 안에서 살아오던 두 사람이 결혼을 통해서 한배를 타게 됩니다. ‘성격 차이’는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성격이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합니다.
결혼은 어쩌면 또 다른 하나의 세상을 만나는 것입니다. 결혼은 어쩌면 또 다른 하나의 우주를 만나는 것입니다. 결혼은 어쩌면 스승 한분을 만나는 것입니다.
결혼을 통해 부부는 긴 항해를 시작합니다. 결혼을 통해 부부는 공부를 시작합니다. 어쩌면 배우자는 신천지입니다. 갖은 다양한 탐구거리로 가득 찬 새로운 대양이 배우자입니다.
결혼생활을 영위하시는 분들, 상대방을 내 소유물로 설정하지 마십시오. 상대방을 내 성취의 도구로도 생각하지 마십시오. 상대방을 내 욕구충족의 대상으로도 여기지 마십시오.
그는 멀고먼 은하계에서 오직 나만을 찾아 정확하게 내 안에 떨어진 하나의 별입니다. 그는 나의 성장을 위해, 나의 구원을 위해 다가오신 또 다른 하느님입니다.
슬픈 일이지만 결혼은 현실입니다. 사람은 이슬만 먹고 살지 않습니다. 결혼은 사랑에 밥 말아서 먹고 사는 것 일거라는 환상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는 것이 좋습니다. 텔레비전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입니다. 결혼은 때로 쓰디쓴 현실입니다. 길고 험난한 자신과의 투쟁입니다. 결혼은 수도생활 못지않은 오랜 자기 수련과 고행의 길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첨부파일 | 크기 |
---|---|
img_2750962_1370730_0.jpg | 122.86 KB |
002(43).jpg | 37.89 KB |
- Login to post comments
- 조회:1912
댓글
나의 복음 묵상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언젠가 미사 중 강론 시간에 신부님께서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지금 배우자와 결혼할 사람 손 들어 보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는 전혀 망설임 없이 손을 번쩍 들었습니다.
주위를 둘러 보니 손 든 사람이 저 밖에 안 보여
(나중에 들어 보니 뒤에서 한 사람 더 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만...)
민망함을 줄이기 위해
"아니 이렇게 점수 따기 좋은 기회인데, 왜들 손을 안 들지?"하고 웃었습니다만...
아직도 같은 물음에 같이 답할 것 입니다.
그렇다고 아무런 충돌이나 갈등 없이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살아 오면서 배려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같이 살아 가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오늘도 발 맞추기를 하면서 하루를 살아 갑니다.
*** 나의 삶의 자리에 접지하기 ***
나로 인해 함께 하는 모두가 기뻐하는 연휴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안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