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5월 28일 연중 제8주간 수요일…양승국 신부님
5월 28일 연중 제8주간 수요일 - 마르코10,32-45
그때에 예수님의 일행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앞에 서서 가고 계셨다. 그들은 놀라워하고 또 뒤따르는 이들은 두려워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열두 제자를 데리고 가시며, 당신께 닥칠 일들을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조롱하고 침 뱉고 채찍질하고 나서 죽이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 저희가 스승님께 청하는 대로 저희에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도 마시고,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이나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정해진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야고보와 요한을 불쾌하게 여기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라는 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모든 이의 종이 되어야 한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마르 10,32-45)
<차마 가기 싫었던 형극의 길>
지난 성목요일 밤, 세족례 예식 때의 일이 기억납니다. 늘 해오던 세족례 예식이었지만, 올해는 좀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아이들 앞에 허리를 굽혀 발을 씻겨주던 순간, 아이들의 발을 수건으로 감싸 닦아주던 순간 2000년 전 똑같은 모습으로 제자들 앞에 허리를 굽히신 예수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느님께서 한 부족한 인간의 발을 씻어주시던 그 모습, 그 발에 입을 마주시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이 다 나오려고 했습니다.
제발 좀 겸손하라고, 끊임없이 낮아지라고 그렇게도 강조했지만 그저 한쪽 귀로 듣고 다른 쪽 귀로 흘려버리던 제자들이 너무도 안타까웠던 예수님이셨습니다.
최후의 수단으로 제자들 앞에 무릎을 꿇으신 것입니다. 아무리 말해도 도통 말귀를 못 알아듣는 우리를 위해 최후의 방법, 극단적인 방법을 쓰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두 제자들(제베대오의 두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 역시 마찬가지로 아직도 갈 길이 멀었던 제자들이었습니다.
핵심제자단에 속해 있던 두 사람이었지만, 하는 말들 좀 보십시오.
“스승님, 소원이 있습니다. 꼭 들어 주십시오. 스승님께서 영광의 자리에 앉으실 때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
보십시오. 두 사람이 예수님께 지금 청하고 있는 것은 어리석게도 이 세상의 권력입니다. 예수님께서 정권을 잡으시면 국무총리나 당 대표 정도를 시켜달라고 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승께서는 지금 죽어도 가고 싶지 않은 곳이나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장소인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계시는데, 진정 살 떨리는 공포의 골고타 언덕을 서서히 올라가고 계시는데, 철없는 두 제자는 ‘물 좋은 자리’ 운운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승께서는 아버지께서 주실 고난의 잔 때문에 괴로워 죽겠는데, 개념 없는 두 제자는 앞으로 연봉이 얼마가 될 것이며, 골프장은 어디가 좋으며... 이딴 소리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십자가의 진리는 참 진리이지만 어쩌면 제자들에게 있어 생각조차 하고 싶지도 않은 진리, 회피하고 외면하고 싶은 진리, 따르고 싶지 않은 진리였는지 모르겠습니다.
환호 속에 걸어가는 영광과 승리의 메시아만 선호했지 수난 받는 메시아, 참혹하게 사람의 손에 죽어간 고통과 순명의 메시아는 안중에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수난 당하시는 하느님, 겸손하신 예수님, 봉사하고 섬기는 데 전공이신 그리스도를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진정한 권위는 이웃의 이익을 위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하신 것이란 생각 말입니다. 이를 가르치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일평생 끊임없이 낮은 곳으로 내려가신 것이겠지요. 한평생 지속된 겸손의 삶,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일생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메시아를 기다립니까?
혹시라도 우리가 기다리는 그분은 다분히 이기적인 욕구들을 우리가 청할 때 마다 즉각적으로 들어주시는 나만의 메시아가 아닌지요?
혹시라도 우리가 기다리는 그분은 잠시 스쳐지나가는 이 세상 것들에 모든 것을 걸라고 속삭이는 가짜 메시아는 아닌지요?
우리에게 오신 메시아는 군림이나 명령과는 거리가 먼 메시아셨습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나 권력과는 거리가 먼 메시아셨습니다. 현세적 축복이나 안녕만을 지속적으로 보장해주는 마술사 같은 메시아가 절대 아니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오신 메시아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호화찬란한 왕궁은 고사하고 초라한 여인숙으로부터도 환영받지 못해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겸손의 왕이셨습니다. 쓰디쓴 고난의 잔을 기꺼이 받아 마셔야 했던 고통의 왕이셨습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눈물을 머금고 차마 가기 싫었던 형극의 길을 걸어가야 했던 슬픔의 왕이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하나하나 씻어주셨던 섬김의 왕이셨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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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복음 묵상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오늘도 주님이 흘리신 피의 잔을 받아 마셨습니다.
주님이 몸소 보여주신 삶의 현장으로의 초대입니다.
주님께선도 피하고 싶으셨던 그 고통의 삶의 현장으로의 초대입니다.
주님과 하나되면 어떤 고통도 견디어낼 수 있습니다.
이 길만이 영원한 삶으로 통하는 길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 나의 삶의 자리에 접지하기 ***
아내가 어렵사리 준비한 외국어로하는 발표 날입니다.
이 사건을 통하여 또 다른 삶의 지평에로 주님께서 이끄시고 함께 하시도록 기도합드립니다. 아멘.
안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