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6/5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양승국 신부님
6월 5일 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마르코 12장 28-34절
그때에 율법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그러자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훌륭하십니다, 스승님. ‘그분은 한 분뿐이시고 그 밖에 다른 이가 없다.’ 하시니, 과연 옳은 말씀이십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슬기롭게 대답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고 이르셨다. 그 뒤에는 어느 누구도 감히 그분께 묻지 못하였다. (마르 12,28-34)
<왜 좀 더 사랑하지 못했을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아주 중요한 과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릇된 하느님 상에 대한 재정립’입니다.
이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신앙생활이 부담스럽습니다. 성사 생활도 짐입니다. 매사가 자유롭지 못합니다.
많은 분들이 왜곡된 하느님 상을 지니고 있어 ‘쌩고생’입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절대로 ‘쫀쫀한’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칼같이 심판만 하시는 분도 절대 아니십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우리를 위협하시는 진노의 하느님도 결코 아니십니다.
두려움의 대상도 아니십니다. 전혀 손에 잡히지 않는 애매모호한 분도 절대 아니십니다. 우리와는 너무나 큰 간극 건너편에 계시는 ‘멀고먼 당신’도 아니십니다.
그분은 자상한 아버지 같은 분이십니다. 그분은 따뜻한 어머니 같은 분이십니다. 복음서에 잘 나타나 있는 대로 그분은 일곱 번씩 일흔 번까지도 우리를 용서하시는 용서의 주님이십니다. ‘나 같은 것이 감히 어떻게’ 하는 사람에게도 기쁘게 다가가셔서 손을 내미시는 겸손의 주님이십니다.
한분으로는 부족해서 세곱배기로 사랑하시는 삼위일체의 주님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다 다 포용하시는 바다 같은 분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은 다 수렴하시는 하늘같은 분이십니다.
결국 우리의 하느님은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그분에게서 사랑 빼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사랑 자체이신 분이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여러분들, 하느님은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자주 묵상하는 방법이 한 가지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 그 사람보다 백배, 천배 더 호감이 가는 분이 우리의 하느님이시리라 믿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면서 ‘참 훌륭하다’ ‘참 좋은 분이다’ ‘성인군자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다’며 칭송하는 그 사람보다 천배, 만배 더 훌륭한 분이 우리의 하느님이시리라 믿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그 사람보다 훨씬 더 사랑스런 분이 우리의 하느님이시리라 믿습니다.
가끔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사람도 이렇게 사랑스러운데, 하느님은 얼마나 더 사랑스러운 분이실까?’
‘이토록 부족하고 죄인인 우리들도 사랑하는 사람을 지극정성으로 챙기는데, 하느님 사랑의 크기는 과연 어느 정도일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또 무엇일까요? 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이 풍진 세상으로 보내셨을까요?
답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기 위해서입니다. 그 사랑에 힘입어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
임지를 바꿀 때 마다 들었던 생각입니다.
“왜 좀 더 아이들 더 사랑하지 못했을까?”
우리가 언젠가 이 세상 떠날 순간에도 마찬가지 후회를 할 것입니다.
“왜 좀 더 이웃사랑을 실천하지 못했을까?”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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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복음 묵상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하느님 나라에 멀리 있지 않다"는 이 말이
언뜻 듣기에 대단한 칭찬으로 들립니다만,
실제로는 "뭔가 모자란다"는 말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이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그리도 통렬하게 비판하셨던 이유가
잘 알고 있고, 남에게 번드르하게 말도 잘하면서
실제 행동이 따라가지 못 했던 것이었다는 것을 되새겨 보면,
아는 만큼, 말 만큼 손발도 따라 가라는 말씀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만큼
우리도 또 다른 주님이신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 나의 삶의 자리에 접지하기 ***
"나는 하느님 나라에 얼마나 가까이 가 있는가?"라고 나 자신에게 물어 보자.
주님을 몰랐던 그때는 눈을 딱고 볼래도 볼 수가 없는 그런 먼데 있는 나와는 상관 없는 그런 것이었다. 사실은 눈을 감고 있었으니...
그래도 어렴풋이나마 지평선 너머에 가물가물 보일락말락...
그러면서 한 번 봐야겠다고 애라도 쓰고 있으니
이것만 해도 감사해야 할 은총이다.
오늘 하루 하느님 나라에 한발짝 만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서는 그런 감사한 하루를 살아야겠다. 아멘.
안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