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6/9 연중 제10주간 월요일…양승국 신부님
6월 9일 연중 제10주간 월요일 - 마태오 5,1-12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 (마태 5,1-12)
<밑으로 내려서니>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는데, 찬찬히 주변을 돌아보니 감사할 일들, 행복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뭐니 뭐니 해도 하느님께서 계시다는 것, 그 하느님께서 과분하게도 ‘하루’라는 은총의 선물을 지속적으로 주고 계시다는 것, 죄인임에도, 나약함에도, 불충실함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기회를 주신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비록 티격태격하지만 홀로 고독에 밥 말아먹으며 외롭게 살아가지 않고 형제들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
자세를 낮추니 세상만사가 은총꺼리들입니다. 밑으로 내려서니 모든 것이 감사꺼리들입니다. 손에 쥔 것을 놓으니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너무나도 과분한 은총 속에 살아가고 있군요. 그렇다면 얼굴을 활짝 펴야 되겠습니다. 행복해 죽겠다는 얼굴로 살아가야 되겠습니다. 너무 기뻐 어쩔 줄 모르며 그렇게 살아가야 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산에 오르신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을 향해 장엄한 어조로 ‘진복팔단’을 선포하십니다.
천국에 오르는 길 여덟 가지를 아주 쉽고도 명료하게 가르치고 계십니다. 천국에 이르는 길은 소유가 아니라 가난임을, 창이나 칼이 아니라 사랑과 자비임을 선포하십니다.
참된 행복은 축척을 통해서가 아니라 버림을 통해서 온다는 것, 참된 기쁨은 올라감이 아니라 내려섬을 통해서 온다는 것을 설파하십니다.
저희 살레시오회 창립자인 돈보스코께서 저희 후배들에게 남겨주신 아주 소중한 유산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예방교육영성입니다.
예방교육의 여러 요소들 가운데 낙관주의와 기쁨이 있습니다. 낙관주의와 기쁨은 살레시오회원들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돈보스코는 철저한 낙천주의자였습니다. 그의 내면에는 언제나 기쁨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의 표정은 대체로 미소 짓고 있었습니다. 그의 영혼은 언제나 행복에 겨워있었습니다.
돈보스코의 기쁨, 행복, 그 배경에는 다른 무엇에 앞서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가 있었습니다. 하느님과의 끊임없는 대화에서 나온 결실이었습니다. 돈보스코의 기쁨의 원천은 한 마디로 기도였습니다.
돈보스코께서 지녔던 기쁨은 육적인 기쁨, 말초적 기쁨, 세상의 기쁨이 아니라 복음적 기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사목적 기쁨이었습니다. 하느님과의 일치를 통해서 느끼는 기쁨이었습니다.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그의 기쁨은 하느님 자녀로서의 기쁨이었습니다. 하느님께 신뢰함을 통해 얻는 기쁨이었습니다. 결국 돈보스코의 기쁨은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흘러나온 기쁨이었습니다.
행복해 죽을 지경인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 나처럼 불행한 사람 있으면 한번 나와 봐’라는 얼굴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원인이 뭔지 아십니까?
끝도 없이 올라가기만 원하기 때문입니다. 한번 올라가서는 절대로 내려오지 않으려고 기를 쓰기 때문입니다. 한번 차지한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또 얼마나 고생들이 많겠습니까?
반면에 행복해 죽겠다는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 원인이 뭔지 아십니까?
밑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낮은 자리에 있어서 그렇습니다. 바닥에서 기어 다니니 추락할 위험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낮은 곳에 서있으니 심신이 편안해서 그렇습니다. 플러스알파로 하느님 안에 살기 때문에 그렇게 행복합니다. 하느님께 모든 것 맡기고 나니 그렇게 행복합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희망이기에 그렇게 행복합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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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복음 묵상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마음 먹기에 따라 행복해지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합니다.
마음이 가난하다 함은
마음 속에 욕심이 없다 함과 같은 말이 아닐까요?
사람이 욕심이 없을 수가 있을까요?
욕심이 있고 없고는
얼마나 비우느냐 못 비우느냐의 차이가 아닐까요?
끝 없이 밀려오는 욕심,
비우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 나의 삶의 자리에 접지하기 ***
오늘도 '비움'을 화두로 예수님과 함께 하루를 시작합니다.
안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