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6/12 연중 제10주간 목요일…양승국 신부님
6월 12일 연중 제10주간 목요일-마태오 5,20ㄴ-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살인한 자는 재판에 넘겨진다.’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법정으로 가는 도중에 얼른 타협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고소한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넘기고 재판관은 너를 형리에게 넘겨, 네가 감옥에 갇힐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마태 5,20-26)
<신앙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나는 구기동에 사는 고정원입니다. 당신의 손에 우리 어머니와 사랑하는 처, 4대 독자인 아들이 죽었습니다. 사회의 잘못된 현실에 그 책임이 있습니다. 당신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습니다. 부디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으로 살아가시며 절대로 죽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이 만약 사형을 당하면 나도 그날이 사형 날입니다. 판사님 절대로 죽여서는 안 됩니다. 가족을 대표해서 용서를 빕니다.”
위 글은 5년 전 연쇄살인범 유영철씨에 의해 노모(85)와 부인(60), 4대독자인 아들(35)까지 모두 잃은 피해 당사자인 고정원 루치아노 선생님께서 쓴 글입니다. 똑 같은 내용의 편지를 한 통은 탄원서 형태로 판사님에게, 또 다른 한 통은 유영철씨에게 보내졌다고 합니다.
고선생님이 처음부터 이런 마음을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범인을 잡으면 아무 이유도 없이 단란한 가정을 파탄시킨 그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든 보복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범인도 죽이고, 저 또한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죠. 이런 생각 때문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 했습니다.”
그런 그분이 보통 사람으로서는 엄두도 못 낼 용서의 마음을 갖게 된 건 세례를 받게 된 후부터였습니다. 불교 집안이었던 고선생님은 아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 ‘함께 성당에 나가자’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3년 전 7월 세례를 받았습니다. 영세 후 고선생님에게 서서히 ‘용서해야겠다’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답니다. 이후 ‘유영철도, 또 나도 살아야하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 뒤론 사형제도 폐지운동에 적극 나서게 됐다고 합니다.
“제 가족을 죽였다고 해서 또 다른 생명이 인위적으로 꺾이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오히려 잘못을 뉘우칠 기회를 주어야지요.”
고선생님은 ‘신앙을 가지지 않았으면 용서를 못했을 것’이라며 ‘아직까지 이런 아빠의 행동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딸에게도 이 마음을 이해해 달라고 전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사형폐지를 촉구하는 모임에 참석했을 때 멀찍이 뒤에서 고정원 선생님을 뵌 적이 있습니다. 그간 참으로 견디기 힘든 세월을 보낸 고선생님이셨습니다.
입장을 한번 바꿔놓고 생각해보십시오. 병으로 가족이 세상을 떠나도 가슴은 미어질 듯 아픕니다. 그런데 연쇄살인범의 손에 아무런 잘못도 없이, 한 명도 아니고, 부인을 포함해서 세 명이나 목숨을 잃었습니다. 저 같았으면 도저히 그 충격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 가정을 완전히 요절내버린 그 사람을 도저히 용서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고선생님은 그를 용서한 것입니다. 그냥 용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용서하셨습니다. 용서한 것뿐만 아니라, 사형만을 면하게 해달라고 판사님께, 또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간곡히 청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신앙의 소유자이십니다. 진심으로 용서하라는 예수님의 복음을 온 몸으로 실천하신 분이십니다.
헬렌 프리진 수녀님의 강의가 계속되는 동안에도 가끔씩 먼저 떠난 아들이, 아내가, 노모가 생각나셨는지 자주 손수건을 꺼내 드셨습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진심으로 존경스러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용서와 화해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이웃이 우리에게 준 상처에 대해서 분노하고, 욕하고, 죽어도 용서 못할 때,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나 안정, 천국은 없다고 단정하십니다.
우리 마음이 분노로 가득 찰 때,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을 때, 얼마나 미운지 도무지 용서가 안 될 때, 그 순간 우리의 뇌세포는 정상작동이 안됩니다. 아이큐도 현저하게 떨어집니다. 상황판단 능력이 떨어집니다. 한 마디로 이성을 잃습니다. 그러한 상황은 살인까지도 가능하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해서든 크게 한 발 물러날 것을, 크게 양보하고 용서할 것을 강경하게 요청하시는 것입니다.
용서, 말은 쉬운데, 정말 어렵고도 어려운 과제입니다. 참으로 머나먼 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용서가 필요합니다. 그냥 용서가 아니라 고선생님과도 같은 완전한 용서, 복음에서 요청하는 참된 용서, 조건부의 용서가 아니라 100% 용서가 필요합니다.
용서가 없는 곳에 내적인 평화도 자유로움도 없습니다. 용서가 없는 곳에 신앙생활도 하느님 체험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결국 용서만이 우리가 살 길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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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나의 복음 묵상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남을 비판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어떤데?"라고 되물으면
저도 전혀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래도 남의 삶의 모습을 보고
"저건 아닌데...?"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만도 어딥니까?
"신앙생활은 무슨 신앙생활..???"하던 때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입니다.
*** 나의 삶의 자리에 접지하기 ***
오늘도 한걸음 앞으로...
안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