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6/24 화요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양승국 신부님
6월 24일 화요일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 루카 1,57-66.80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루카 1,57-66.80)
<배터리가 다 닳아져 가는데도>
돌아보면 세월이 얼마나 빠른지 모릅니다. 수도회 연례피정이나 세미나에 참석하면 당연히 공동침실을 사용했었고, 또 식사시간만 되면 어떻게 해서든 어르신들이 계시는 메인테이블에 안 앉으려고 하고 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요즘은 어디 모임에만 갔다하면 늘 독방신세이고, 초기 양성자들은 어떻게 하면 제 옆자리에 안 앉으려고 기를 씁니다.
이 말은 저도 슬슬 한 물가고 있다는 말이겠지요. 다시 말해서 이제 슬슬 노년에 대해서 신경을 쓸 때가 가까이 온 것 같습니다. 자주 죽음에 대해서 생각도 해봅니다. 어떻게 죽어야 잘 죽나? 자주 생각합니다.
‘노년기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가 직면해야할 중요한 과제 중에 하나입니다. 사회인들에게 있어 그 정답은 너무나 확연합니다. 노년기에 접어들어서도 그 나름대로의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입니다.
부부생활의 영속성은 행복한가? 불행한가의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것입니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노인들의 뇌리 속에는 경제력 있고 효심 지극한 자녀보다 더 큰 행복은 없을 것입니다. 어느 정도 경제적인 안정과 독립성은 노년기 행복의 중요한 척도입니다. 건강 여부 역시 노인들에게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행, 불행의 중요한 관건이 됩니다. 심신이 모두 건강한 노인, 노년기에 접어든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꿈꾸는 행복한 삶의 기준일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가치 있고 의미 있는 노년을 보내는 분들도 계십니다. 자기초월의 길을 걷고 계시는 분들이지요. 비록 늦었지만 인생에 있어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깨달은 분들, 그래서 그 깨달음에 투신하는 분들의 모습 참으로 행복해 보입니다. 지나온 인생을 조용히 되짚어보면서 비록 늦었지만 자기 정화의 길을 시작하는 분들, 비록 험난한 여정이지만 영적 쇄신의 길을 시작하는 노인들의 모습은 얼마나 보기가 좋은지 모릅니다.
이런 의미에서 세례자 요한의 삶과 죽음은 우리의 노년에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가 비록 노년의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의 등장으로 인해 무대 뒤로 물러서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보여준 모습은 참으로 의미심장합니다.
이미 충만한 영적 삶을 영위하고 있었던 세례자 요한이었기에, 자신의 정체성을 잘 파악하고 있었던 세례자 요한이었기에 무대 뒤로 사라짐이 결코 섭섭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이란 존재가 점점 작아지고 예수님이 점점 커지는 것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기뻐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처럼 영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능력을 갖추는 일, 영적인 눈을 뜨는 일, 그것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과제입니다. 배터리가 다 닳아져 가는데도, 이 세상 하직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도, 철저하게도 육적으로만 사는 분들, 철저하게도 세속적으로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이 세상을 초탈하려는 분들 앞에는 새 세상이 펼쳐집니다. 주어지는 현실이 아무리 고통스럽다하더라도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니 마음에 여유가 생깁니다. 지나가는 것들에 연연하지도 않습니다. 목숨 걸고 싸울 일도 없습니다. 편안해집니다. 소화도 잘 됩니다.
이렇게 자신의 삶 안에서 세상 것들로부터 이탈해서 주님을 향해 영적 여행을 시작하는 전환점을 마련하는 인생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바람직한 인생이며 의미 있고 새로운 인생이며, 영적 인생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비록 늦었지만 한때 빗나갔던 우리 자신의 인생을 겸손한 마음으로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어떤 원인으로 인해 방향이 틀어졌는지 철저하게도 자신의 인생을 분석해보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의 시각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의 마음 안에 확실하게 영적인 삶에로의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길 기원합니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노년을 위하여>
아름답고 향기로운 노인이 되고 싶다.
젊었을 때의 그 순수함과 다감한 마음씨를 간직했으면...
점점 더 심해지는 아집과 집착, 그리고 편견 같은 것을 버렸으면...
아흔아홉 가지의 만족함을 팽개치고,
한 가지의 부족함에 목매는 어리석음도 놓아버렸으면...
세상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마음으로,
하느님에게는 당신에 대한 그리운 가슴으로 살아가는
나날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 속에
한 그루의 커다란 나무가 되어
여름철 뜨거운 햇볕을 막아 주고
사람들이 기대어 쉴 수 있는 그늘이고 싶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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