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9/2 연중 제22주간 화요일…양승국 신부님
9월 2일 연중 제22주간 화요일-루카 4장 31-37절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 고을로 내려가시어, 안식일에 사람들을 가르치셨는데, 그들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의 말씀에 권위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그 회당에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 저는 당신이 누구신지 압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꾸짖으시니, 마귀는 그를 사람들 한가운데에 내동댕이치기는 하였지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하고 그에게서 나갔다. 그러자 모든 사람이 몹시 놀라,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 하며 서로 말하였다. 그리하여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루카 4,31-37)
<맑음, 따뜻함, 편안함, 부드러움>
며칠 전 어떤 미사에서 신학교를 같이 다닌 한 후배 신부를 만났을 때의 일입니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었는데, 찬찬히 보니 분명했습니다.
후배 신부를 만난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세월이 벌써 많이 흐른 탓이 있겠지만, 옛날의 장난꾸러기 신학생의 모습은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만만치 않은 본당 사목생활의 흔적이 확연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슬슬 배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머리카락 숫자도 많이 줄어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기뻤습니다. 어찌 그리도 얼굴이 편안해 보이던지 놀랐습니다. 눈길은 따뜻했습니다. 겸손과 온유가 몸 전체에 배어있었습니다. 온 몸에 성덕의 향기가 풀풀 풍겼습니다. 충실한 영성생활의 결실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런 후배 신부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크나큰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악령을 다스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봅니다. 악령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먼저 갖춰야할 조건이 있습니다. 영을 보기 위해서, 영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에 앞서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영적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영적인 사람은 영이 ‘맑은 사람’입니다. 삶이 영으로 충만한 사람입니다.
우리 가운데 이런 사람은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도 강조하신 바처럼 어린이들입니다. 또는 비록 나이가 들었어도 어린이들이 지닌 맑음, 영혼의 순수성을 지닌 사람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람들은 너무나 대조적으로 변해갑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눈빛은 더욱 맑아집니다. 인품이 더욱 고결해져만 갑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매는 점점 따뜻해져만 갑니다. 주변 사람들을 아주 편안하게 해줍니다. 지극히 겸손해서 적당한 때 물러날 줄 압니다.
결국 따지고 보니 이 시대 최고의 권위는 순수함입니다. 맑음입니다. 정직함입니다. 겸손함입니다. 따뜻함입니다. 부드러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위 있는 말씀에 놀랍니다.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권위는 세상 사람들이 권위와는 철저하게도 그 맥을 달리 합니다.
그분의 권위는 경직, 뻣뻣함, 강요, 힘, 법에 의한 권위가 절대 아니었습니다.
친절과 온유, 겸손과 인내, 연민과 측은지심, 결국 하느님의 사랑을 배경으로 한 권위입니다.
이런 사랑의 권위였기에 악령조차도 고개를 숙였던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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