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9/1 연중 제22주간 월요일…양승국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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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일 연중 제22주간 월요일 -루카 4장 16-3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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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 할 것이다.” 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루카 4,16-30)


<마음으로 듣기>

여행 중에 ‘경청’(조신영, 박현찬 공저, 위즈덤 하우스)이란 책을 읽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어찌나 마음이 찔리던지 혼났습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제게 꼭 필요한 내용들이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달변이 아니라 경청에 있습니다. 경청은 삶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바꿔줍니다.”

“귀 기울여 들으면(以聽)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得心) 있습니다.”

“서로에게 귀 기울이는 것은 모두를 살리는 창조적 공존의 길입니다.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면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성공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다른 사람도 성공시킨 사람이고, 성공하는 조직은 다른 조직을 살리는 조직입니다. 그러한 성공은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는 데서 시작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다가가 이야기를 성실하게 들어주는 것은 그 자체가 존중이고 사랑입니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자기 말을 들어주고 자기를 존중해주며, 이해해주는 것입니다.”

“눈앞에서 어떤 사람이 내게 애기할 때, 그 사람이 소리 내어 말하는 것,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마음의 소리’인데 그걸 듣기는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마치 꽃의 소리를 듣는 것이 어렵듯, 구름의 소리를 듣는 것이 어렵듯, 사람과의 대화에서도 그 사람 깊은 곳에 있는 진짜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청중들은 예수님 말씀을 듣기는 했지만, 그저 귀로만 들었습니다. 말 마디 그 자체에만 집중했습니다. 자기 입장에서 해석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예수님 말씀의 진의(眞意)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비수 같은 예수님의 말씀에 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이 찔리다보니 벼락같이 화를 냈습니다. 분에 못이긴 나머지 예수님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갔습니다.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뜨리고자 했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을 살해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마음으로 들으려는 노력이 부족했습니다. 그로 인해 ‘메시아 거부’란 일생일대 가장 큰 실수를 범했고, 역사 안에 가장 큰 오점을 남기게 된 것입니다.

경청이 미덕이란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실행에 옮기기란 너무도 힘듭니다. 진지하고 성의 있게 남의 말을 들어주는 그 자체가 사랑이고 큰 미덕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마음의 귀가 열린다는 것, 참으로 큰 축복입니다. 영혼의 귀가 열린다는 것, 참으로 큰 은총입니다.

영혼의 귀, 마음의 귀가 열리기 위해 꼭 필요한 예비 작업들이 몇 가지 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자기 비움’이며 ‘내려놓음’입니다.

하루가 지나가고 밤이 찾아오면 나를 힘겹게 했던 그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새로운 아침이 밝아오면 새로운 마음의 눈으로 그를 바라봐야 합니다.

지속적인 자기 비움과 내려놓기 작업을 통해 언젠가 우리는 그리도 갖고 싶었던 ‘혜안’(慧眼)을 지니게 될 것입니다. 요원하게만 느껴졌던 ‘깨달음’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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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나의 복음 묵상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마음을 연 만큼 숨겨진 뜻이나 의미가 보이거나 들립니다.
어느 방향으로 마음을 여느냐에 따라 어떤 뜻이나 의미가 달리 보입니다.

어제 천마산 밑 친구집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유복하고 잘나가는 집안의 공부도 잘하고 너무나 모범생으로 집에서 어느 것 하나 손 댈 것이 없었던 고2의 학생이 18층에서 몸을 던졌다고 합니다. 핸드폰에 남긴 유서에는 "엄마, 아빠 그리고 형, 먼저 가서 미안하다. 그래도 가야만 할 것 같다. 먼저 가서 하늘에서 지켜 볼께."라고만 하고 무엇이 삶을 포기하게 할 만큼 그를 힘들게 했는지에 대해서는 어떤 단서도 없었다고 합니다. 폐쇠회로에 잡힌 영상에서는 자기 집인 8층 엘리베이트 버턴을 눌렀다가 잠시 머뭇거리고 8층 버턴을 다시 누르고 18층 버턴을 눌러고, 18층 가는 사이에 핸드폰에 유서를 문자로 입력하고 엘리베이트에서 나가자마자 가방, 핸드폰, MP3를 복도에다 두고 어떤 머뭇거림도 없이 바로...부모들은 받아들이기를 너무 힘들어하고 있다고...

이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을 열고 모든 것을 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되새기게 되었는데...
오늘 복음 말씀에서 마음의 눈으로, 마음의 귀로 보고 들어야 한다고 다시 한번 일러 주고 있는 듯 합니다.

*** 나의 삶의 자리에 접지하기 ***
비록 툭탁거리며 타투기도 하지만 속내를 이야기 하곤 하는 아들과 딸에게 감사해야겠습니다.
안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