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9/11 연중 제23주간 목요일…양승국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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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1일 연중 제23주간 목요일-루카 6장 27-3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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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 말을 듣고 있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 달라고 하면 누구에게나 주고, 네 것을 가져가는 이에게서 되찾으려고 하지 마라. 남이 너희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은 사랑한다. 너희가 자기에게 잘해 주는 이들에게만 잘해 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그것은 한다. 너희가 도로 받을 가망이 있는 이들에게만 꾸어준다면 무슨 인정을 받겠느냐? 죄인들도 고스란히 되받을 요량으로 서로 꾸어준다.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에게 잘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심판받지 않을 것이다. 남을 단죄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단죄받지 않을 것이다. 용서하여라. 그러면 너희도 용서받을 것이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 (루카 6,27-38)


<참 겸손이란 인생의 금맥>

산책로를 따라가며 묵주기도를 드리다가 수풀 속에서 날아오르는 반딧불이 무리를 만났습니다.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으로 들어온 것 같은 느낌과 더불어 유년시절을 필두로 지난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더군요.

‘회한(悔恨)의 눈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난 과거를 돌아보며 누구나 한 두 번씩은 눈물을 흘려본 기억이 있을 것입니다. 미성숙한 탓에 저지른 과오나 충족되지 못한 부분에 대한 후회, 안타까움에 흘리는 눈물을 말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완전히 성취한 꿈보다 못다 이룬 꿈이 더 아름답게 보입니다. 정복한 산보다 아쉬운 눈물 머금고 발길 돌린 산이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완성, 완전함이란 단어보다는 미완성, 불완전함이란 단어가 더욱 친숙합니다.

환한 대낮보다는 어스름 저녁이, 빛나는 성공보다는 참담한 실패가, 충만한 기쁨보다는 썰물 같은 슬픔이 더욱 정겹게 다가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채워주시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앞에 늘 탄탄대로만 펼쳐주시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언제나 꿈같은 봄날만 허락하지는 않으십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가끔씩 칠흑같이 깜깜한 밤을 체험하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반드시 필요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다 이유가 있어서 주시는 것입니다.

심연의 슬픔, 나락으로 떨어지는 좌절감, 깊은 상처... 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꼭 필요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역설의 진리는 말이 쉽지 깨닫기 어렵습니다. 납득하기 힘든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 우리가 취해야할 자세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밑으로 내려서기’입니다. 적당 선에서가 아니라 한없이 깊고 깊은 심연의 바닥으로 내려서기입니다.

내려가는 도중에 우리는 그 알량한 자존심, 웃기는 우월감, 마지막 남은 ‘나’까지도 양파 껍질 벗기듯이 훌훌 벗겨버리고 나서 심연의 동굴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 순간 ‘참 겸손’이란 인생의 금맥이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런 작업을 해보라고 우리 각자에게 권고하십니다.

예수님의 권고말씀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너무 지나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내밀고, 네 겉옷을 가져가는 자는 속옷도 가져가게 내버려 두어라.”

결국 한 마디로 요약하면 바보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속도 밸도 없는 천치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최종적으로 모든 것 훌훌 벗고 알몸으로 살라는 말씀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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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나의 복음 묵상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주실 것이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됫박으로 되질하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어떤 때는 싹 깍아 한치의 덤도 없이 되시고
어떤 때는 넘치도록 덤뿍 덤을 얹어 되질을 하셨습니다.
그래도 누르고 흔들어서 되질을 하는 모습은 기억에 없습니다.

하느님의 되질하시는 모습은
더주고 싶어 안달하는 그런 모습입니다.
너무나 큰 배려와 여유가 묻어나는 그런 모습입니다.

최근 들어 배려와 여유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배려를 위한 여유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제가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나의 삶의 자리에 접지하기 ***
자존심과 우월감을 한 껍질 벗어 던져 여유를 만들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