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9/17 연중 제24주간 수요일…양승국 신부님
9월 17일 연중 제24주간 수요일-루카 7장 31-35절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니 이 세대 사람들을 무엇에 비기랴? 그들은 무엇과 같은가?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사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 (루카 7,31-35)
<이 시대의 미덕, 공감(共感)>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일컫는 이유는 아무래도 인간이 지닌 ‘이타적 성향’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참인간은 ‘자기’라는 울타리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이웃과 세상을 향해 나아갑니다.
돈 한 푼 나오지 않는 일이지만 이웃이 당하고 있는 부당한 현실 앞에 기꺼이 발 벗고 나섭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낯선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가 긴박한 상황에 처하면 위험을 무릅쓰고 위기 상황에 뛰어듭니다. 이웃이 겪고 있는 깊은 슬픔에 연민의 정을 느끼는가 하면 이웃의 아픔에 적극적으로 동참합니다.
오늘 이 시대가 안고 있는 참으로 심각한 문제 하나는 ‘소통의 단절’입니다. 인간 각자가 마치도 고립된 섬과도 같습니다. 같이 살아도 진정으로 같이 살지는 않습니다. 대화를 하고 있지만 진정한 대화가 아닙니다.
공감(共感)할 줄 안다는 것, 이 시대가 요청하는 참으로 큰 미덕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공감의 능력이라곤 털끝만큼도 없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준엄하게 꾸짖으십니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
인간관계 안에서 참으로 견디기 힘든 것이 냉담함입니다. 무표정입니다.
분위기 한번 반전시켜보려고 ‘생쑈’를 다해도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별의 별짓을 다해도 그저 심드렁한 얼굴입니다. 온몸과 마음을 다해 극진한 사랑을 표현하지만 그저 소 닭 보듯 멀뚱멀뚱 쳐다봅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님도 똑같은 체험을 하셨습니다. 그릇된 신앙, 왜곡된 논리에 젖어 허우적거리며 죽음의 길로 빠져들던 율법학자들, 두렵고 경직된 얼굴로 하루하루 두려움 속에 힘겹게 살아가던 바리사이들의 삶이 너무나 안타까우셨던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래서 선구자로 세례자 요한을 당신에 앞서 파견하셨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와 새 출발을 강력하게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저자는 마귀 들렸다’며 거부합니다. 그리고는 참수형으로 몰고 갔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일이 있습니다. 그토록 오랜 세월 고대했던 메시아 예수님이 도래하셨습니다. 이분까지도 ‘먹보요 술꾼’이라며 거부합니다. 십자가형으로 몰고 갔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결정적 실수 그 배경에는 경직된 신앙이 있었습니다. 새로움을 죽어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완고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내가 최고라는 뻣뻣한 목덜미가 있었습니다.
결국 따지고 보니 부드러움이 인류를 구원합니다. 편안함, 친절함, 편안함, 넉넉함, 통틀어서 ‘호감’이 새 세상을 건설합니다.
호감이 지닌 매력은 생명력입니다. 따뜻한 미소, 부드러운 음성으로 편안한 분위기를 창출하는 호감 가는 사람이 되십시오. 이런 사람은 존재 자체로 매일 이웃들에게 큼직한 선물을 건네는 사람입니다. 생명의 에너지를 건네는 사람이며 행복을 주는 사람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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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나의 복음 묵상
"...하고 너희는 말한다."
제가 남의 말을 너무 쉽게 하면서 사는 것 같습니다.
남 못지 않게 '카더라' 통신의 소스가 되고 있습니다.
남의 말을 하기는 너무 쉽습니다만,
그것으로부터 생길 수 있는 상처는 클 수 밖에 없습니다.
말하는 것, 행동 못지 않은 배려이고 여유이며 궁극적으로는 사랑인 것 같습니다.
*** 나의 삶의 자리에 접지하기 ***
오늘 독서 말씀이 바오로 사도의 '사랑의 송가'입니다.
'사랑'을 마음으로 헤아려 보아야겠습니다.
안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