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10/5 연중 제27주일(군인주일)…양승국 신부님
10월 5일 연중 제27주일(군인주일) - 마태오 21,33-43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비유를 들어보아라. 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그는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 주인이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 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하였다.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버렸다. 그러니 포도밭 주인이 와서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 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어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마태 21,33-43)
<예수님 편에 선 사람들>
소년분류심사원에서 만났던 한 아이를 저희 집에 데려오려고 가정법원에서 재판순서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아이 말로는 연고자가 전혀 없다고 했는데, 법정에 나가보니 건장한 체구의 할아버지께서 나와 계셨습니다.
오해가 생길지 몰라 할아버지께 최대한 공손하게 제 신분을 밝히며 인사를 올렸습니다. 그간 경위도 차근차근 설명해드렸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안심하시고 아이를 저희에게 맡겨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할아버지에게서 '고맙다. 아이를 잘 부탁한다'는 말씀을 기대했는데, 웬걸 난리가 났습니다. 잠시 할아버지 눈동자에서 불꽃이 이글거리기 시작하더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시더군요.
"네 이놈, 내 손자 데려가서 뭐하려고? 고얀 놈 같으니! 생긴 걸 보니 인신매매범이 분명해. 내가 너 같은 놈, 여럿 봤어!"
재판을 기다리고 있던 수많은 보호자들 시선이 일제히 제게 쏠렸습니다. 너무 황당하기도 하고 창피스럽기도 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할아버지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게 아니에요. 할아버지,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저쪽으로 가셔서 말씀 좀 나누시죠."
만만찮은 할아버지는 사람들 호기심 어린 눈길을 등에 업고 더욱 의기양양한 얼굴로 저를 궁지로 몰아넣더군요.
"가긴 어딜 가자고 그래. 분명히 뭔가 켕기는 것이 있느니 구석으로 가자는 거지?"
저는 순식간에 그 사람 많은 데서 인신매매범으로 몰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일이 떠오를 때마다 그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 신뢰한다는 것이 참 힘든 세상이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세상이 하도 흉흉하다 보니 사기꾼들도 많아지고 서로를 속이고 이용해야 살아남는 세상이다 보니 한번 의심해보는 풍조가 보편화된 듯합니다.
이런 풍조는 예수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생각합니다. 많은 거짓 예언자들이 등장해서 선량하고 무지한 백성들을 끊임없이 현혹시켰습니다.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인들의 타락과 착취는 백성들을 불신과 의심, 불안 상태로 몰고 갔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조차도 거부하는 결정적 실수를 범하고 맙니다.
믿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 그 누군가를 신뢰한다는 것, 특히 신앙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일생일대를 건 도박과도 같은 일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에는 정확한 목표선택과 그 목표를 향한 철저한 투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강한 하느님 체험을 바탕으로 한 확고한 신앙, 그것은 우리 신앙생활의 가장 핵심적이고도 근본적 조건입니다.
유다인들이 저지른 과오 중에 가장 큰 과오는 가장 값진 보물이 자신들 손 안으로 굴러들어왔음에도 그 보물을 절벽 밑으로 멀리 던져버린 행위였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고대해왔던 메시아, 자신들을 죄와 악에서 구해줄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자신들 코 앞에 나타났음에도 그분을 인정하려 들지 않고 오히려 십자가형에 처한 사람들이 바로 유다인들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죽어도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끝까지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쓸데없는 자존심이나 교만으로 가득찬 사람들입니다. 재물이나 권세, 명예에 눈이 단단히 먼 사람들입니다. 가끔씩 밑으로 내려가 인생의 밑바닥 체험도 기꺼이 할 줄 알아야 하는데, 끝도 없이 올라가려고만 기를 쓰는 사람들입니다.
사실 메시아는 바로 우리 가까이에 계시는데, 천국문이 바로 우리 일상에 자리잡고 있는데, 진리는 바로 내 발밑에 있는데, 우리 눈이 너무 높기에, 기대치가 너무 높기에, 너무나 물질 만능주의, 세속적 사고방식으로 살아가기에 이를 미처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반대로 단순한 사람, 소박한 사람, 가난한 사람,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언제나 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고 매사에 감사하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너무도 자연스럽게 아무런 거부감 없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이 세상 도래로 이제 세상 모든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눠지게 됐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수용하는 쪽과 거부하는 쪽. 불행하게도 많은 유다인들은 예수님 반대편에 서게 됩니다. 이는 유다인들이 저지른 실수 가운데 가장 큰 실수, 일생일대의 대실수였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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