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10/6 연중 제27주간 월요일…양승국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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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6일 연중 제27주간 월요일 - 루카 10,2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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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응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루카 10,25-37)


<항구함, 충실성, 지속적인 신뢰>

A. J. 크로닌이 지은 감명 깊은 소설 ‘천국의 열쇠’에 등장하는 프랜치스 치셤의 신부의 성소 여정은 굴곡 많고 험난하며 의외성으로 가득 찬 사제성소의 한 단면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프랜치스 치셤은 사제로 서품되기 전까지 여러 번에 걸쳐 심각한 위기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 뜻하지 않게 다가온 부모님과의 사별과 그로 인한 뼈저린 고독 앞에서 방황하고 몸부림칩니다.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자 친구 노라의 죽음, 신학교에서 저질렀던 치명적인 실수, 발령받는 본당 마다 직면하게 되는 주임사제와의 마찰...

그럴 때 마다 그의 곁에는 한 따뜻한 은사님이 계셨습니다. 신학교 시절 학장이었던 러스티 맥 신부님. 다른 사람들은 다들 드러내놓고 ‘이 인간은 안 된다’고 펄펄 뛰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한 평생에 걸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줍니다. 학장신부는 프랜치스 치셤 안에 잠재되어 있는 하느님을 향한 순도 높은 신앙, 순수한 열정, 불의에 맞서 단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는 강인함을 눈여겨봅니다.

프랜치스 치셤 입장에서 볼 때, 비록 밖으로는 드러내지 않지만 지속적으로 자신에게 전달되는 학장신부님의 근심어린 배려와 기도, 걱정 섞인 연민의 눈길이 자신의 사제성소를 활짝 꽃피어나게 만들었다는 것을 나중에 확인합니다.

항구함, 충실성, 지속적인 신뢰를 토대로 한 둘 사이의 인간관계, 참으로 아름다운 인간관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인간관계가 추구해야할 관계의 전형이자 모범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볼 때 어떤 마음으로 바라봅니까? 혹시라도 상대방을 내가 딛고 올라서야할 경쟁자로 바라보지는 않습니까? 상대방은 내가 물리쳐야 할 적대자가 아닙니까? 상대방은 내 성취의 도구는 아닙니까?

그렇다면 그런 시각은 빨리 수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이 땅에 보내주시고, 지속적으로 사람들을 보내셔서 관계 안에 살게 하시는데, 우리는 그들을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선물로 바라봐야 할 것입니다. 서로 격려해주고, 서로 지지해주고, 서로 보완해주는 동반자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저 역시 돌아보니 수도원 입회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대형 사고를 저질렀습니다. 수도원이나 신학교는 속성상 군대와 비슷합니다. 있어야 할 자리에 늘 있어야 하고, 돌아올 시간에 정확하게 돌아와야 합니다.

요즘 양성담당자로 살다보니 제가 저질렀던 ‘장기간 무단이탈’이 얼마나 큰 실수였는지, 담당자들에게 있어 얼마나 속상하는 일이었는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 그 철없던 시절, 프랜치스 치셤에게 있어 러스키 맥 신부님과도 같던 신부님이 제게도 계셨습니다. 돌아보니 제 힘으로 걸어온 길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의 지속적인 배려와 항구한 인내 속에 한 사람의 성소가 싹트고 열매 맺는다는 것을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참된 사랑의 실천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며 우리에게 보여주시는데, 그 본보기는 바로 ‘착한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그가 지니고 있었던 사랑의 특징은 ‘항구성’입니다. 꾸준히, 지속적으로, 끝까지 그 누군가를 향한 사랑을 실천합니다. 무엇보다도 뒷마무리가 확실합니다. 애프터서비스까지 책임집니다.

적당히 해보다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 중도에서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건 내 영역이 아니다, 이건 내 힘에 부친다며 어느 순간 물러서지 않습니다. 짜증내지도 않습니다. 생색내지도 않습니다. 누가 알아봐주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저 한 인간이 지금 내 눈앞에서 괴로워하고 있기에, 고통 받고 있기에, 죽어가고 있기에, 연민의 마음으로 다가갑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합니다. 그리고 조금 더 합니다. 이것이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참된 사랑의 실천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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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나의 복음 묵상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작거나 크거나 간에 주님께
"어찌 하오리까?"라고 여쭈면
거의 모든 경우 즉각 해답을 주십니다.

문제는 해답을 받은 즉시
어떻게 그렇게 안 하고 피해볼까 궁리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핑게 또한 무궁무진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하십니다.

*** 나의 삶의 자리에 접지하기 ***
핑게를 찾지 말자.
안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