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10/16 연중 제28주간 목요일…양승국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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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6일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 루카 11,4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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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지혜도, ‘내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낼 터인데, 그들은 이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니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 간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그 집을 나오시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대기 시작하였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렸던 것이다. (루카 11,47-54)


<위선과 이중성의 극복을 위하여>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질책을 들을 때 마다 드는 느낌입니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듭니다. 바로 나를 향한 말씀이로구나, 하는 생각에 송구스럽기만 합니다.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 특히 수도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한 가지 삶의 단면입니다.

주어진 기도생활은 한 마디로 칼 그 자체입니다. 단 한 번도 빠지거나 지각하는 적이 없습니다. 윗선에서 내린 규정 역시 목숨처럼 중요시여깁니다. 미사나 기도 등 전례생활, 영적생활에 있어서 천사나 성인(聖人)이 따로 없습니다.

그러나 현실세계로 내려오면 다른 사람이 되고 맙니다. 이웃들과의 관계 안에서 생긴 한 작은 현안이 그렇게까지 목숨걸만한 일도 아닌데 단 한걸음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더불어 살아가다보면 어쩔 수 없이 생기게 되는 작은 상처 앞에 얼마나 호들갑을 떠는지 모릅니다. 끝도 없이 징징댑니다. 표독스럽게 따져듭니다. 혀를 내두를 정도로 집요합니다.

기도생활에 대한 투자는 대단한데 그 결실이 조금도 없습니다. 영적생활에 대한 열망은 각별한데 그에 대한 열매는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저 역시 살아갈수록 어찌 그리도 이중적인 삶을 살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중성의 극복, 위선의 극복이야말로 우리 신앙인들, 수도자들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과제이자 어려운 숙제인 듯 합니다.

저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규정들을 잔뜩 만들어놓고 형제들에게 ‘철저한 준수’를 요구했습니다. 솔직히 전혀 모범도 되지 못합니다. 영적 도우미로 자격도 없습니다. 그러나 구구절절 옳은 말만 늘어놓습니다. 이런 저를 보고 얼마나 한심해할까 걱정이 앞섭니다. 이런 저를 향해 예수님께서 준엄하게 꾸짖으십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정작 중요한 것, 가장 본질적인 것, 가장 핵심적인 것은 뒷전인 채 별 의미 없는 부차적인 것, 껍데기, 시시한 것, 지나가는 것에 혈안이 되고 목숨을 거는, 그래서 오락가락하는 백성들을 더욱 햇갈리게 만들었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향한 예수님의 질타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저 자신을 향한 것임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보다 중요한 것, 보다 가치 있는 것, 보다 본질적인 것이 지닌 두드러진 특징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비가시성’입니다. 영혼, 마음, 사랑, 정, 우정, 신앙, 진리...결국 하느님께서 그 가장 끝에 자리 잡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진정 바라시는 것이 무엇일까요? 보다 중요한 것은 내적인 것이리라 저는 믿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드리는 일, 정성을 바치는 일, 우리의 영혼을 그분 향해 높이 들어 올리는 일, 그분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을 조금이나마 되돌려드리는 일...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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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나의 복음 묵상

"내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낼 터인데, 그들은 이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평신도 사도직 중에 '예언직'에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삶의 자리에서 '쓴 소리'일 수 밖에 없는 '바른 소리'를 하고 삶을 통해 증거한다는 것은 여러가지로 어렵습니다.
공동체 내에 분란을 일으켜 왕따 당하기도 하고,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있을까봐 슬그머니 없었던 걸로 하기도 합니다.

요즈음은... ...
될 수 있는 한 입을 닫고 조용히 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마음은 열고, 입은 닫고..."

*** 나의 삶의 자리에 접지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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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셀모

산호세 공동체에 둥지를 튼지..

이제 2년이 조금 넘은 것 같습니다. 다른 분들에 비하면, 너무나 짧은 시간이지만,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소중한 시간들입니다. 저에게 이런 좋은 기회를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렇게 좋은 복음묵상을 매일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형제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 역시 여러 교우님들과 함께 대화를 하거나 일을 하다보면 의견차이나 의사소통이 잘 안되어 답답할 때가 많치요. 어찌보면 당연합니다. 짧은 시간에 장황한 생각을 전한다는게 쉽지않습니다. 그럴때마다 인간적인 서운함이 밀려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감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하느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신 성서구절을 떠올리곤 합니다.

너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나의 귀염둥이, 나의 사랑이다. (이사야 43,4)

나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께서 이토록 사랑하는 존재인데, 어찌 내가 그들을 형제처럼 돌보지 않고,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서로를 아끼는 마음으로, 그런 사랑의 눈으로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대화하며, 격려해주면, 우리 공동체는 못할 일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힘들다고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일들이 하나둘씩 자연스레 해결되면, 그것이 바로 곧 기적이며, 이 기적의 중심에는 '예수님의 뜨거운 사랑'이 있음을 느낄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