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기도할 때 우리 아버지가 아닌 우리 아빠로 불렀다”
[중앙일보 백성호] 주님의 기도(주 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2년 전 미래사목연구소(소장 차동엽 신부·사진) 후원 계좌에 100만 원이 입금됐다. 큰 액수였다. 후원자 이름은 김수환. 연구소 직원들은 ‘동명이인이겠지’했다. 나중에 보니 아니었다. 김수환 추기경이 개인 자격으로 소리소문 없이 후원을 한 것이다. 당시 김 추기경은 “차 신부님의 모든 일을 후원합니다”라고 말했다.
차동엽(50) 신부는 이제 스타 신부다. 지난해 출간한 『무지개 원리』는 지금껏 80만 부가 팔렸다. 단일 서적으로는 한국 가톨릭 역사상 최고의 기록이다. 그런 그가 최근 ‘주님의 기도’에 관한 책을 냈다. 제목은 『통하는 기도』(위즈앤비즈, 368쪽, 1만2000원). 지난달 28일 경기 김포의 미래사목연구소에서 차동엽 신부를 만났다. 그리고 ‘주님의 기도’에 담긴 뜻을 물었다.
-‘주님의 기도’에 얽힌 역사적 배경이 있나.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지 않았다. 당신이 먼저 기도를 했다. 사람들은 주님의 기도가 ‘주님이 가르친 기도’라고만 기억한다. 본질은 그게 아니다. 주님이 직접 바치신 기도다. 그걸 먼저 알아야 한다.”
-첫 구절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다. ‘하늘’의 의미는.
“‘우주를 주재하시는 분이여’ ‘초월적인 분이시여’란 뜻이 담겨 있다.”
-왜 ‘우리 아버지’라고 했나.
“‘우리’라는 말을 보라. ‘우리 엄마’‘우리 아빠’‘우리 아들’할 때의 ‘우리’다. 굉장히 친밀한 관계라는 거다. ‘아버지’란 말도 그렇다. 예수님은 나자렛 지방의 방언인 아라메아어를 썼다. 거기선 ‘아바(Abba)’라고 부른다. 우리말로 ‘아빠’란 뜻이다. 예수님은 기도할 때 ‘우리 엄마’할 때의 뉘앙스로 ‘우리 아빠’라고 불렀던 거다.”
-성경에는 왜 ‘아버지’라고 기록됐나.
“성경은 그리스어로 기록됐다. 그런데 그리스어에는 ‘아바(아빠)’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란 뜻의 그리스어인 ‘파테르(Pater)’로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아빠’라고 불렀다. 하느님을 거창한 이름으로 부르니까 거리를 두는 거다.”
-둘째 구절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다. 아버지의 이름이 빛날 때는.
“나의 이름이 아버지의 이름을 가리지 않을 때다. 그럴 때 빛이 난다. 나도 마찬가지다. 본당에서 강연을 하고 박수를 받을 때가 있다. 그럼 꼭 돌아서서 십자가를 향해 고개를 숙인다. 내가 받는 박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매순간 그걸 따져봐야 한다. 나의 이름이 아버지의 이름을 가리지 않는가.”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라고 했다.‘아버지 나라가 오심’이란.
“‘아버지 나라’는 하느님 나라다. 그건 나와 하느님의 ‘관계성’이다. 나와 하느님의 커뮤니케이션, 거기에 아무런 장애물이 없는 거다. 바로 아버지 안에 내가 있는 거다. 동시에 내 안에 아버지가 있는 거다. 그렇게 서로에게 거하는 거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땅은 어디인가.
“‘땅’은 인간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우리 안에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져야 한다.”
-‘아버지의 뜻’을 막는 장애물은 없나.
“있다. 최후의 장애물이 ‘나의 뜻’일 수도 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그럼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가장 빠르고, 가장 확실한 지름길은 뭡니까?’하고 물을 거다. 그건 ‘산상수훈’속에 담겨 있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고 했다. 빵만 양식인가.
“육적인 양식은 빵이고, 영적인 양식은 ‘말씀’이다. 그런데 그 양식을 때때로 우리가 차단한다. ‘나의 뜻’이 ‘하느님의 뜻’을 가릴 때처럼 말이다.”
-미사에서 ‘주님의 기도’를 올릴 때는‘주님께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있나이다’고 끝을 맺는다. 왜 ‘영원히’인가.
“이 3차원 공간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이다. 그런데 3차원 공간을 넘어서면 공간이란 개념도, 시간이란 개념도 부질없는 곳이다. 그 세상에 ‘영원함’이 있다. 그러니 우리가 죽으면 ‘영원’속으로 들어가는 거다.”
-어떤 사람은 “달라”고 기도하고, 어떤 사람은 “버리겠다”고 기도한다. 어떤 게 ‘기도’인가.
“‘생계형 기도’가 있고, ‘이슬형 기도’가 있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사람들에겐 하루를 살아가는 게 거룩한 일이다. 그들에겐 밥이 하늘이다. 그들은 먹고 사는 생계 속에서 예수님의 구체적인 손길과 사랑을 느낀다. 결코 추상적이지 않다. 그 사람들이 좀 더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이슬형 기도’로 옮겨갈 것이다. ‘이슬형 기도’는 관상이나 묵상 등 깊은 몰입에 들어가는 일치형 기도다.”
-‘주님의 기도’는 왜 중요한가.
“나와 하늘이 통해야 한다. 그런데 두꺼운 장막이 처져 있다. 그게 하늘장막이다. 그런데 ‘주님의 기도’는 그 장막을 뚫게 한다. 그리고 하늘과 땅을 잇게 한다. ‘주님의 기도’는 하느님이 ‘너희가 나에게 도달하고 싶으냐. 그럼 요렇게 해봐라’하고 ‘노하우’를 일러주신 거다.”
-끝으로 ‘주님의 기도’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주님의 기도’는 ‘주님을 만나기 위한 길’이다.”
글=백성호 기자,사진=미래사목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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