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1월 6일 주님 공현 후 화요일…양승국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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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6일 주님 공현 후 화요일-마르코 6장 34-4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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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어느덧 늦은 시간이 되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습니다. 그러니 저들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촌락이나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 것을 사게 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이르시니, 제자들은 “그러면 저희가 가서 빵을 이백 데나리온어치나 사다가 그들을 먹이라는 말씀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아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알아보고서, “빵 다섯 개, 그리고 물고기 두 마리가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명령하시어, 모두 푸른 풀밭에 한 무리씩 어울려 자리 잡게 하셨다. 그래서 사람들은 백 명씩 또는 쉰 명씩 떼를 지어 자리를 잡았다.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셨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빵 조각과 물고기를 모으니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다. 빵을 먹은 사람은 장정만도 오천 명이었다. (마르 6,34-44)


<결승선을 통과하며>

한때 저도 ‘체력 빼면 시체’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심폐기능이 탁월했습니다. 거기다 심장박동도 아주 느렸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마라톤에 꽤 적합한 조건을 갖췄던 것 같습니다.

한번은 단축마라톤대회에 참석을 했었지요. 제 짧은 경험상, 정식마라톤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단축마라톤에서는 초반승부가 중요합니다. 치밀한 작전이니, 페이스 조절이니 하지만, 레이스 초반부터 뒤쳐지면 나중에 따라잡기는 정말 힘듭니다. 초반부터 무조건 선두그룹에 끼는 것이 가장 큰 관건입니다.

저는 시작을 알리는 총포소리가 들리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조건 냅다 내달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10분정도 달리다보니 다른 사람들 발자국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습니다. 저 혼자 달리고 있었습니다. 돌아보니 2위권 그룹들은 까마득한 뒤쪽에서 무리를 지어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3, 400미터 이상 거리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제 됐다, 하는 마음과 동시에, 이제부터는 다른 방법이 없다, 포기하지만 말고, 지금 페이스대로만 밀고 나가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웬걸, 반환점을 돌고 나서부터는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초반의 무리가 즉시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급격한 체력저하와 동시에 두통, 복통, 호흡곤란 증세가 동시다발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길가에 주저앉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머릿속에는 또 다른 이미지가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황영조처럼 멋지게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하는 모습, 결승선에 서있는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 우승한 사람에게 주어질 커다란 트로피, 꽤 거금이 걸린 우승상금...

고지가 바로 저긴데, 스스로를 다독거리며 다시 힘을 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세상이라는 마라톤 코스를 달려가는 오늘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하루, 매 순간이 얼마나 힘겨운지 모릅니다. 결승선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들을 가로막는 암초나 장애물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요? 열심히 뛰려는 우리에게 맵디매운 고춧가루를 뿌려대는 사람들도 한두 명이 아닙니다. 주저앉고 싶은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다 집어 치우고 되는대로 살고 싶은 유혹이 얼마나 강한지 모릅니다.

그럴 때 마다 ‘결승선’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있어 그 결승선은 다름 아닌 하느님 나라입니다.

오늘 소개되고 있는 복음구절은 하느님 나라의 본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얼마나 풍요로운지 모릅니다. 다들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거기서는 더 이상 굶주림도 없습니다. 고통도 없습니다. 슬픔도 없습니다. 눈물도 없습니다. 죽음도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존재인 나약한 우리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자비만이 흘러넘칩니다. 죄인인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절절한 측은지심만이 가득합니다.

그곳은 우리의 작은 선행, 우리의 작은 봉헌, 우리의 작은 나눔, 우리의 작은 사랑의 실천이 몇 천배, 몇 만 배 확장되는 나라입니다.

그곳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짊어지고 있었던 고통과 십자가가 눈 녹듯이 사라지는 곳입니다. 그곳은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숱한 죄악과 배신도 말끔히 씻어지는 곳입니다.

참으로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너무나 힘겨워 그만 모든 것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단 한발자국도 전진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 사방이 온통 꽉 막혔다는 느낌이 들 때... 꼭 기억하십시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잘 견딘 사람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릴 곳을 다 달린 사람들에게 주어질 하느님의 상급은 클 것입니다.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신발 끈을 고쳐 묶은 사람들에게 주어질 하느님의 선물은 풍요로울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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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空手來空手去

가끔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느님의 시간 개념으로 보면
한 인간의 삶은 짧은 찰라의 순간이 아닐까요?

하지만 그런 찰라의 순간속에 살아가는 우리의 삶을
하나하나 다 기억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시라는 것이
우리 모두의 신앙일 것입니다.

현실의 삶은 공수래공수거이지만,
영원한 삶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풍요로운 삶일 것입니다.

모든 음식에 좋은 양념이 들어가야 맛을 내듯
우리의 이 짧은 삶도 양념이 필요하겠지요.
'나눔', '사랑', '희망'.. 등등의 좋은 양념들이 그것들이겠지요.

나의 삶에도 어떤 양념을 칠것인지 잠시 묵상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나눔', '사랑', '희망'.. 등등이

양념이 아니라
필수로 가져가야할 주재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드네요...???

'나눔', '사랑', '희망' 위에
제 삶을 양념처럼 살아내기만 한다면...???

다니엘 형제님! 주님과 함께 하는 은혜로운 하루 되셔요.
오늘도 비빔밥 많이 파시고요....
안셀모

나의 복음 묵상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누가? 언제? 어떻게? 라는 저의 질문에
너 자신이 몸소, 바로 지금, 네 것을 내놓으면서 라고 짤막하게 대답하십니다.
오늘 새벽미사에서 성체를 받아 모시면서
당신의 마지막 살과 피까지도 나누시고 계신 예수님을 뵈었습니다.
제 자신을 나누는 봉사의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아직 갈 길이 멀어만 보입니다.
그러나 한발짝 한발짝 앞으로 나아 가야지요...

*** 나의 삶의 자리에 접지하기 ***
'배려와 여유'도 나눔임을 되새기는 하루 ... ...
안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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