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신문 기획보도[깨어나는 평신도] (상)
(1) “평신도가 움직인다"
학계·연구소 전문가 활동 확대
최근 한국교회 안에서는 평신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소명을 자각하고 실천하기 위한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 미래교회의 전망은 평신도 사도직 활동의 활성화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이는 매우 고무적이다. 최근 들어 나타나는 이러한 움직임에 주목하면서, 한국교회의 발전과 복음화를 위해서 평신도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성찰해본다.
자발적인 복음의 수용이라는 한국교회의 평신도 전통은 모든 평신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부여된 사도직을 수행해나갈 귀감이다. 그러나 오늘날 삶과 신앙의 괴리, 소극적인 신앙 생활과 수동적인 교회 참여 등 한국 교회 평신도들이 깊이 성찰해야 할 문제들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최근 들어 교회 안에서는 평신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하고 평신도 사도직 활동을 진작하기 위한 움직임들이 늘어나고 있다.
평신도들의 움직임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학계이다. 여러 학문 분야에서 활동하는 평신도 연구자들은 신학이나 철학 등 전통적인 교회 학문 분야 뿐만 아니라 사회과학 분야에서도 교회와의 접점을 모색한다. 3년 동안 총 42편의 논문을 발표한 ‘한국 근현대 100년 속의 가톨릭교회’는 평신도 학자들을 중심으로 하는 30여명의 연구자를 바탕으로 큰 학문적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평신도 학자들 움직임 활발
조광 교수(고려대 한국사학과)는 특히 교회사 분야에서 “평신도 전문가들의 꾸준한 접근을 통해 새로운 역사적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며 “더욱 많은 평신도 전문가들이 배출돼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 성과를 쌓아나갈 때 교회도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평신도 신학자인 황종렬(레오) 박사는 한국교회의 평신도 신학에 대해 “아직은 개별적인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전문성이 미흡하다”면서도 “평신도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신학을 체화해 삶으로 매개하려는 목소리가 다양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연구소에 포진한 전문가들
각종 연구소에서의 평신도 전문가들의 활동 역시 전에 비해 증가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 전원 신부는 “연구소의 운영 방침 자체가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가 함께 연구해나간다는 것”이라며 “조사 분석이나 사목분야를 연구하는 평신도 전문가들이 이미 연구소 안에 많이 있고 그 활동 폭은 더욱 넓고 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통합사목연구소는 연구소 운영위원회에도 평신도 위원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각종 성경 공부 모임이나 교구나 본당의 신앙 교육 프로그램 외에 다양한 연구 모임이나 강연회 등도 마련된다. 한국가톨릭언론인협의회의 ‘언론인신앙학교’는 신자 언론인들을 대상으로 지난 5월까지 8기 수료자를 배출했다. 원주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의 ‘생태복음화 강좌’나 미래사목연구소의 ‘천주실의 강학회’도 독특한 형태와 주제로 호응을 받았다.
교육이 관건
평신도 사도직 활동의 활성화를 위해 가장 크게 요구되는 것은 역시 교육 프로그램이다. 노길명 교수(고려대 사회학과)는 “오랜 박해를 겪은 한국 평신도들은 성직자 의존도가 높다”며 “이러한 의존심을 벗어나 자신의 사도직 완수를 위한 평신도의 의식 전환은 교육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한국평신도사도직협의회 한홍순 회장(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은 “평신도들이 깨어나기 위해서는 교육이 가장 필요하다”며 “삶의 체험을 나누는 선교포럼 등 평신도 교육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평협은 9월 11일부터 하상신앙대학을 개최하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을 교육하는 프로그램도 개설할 예정이며, 산발적인 교육을 탈피해 통합적 교육 체계를 갖추기 위한 ‘평신도 학교’도 구상 중이다. - 2006. 8. 20 -
(2) 한국교회 평신도, 그 위대한 전통
“친교·참여하는 교회상 실현을” 침체·동적인 신앙자세 반성 절실
다시 스스로 깨어나 복음화 새주역돼야
“이 땅에의 교회 전래와 평신도의 관계는 세계 교회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것이었다. 평신도에 의해 교회가 시작된 일은 일찍이 로마 교회에도 없었던 사건이다.
그뿐 아니라 목자 없이 한국 평신도들은 장구한 기간에 걸쳐 온 생활을 희생하고 마침내는 목숨을 바쳐가며 신도의 일반 사제직을 훌륭히 이행하였고, 실천 생활로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복음을 온 겨레에게 전하여 예언직을 수행하였다.”(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 의안 평신도 의안 제1항 중에서)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는 사제품을 받고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가 순교했다.
두 번째 신부인 최양업 신부는 서품 후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된 채 조선의 양떼들을 돌보다 쓰러졌다. 우리는 모두 그 위대한 사제의 삶을 열렬히 기억하고 현양하며, 그분들이 남기고 간 그 뜨거운 열정과 하느님께 대한 충성을 본받아 살아가기 위해서 다짐하고 다짐한다.
하지만 한국교회 평신도들은 그 위대한 사제들에 못지 않는 믿음, 깨달은 진리를 몸소 삶으로 실천할 수 있는 영적 에너지를 가진 평신도 신앙 선조들의 위대한 전통을 지니고 있다.
바로 그 때문에 한국 천주교회 전래 200주년을 기념해 전국 차원으로 열렸던 사목회의 평신도 의안은 이러한한국 평신도의 위대한 전통을 의안 맨 앞부분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사목회의 의안 뿐 아니라, 평신도의 자발적 신앙의 수용란 유례없는 역사와 전통은 모든 평신도 관련 의안들에서 공통적으로 상기되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평신도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탄생한 교회입니다.
그 독특한 역사답게 한국 교회 평신도들은 성직자가 없을 때에도 성실하게 신앙을 지켜왔으며, 수많은 순교자들이 목숨을 바쳐 신앙을 지키고 이웃에 전한 자랑스러운 전통 위에서, 열심한 마음과 헌신의 자세로 교회 생활에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서울대교구 시노드 후속문헌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 중 평신도 편 중에서)
한국 천주교회 평신도의 이 위대한 전통은 그대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정신과 상통한다. 사목회의 의안이 일러주고 있듯이 한국교회 평신도들은 신도로서의 일반 사제직과 예언직, 왕직을 수행하며 오늘의 평신도와 그 사도직의 귀감이 됐다.
사목회의 평신도 의안은 3항에서 “공의회 전체가 평신도를 위해 있었던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공의회는 ‘친교의 교회상’, ‘참여하는 교회상’을 실현토록 권고하며, 평신도는 성직자나 수도자의 아래에 존재하는 ‘부수적이거나 혹은 이차적인’것처럼 생각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평신도는 하나의 머리 아래 그리스도의 한 몸을 구성하는, 성직자와 수도자와 함께 하는 한 하느님의 백성임이 공의회에 의해 천명됐던 것이다.
그야말로 “세례로써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고, 하느님 백성 중에 들고, 그들 나름대로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직과 왕직에 참여하여, 교회와 세계 안에서 그리스도 백성 전체의 사명을 각기 분수대로 수행하는 신도들”이다. (교회헌장 31항, 평신도 교령 2항, 평신도 그리스도인 14항 참조)
오늘날 평신도들의 침체된 신앙, 삶과 신앙의 유리,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신앙 자세 등등 스스로를 성찰하면서 나타나는 많은 반성들은 한국 평신도의 전통과 공의회 정신에 비추어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동시에 이러한 평신도 전통과 공의회 가르침은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 평신도들이 스스로 깨어나 새로운 복음화의 주역으로 나서야 한다는 당위성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우리는 신앙의 선조, 특히 평신도 신앙 선조들의 삶과 신앙에서 그 모범을 보고 있는 것이다. -2006.8.27-
(3)“사목 협조자로 친교의 교회상 실현을”
평신도 그리스도인의 소명
서로 일치하며 맡겨진 소명 수행해야 하느님 백성, 동등한 품위·존엄 지녀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교회 쇄신을 향한 커다란 변화의 시간이었다. 특히 교회론의 새로운 이해는 평신도의 정체성과 소명에 대한 새로운 자각을 이루었다.
공의회는 교회의 본질과 사명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했는데,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이뤄진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리스도의 성사라고 밝혔다.
하느님 백성인 평신도
공의회의 가르침에 의하면, ‘하느님 백성’이라는 것으로 모든 믿는 이들의 ‘일반적 사제직’이 ‘특수 사제직’에 우선한다.
따라서 성직자와 평신도라는 구분 이전에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하느님 백성에 속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이룸으로써, 평신도는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해당되는 보편성과 평등성을 지닌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 헌장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평신도라는 이름으로 이해된다. 곧 세례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하느님 백성으로 구성되고,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자직과 왕직에 자기 나름대로 참여하는 자들이 되어, 그리스도교 백성 전체의 사명 가운데에서 자기 몫을 교회와 세상 안에서 실천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말한다.”(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 31항)
직분과 직위상의 차이는 있지만 세례를 통해서 하느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동등한 품위를 지니며 하느님 자녀로서의 존엄과 자유를 지닌다는 것이다.
성직자와 평신도는 같은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그리스도의 왕직, 사제직, 예언직에 참여하여 교회의 사명에도 공동책임을 지닌다.
특히 평신도는 세상 한 가운데 있는 이들로서 세상 안에서, 세속 안에서 능동적으로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존재이다.
평신도 사도직의 실현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인 평신도 그리스도인들은 그 존재 자체에 근거하는 고유의 소명과 역할을 부여받는다.
교회의 사명인 사도직, 곧 평신도 사도직에 대해 이야기할 때 평신도 신학의 출발인 세례성사와 깊이 연관된다.
다시 말해서 세례를 통해 평신도는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직, 왕직의 사도직에 부르심을 받으며 견진성사를 통해 교회와 더욱 견고하게 결속돼 교회의 사명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서울대교구 시노드 후속 문헌인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에서는 평신도와 관련해
“평신도의 사명은 평신도의 정체성 자체에서 그 뿌리와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 자기 나름대로 그리스도의 사제요, 예언자요, 왕으로서의 사명을 자신의 생활 환경 안에서 수행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성화 소명을 실현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에 충실하게 사는 평신도는 세상 안에 사는 교회의 사람이며, 동시에 교회 안에 사는 세상의 사람입니다”(5항)라고 말한다.
성직자와 평신도는 교회의 소명을 실천하기 위해서 서로 조화와 일치 속에서 서로 협력하고 상호 보완해야 한다.
앞의 문헌에서는 이에 대해 공의회의 정신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키면서 “공의회는 ‘친교의 교회상’ ‘참여하는 교회상‘을 실현하도록 권고한다”며 “교회 생활에 대하여 평신도가 공동 책임을 느끼고, 사목의 협조자로 제 역할을 다하는, 그러한 참여하는 교회상을 실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6항)고 강조한다.
특히 평신도는 성직자나 수도자와 구별되는 그 ‘세속적 성격’으로 인해 자신들의 삶의 자리인 세속에서 사도직을 훌륭하게 수행해야 한다.
바로 이런 세속적 성격은 평신도의 독특하고 고유한 소명실천의 자리인 것이다.
-2006.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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