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어나는 평신도 (중)

(4) 한국교회 평신도의 명암

“순교자들의 자발적 신앙 계승하자”

신자들 열정으로 한국교회 눈부신 성장

권위주의적 관행 떨치려는 적극성 필요

이미 한국교회의 가장 독특하면서도 최고의 긍지와 자부심으로 일컬어지는 것 중의 하나는 한국교회가 평신도의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진리 탐구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결코 선교사에 의해 시작된 것이 아니며 당대 사회의 모순을 인식하고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 필요한 참 진리는 무엇인가를 궁구하던 일단의 평신도들에 의해 뿌려진 복음의 씨앗으로부터 탄생한 것이다.

오늘날 종종 평신도의 소극적인 신앙과 생활에 대한 지적이 있지만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가장 이상적인 모범을 우리는 이미 우리 교회의 역사 안에 그 풍부한 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비록 비판적 성찰이 이뤄지고 있지만 한국교회의 평신도들은 세계 교회 안에서도 그 자발성과 헌신은 다른 어느 교회의 평신도들에 못지않다.

우리나라를 찾는 교황청과 해외교회의 관계자들이 한결같이 입을 모으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그들은 한국교회의 눈부신 성장에 감탄하면서, 그 바탕에는 평신도들의 열성과 헌신이 자리 잡고 있음을 쉽게 알아채곤 한다.

텅텅 비어가는 서구 교회에 비해 한국에서는 성당마다 신자들로 가득하고, 다양한 신심행사와 대규모 교육 프로그램에도 많은 신자들이 자리를 빼곡하게 메우곤 한다.

그런 모습을 보는 해외교회 인사들은 부러움을 표시한다. 한국교회의 역사를 봐도 평신도들의 뜨거운 열성, 열일 제쳐두고 성당 행사에 기꺼이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붓는 평신도들의 열의는 한국교회의 성장에 밑거름이 됐다.

이미 그 전통은 자발적인 신앙의 수용을 넘어서, 박해시기를 지나오며 죽음을 무릅쓰면서까지 신앙을 지켜낸 위대한 신앙 선조들의 삶과 정신을 통해 이어져왔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가장 중요한 영성인 순교 영성의 전통은 바로 그러한 정신을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일깨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평신도들의 이러한 열의에 불을 질렀다. 이제 평신도들은 단지 교회 생활뿐만 아니라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투신에도 나섰다.

민주화 운동의 고난이 가득한 길에서도 한국교회의 평신도들은 정의를 수호하려는 많은 사제들과 함께 역사의 주역으로 나섰다.

평신도들의 왕성한 활력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제 단체들이다. 본당 생활에서 단지 전례에 참여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이러한 제 단체에 가입해 열렬한 활동을 펼침으로써 더욱 풍요로워진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평신도들은 그 고유의 활력과 자발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잃어가고 있다.

공의회 이후 성직자, 수도자와 함께 하느님 백성의 일원,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지체로서 평신도의 위상과 정체성이 희미해져갔다. 신앙생활에서도 냉담자의 증가, 수동적인 성사생활 등 신앙의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 일차적인 책임은 평신도들 스스로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다. 자발적 신앙생활의 독특하고 자랑스러운 전통을 과연 오늘날의 평신도들의 의식 속에서 과연 얼마나 찾아볼 수 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그 책임은 교회의 구조적 문제에서도 발견된다. 평신도의 자발성이 발휘될 수 없는 교회 제도와 구조, 관행은 교회의 발전까지도 저해한다.

되풀이되는 권위주의적 관행은 평신도로 하여금 소극적인 자세를 야기하고 결국은 교회와 신앙에 대한 냉소적인 태도가 자리 잡게 만든다.

한국교회 평신도의 모습은 명암을 함께 갖고 있다.

그 놀라울 정도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발목을 잡는 부조리와 불합리한 관행이 평신도가 깨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과감하게 떨쳐 일어나려는 각오와 다짐이 필요하다. - 2006. 10. 1 -

5 .해묵은 과제, 성직자 중심주의

“교회 쇄신은 성직자 성화로부터”

제2차 바티칸공의회, 그리고 공의회의 한국적 적용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사목회의, 이 두 가지 중요한 회의의 가장 중요한 정신의 하나는 평신도에 대한 새로운 이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공의회가 설파한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교회론은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가 공히 하느님 백성을 이루는 지체로서 “그들 나름대로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직과 왕직에 참여하여, 교회와 세계 안에서 그리스도 백성 전체의 사명을 각기 분수대로 수행하는 신도들”임을 드러냈다.

그리고 200주년 사목회의의 주요 기조 가운데 하나는 공의회 정신에 따라 교회 구성원 모두의 평등성을 바탕으로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한 공동체로서 적절한 역할을 분담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뿌리 깊은 문제로 지적되어온 성직자 중심주의는 사목회의가 시도한 새 변화를 받아들이는데 여전히 한계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평신도가 실제 사목과 선교의 동반자로 참여하는 범위는 계속해서 제한적인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평신도의 고유한 특성인 세속적 성격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평신도 사도직에 대해 경직되고 잘못된 결과를 잉태하게 하고 이는 다시 교회 발전의 지체로 나타났다.

세속성으로 인해 평신도는 세상과 교회 안에서 특별한 위치에 서게 되고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방법으로 현세 질서에 그리스도의 정신을 불어넣는 존재인데 오히려 이로 인해 성직자나 수도자보다 열등한 존재로 오인된다.

평신도 위상에 대한 자성

이런 현실 속에서 평신도의 위상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는 우선적으로 평신도 스스로를 향한다. 서울대교구 시노드 준비위원회가 2002년 실시한 설문 조사를 보면 평신도의 63.1%가 교회 쇄신을 위해 가장 먼저 변화되어야 할 대상으로 평신도 스스로를 꼽았다.

지난 97년 가톨릭신문이 실시한 ‘가톨릭신자의 종교의식과 신앙생활’ 조사에 의하면 교회를 떠나고 싶은 이유에 대해 가장 많은 31.7%가 신자들의 생활 방식에 대한 실망이라고 답해 평신도 스스로의 삶과 신앙에 큰 문제가 있음을 드러냈다.

신자의 사회윤리의식, 생명의식이 비신자들의 그것에 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여러 설문 조사에서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제반 여건상 성직자 중심주의를 탈피하기 위한 노력은 평신도들의 변화와 쇄신뿐만 아니라 성직자들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도 사실이다.

사목회의의 첫 의안인 성직자 의안은 서론에서 교회의 “쇄신과 복음화는 무엇보다도 성직자들의 쇄신과 성화가 선행돼야 한다”(2항)고 천명한다.

90년대 말부터 2000년을 전후해 열렸던 교구 시노드들은 문헌에서 성직자들을 향한 다양한 신자들의 요청을 담고 있는데, 예외 없이 성직자 중심적인 자세와 권위주의의 우려들에 대한 지적들이 빠지지 않고 있다.

가장 최근에 열린 서울대교구 시노드 후속 교구장 교서에서도 이상적인 사제상에 대해 봉사하는 목자로서의 모습을 기대하며 때로는 사제의 ‘일방적이고 독단적인’ 태도가 공동체에 해악이 되기도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는 곧 문헌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기본 정신으로서 ‘친교의 교회론’, ‘참여하는 교회상’의 실현과 상통한다.

탈권위주의 요구가 대세

‘한국 근현대 가톨릭연구단’이 전국 성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천주교에 대한 부정적 평가 가운데 ‘권위적’이라는 평가가 세 번째로 높게 나타나고, 천주교 내부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이 ‘사제 중심적, 권위적 교회 운영’으로서 32.6%의 수치를 나타냈다.

이러한 반성과 성찰은 이제 탈권위주의의 요구가 대세를 이루고 사회 각 부문에서 구체화되기 시작한 오늘날 더욱 강력하게 요구되는 것이다.

이 과제는 교회 운영에 있어서의 민주적 변화에 대한 요청, 평신도의 제 자리 찾기와 수평적 쌍방향적 코드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와 교회에서 복음의 설득력을 높이고 교회 경쟁력을 향상시키는데 관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 2006.10.15 -

6 .평신도 사도직, 교육이 관건

체계·통합적 교육 프로그램 필요

복음화의 일꾼

세상 복음화의 일꾼이자 교회 생활에 참여하는 평신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교육이다. 서울대교구는 교구 시노드의 논의를 담은 최종문헌에서 매우 명확하게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즉 사제 양성 뿐만 아니라 평신도의 양성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들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그러한 교육의 주요 요소들을 제시하고 있다.

특별히 문헌은 지도급 평신도들, 즉 사목위원과 사도직 단체장 등 중요한 직무를 맡는 평신도들은 교육과 양성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나아가 문헌은 이러한 교육 과정을 개발하고 전인적 평신도 교육과 지속적 양성을 전담하는 평신도 센터의 설립까지도 건의하고 있다.

이같은 요청은 다른 교구의 시노드에서나 공의회 문헌, 200주년 사목회의 의안 등 평신도에 대해서 언급하는 모든 문헌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가장 시급한 요청이다.

뿐만 아니라 신자들에게 교회 안팎의 문제들에 대한 의견을 묻는 각종 설문조사에서도 평신도의 교육과 양성의 필요성, 곧 신자 재교육에 대한 바람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신자 재교육 강화

이러한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전에 비해 상당히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지난 수년 동안 평신도 전문가와 지도자의 육성과 신자 재교육을 통한 평신도의 역량 강화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왔다.

평신도 인재 양성을 위한 장학사업이 90년대 중반 이후 눈에 띄게 늘어났는데, 주로 빈곤 가정의 중고등학생의 학비를 지원하는 사회복지 차원에서 석박사 과정의 연구 활동을 지원하는 장학 사업이 증가했다.

각 교구 차원에서도 평신도들의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들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성장하고 성숙했다. 전에 비해 교구나 본당에서의 각종 강연, 교육 프로그램이 다양해지고 확대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서울대교구 통합사목연구소장 전원 신부는 “평신도 양성은 교육으로 가능할 것”이라며 연구소 자체적으로 “본당이나 교구에서 실행할 수 있는 평신도 양성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회 지도자의 모범

한국평신도사도직협의회 한홍순 회장은 평신도 사도직 활동에 있어서 가장 근간을 이루는 것은 교육임을 강조하며 이론 교육과 함께 실천적인 교육의 필요성도 함께 지적했다.

한 회장은 “평신도 교육을 담당하는 교회 교육자들이 솔선해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며 “이들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있어서 지식 전달자인 교사로서, 또 삶의 실천자인 스승으로서의 모습을 함께 드러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평협은 이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더욱 폭넓게 지속적으로 마련할 생각이다. 특히 산발적이거나 일회성 교육을 탈피해 통합적인 교육 체계를 갖추고 종합적이고 통합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구상, 실천하고 있다. -2006.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