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시기
대림시기
(이)avvento (영)advent
I. 대림시기의 뜻과 역사
대 림시기(참조 →전례주년, II)의 기원은 확실하지 않으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료들도 많지 않다. 대림시기 안에서 우리는 절제, 금욕주의적 관행과 관계된 요소들과 말 그대로 전례적인 성격의 요소들을 구별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성탄을 준비하는 시기로서의 대림시기와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도래(종말의 재림)를 지내는 대림시기로 구별할 필요가 있다. 대림시기는 서방교회의 전형적인 전례시기이다. 동방교회는 불과 며칠 간의 성탄을 준비하는 기간을 가지고 있을 따름이다.
4세기 이후에나 대림시기에 대한 자료가 남아 있는데, 이때 대림시기는 종말론적인 대림(재림을 기다림)과 성탄 준비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성탄을 준비하는 데에 대림의 원래 의미가 있다는 사람과 종말의 재림을 기다리는데 그 의미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 많은 논란이 있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의한 전례개혁은 의도적으로 성탄 준비로서의 대림시기와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의미로서의 대림시기의 성격을 보존하고자 하였다(전례력 지침 39).
II. 미사전례서의 대림시기 전례 구조
대 림시기는 4주간으로 되어 있다. (밀라노의 →암브로시오 전례는 6주간으로 되어 있다) 전례문들과 특히 이사야서를 거의 매일 읽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전례시기는 일관된 모습을 가지고는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다음의 두 시기로 구분된다: ① 대림 첫 주일부터 12월 16일까지 - 이시기는 종말에 대한 기다림을 뚜렷이 드러내면서,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도래를 기다리도록 신도들의 마음을 준비시킨다. ② 12월 17일부터 12월 24일까지 - 미사나 →시간전례의 모든 전례문들은 더욱더 직접적으로 성탄준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대림시기를 위한 두개의 감사송 역시 (대림시기의) 이 두 시기의 특성들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이시기에 →마리아, 세례자 요한, 이사야 예언자가 부각된다.
교 회의 아주 오래고 보편적인 전통에 따르면 이 시기에 이사야 예언서를 읽는데, 다른 예언서들보다 이사야 예언서에서 아주 어렵고도 결정적인 상황에 처해 있던 선택된 백성(이스라엘)을 위로하였던 큰 희망이 잘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사야서 가운데서도 더욱 의미 있는 부분들을 대림시기에 읽는데, 이 부분들은 모든 시대의 사람들에게 영원한 희망을 선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세 례자 요한은 마지막 예언자로서 이제 완성을 향해 흘러가는 순간에 그 이전의 역사 모두를 자신의 말과 존재로 종합한다. 그 결과 기대하는 마음이 구체화된다. 그는 하느님이 당신 백성을 위해 (역사 안에) 개입하심을 드러내주는 표지이다. 메시아의 전령인 그의 임무는 주님의 길을 준비하고 이스라엘에게 '구원받는 깨침'(참조. 루가 1,77-78)을 제공하며, 이미 당신 백성 가운데 계시는 그리스도를 지적하는 것이다.
대림시기는 구원 신비와 마리아와의 관계, 그에 대한 마리아의 협조에 대해 강조하는 전례시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것은 전례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지 (마리아의 위치를 특별히) 부각시키거나 (마리아) 신심을 덧붙임으로 해서 나온 것이 아니다. 하지만 대림시기를 가장 좋은 '마리아의 달(月)'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한 의미로) 올바르지 않으니, 이시기는 본질적으로 주님 오심에 대한 신비, 마리아의 협조와 특히 연결되어 있는 신비를 지내는 때이기 때문이다.
대림시기 초반(12월 8일)에 지내는 무염시태 대축일이 대림시기와는 별개의 것이거나 대림시기의 일관성을 파괴하는 요소가 아니라 바로 신비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무염시태의 마리아는 구원된 인류의 원형이며, 그리스도가 오심으로써 얻어진 가장 뛰어난 열매이다. 무염시태 대축일 감사송에 나와 있듯이 하느님은 마리아 안에서 "티없고 흠 없이 아름다운 성자의 신부인 교회의 설립을 알리셨다."
III. 대림시기의 신학
대림시기가 주님께서 역사 안에 오심에 대한 모든 신비를 그 완성에 이르기까지 숙고한다는 점에서 대림시기의 신학은 풍부하다. 신비의 여러 측면들이 서로 교차하면서 놀라운 통합을 이룬다.
대 림시기는 무엇보다도 구원의 역사적-성사적 차원을 기념한다. 대림시기의 하느님은 역사의 하느님이시다. 즉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성부의 모습을 드러내신 나자렛 예수 안에 온전히 오신 하느님이시다. 계시의 역사적 차원은 모든 인간의 완전한 구원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졌음을 기념한다. 따라서 복음화와 인간계발 사이의 밀접한 연계를 기억한다.
대림시기는 그리스도교 신비의 '종말론적 차원'을 뚜렷이 드러내는 전례시기이다. 하지만 시간의 끝에 이르러서야 밝혀질 상속(약속)에 대해 다룰 뿐이다. 역사는 하느님의 약속이 실현되는 자리이며, '주님의 날'(참조. 1 고린 1,8; 5,5)을 향하여 나아간다. 우리 인간의 육(肉) 안에 오셨고, 죽으신 다음 하느님께서 미리 뽑으신 증인들과 사도들에게 부활하신 분으로 자신을 드러내셨던 그리스도는 세상 끝날에 영광스러이 나타나실 것이다(사도 1,11). 이 지상에서 순례자의 삶을 살아가는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완성된 구원을 '이미' 체험하면서, 심판관이요 구세주로서 주님이 영광스러이 다시 오실 때 완전히 드러날 구원, 우리 안에서 완전히 실현될 구원을 기다리며 산다.
대림시기는 하느님이 오심에 대한 참되고 깊으며 신비한 차원들을 우리에게 드러내 주는 한편,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 교회와 각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선교적 임무에 대해서도 상기하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해야하는 교회의 임무는 본질적으로 성부로부터 파견된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한 신비에, 성부와 성자로부터 파견된 성령의 오심의 신비에 기초하고 있다.
IV. 대림시기의 영성
대림 전례를 드리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다음과 같은 본질적인 삶의 태도들을 가지도록 불린다: 기쁨 중에 항상 깨어 기다림, 희망, 회개.
기 다리는 태도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특징을 이룬다. 왜냐하면 계시의 하느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에게 당신의 신실함을 드러내신 약속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참조. 2고린 1,20). 대림시기 동안 교회는 약속된 메시아를 기다리는 히브리인들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차원에서, 그 약속의 결정적 구현인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거울을 들여다보듯" 보고 있지만, 우리가 (그리스도를) "얼굴을 맞대고" 바라다볼 날이 올 것이다(1 고린 13,12). 교회는 깨어 있으면서 기쁨 중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린다. 따라서 교회는 "마라나타. 오소서, 주 예수여"(묵시 22,17.20)라고 기도하는 것이다.
그 결과 대림시기는 '희망의 하느님'(로마 15,13)을 기념하며 기쁨에 찬 희망을 체험한다(로마 8,24-25 참조). 대림 첫 주부터 부르는, 대림시기를 특징 지우는 노래는 시편 24이다: "주여, 내 영혼이 당신을 우러러 뵙나이다. 내 하느님, 당신께 굳이 바라오니, 이 바람을 헛되이 마시옵소서. 원수들이 나를 두고 좋아라 기뻐하지 못하게 하소서. 당신께 바라는 자는 부끄러울리 없으리이다(시편 24, 1-3)."
역사 안에 들어오신 하느님은 인간에게 동기를 부여하신다. 그리스도 안에 오신 하느님은 인간에게 끊임없는 회개를 요청한다. 복음의 새로움이란 꿈에서 결정적으로 깨어나도록 하는 빛이다. 대림시기는, 특히 세례자 요한의 선포를 통해서 본 대림시기는, 주의 길을 준비하고 곧 오실 주님을 맞을 수 있도록 회개하라는 초대의 시기이다. 대림시기는, 예수께서 복된 이들이라고 부르신 겸손한 이, 온순한 이, '야훼의 가난한 이'의 태도를 배우도록 가르친다.
[베르가미니(A. Bergamini), 김인영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