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은 왜 일어났나(2)

종교개혁은 왜 일어났나(2)
2. 종교개혁의 원인에 대한 문제점
1. 역사적 원인
역사적 원인이란 개념은 오늘날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아직도 자주 현대 역사서들 안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 개념은 어떤 역사적 사건의 직접적 이유뿐 아니라 간접적 이유 즉 원인(遠因)까지도 의미한다. 그러나 이는 절대적 이유일 수는 없다. 그것은 사람의 모든 행위는 인간 자유의지 행위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 엄격한 인과법칙에 종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역사적 원인은 많은 의미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즉 하나의 역사적 원인이 같은 시대에 상이한 역사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예컨대 중세말기의 '현대의 신심'이란 영성운동은 두 가지의 역사적 사건, 즉 가톨릭 쇄신과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을 일으켰다. 아울러 역사적 원인은 그 결과를 설명하지만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는 우리에게 역사적 반성의 기회를 주며 역사적 교훈을 얻게 한다. 이러한 뜻에서 그 가치를 지닐 수 있다고 하겠다.

2. 종교개혁의 원인에 대한 견해
종교개혁의 원인에 대한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오늘날까지도 논의되고 있다. 많은 역사가들과 실학자들은 종교개혁을 일으켰거나 마련할수 있었던 모든 역사적 사실들을 자세하게 조사하였으나 아직 합의된 설명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 가톨릭 학자들은 종교개혁의 기원을 밝히는 데에 특히 정치적, 논리적 사실들의 영향을 강조하였다. 즉 정치적으로는 왕과 제후들의 물욕, 중앙집권주의적 전제군주제의 발전과 국가주의의 성장을 들고 있었으며, 윤리적으로는 자격을 갖추지 못한 비도덕적인 고위성직자들의 정치욕과 영신적 사명감의 망각들을 열거하고 있었다. 한편, 프로테스탄트 저자들은 정치적 원인과 동시에 성직자, 특히 교황들과 聖廳의 성직자들의 타락 등의 비논리성을 강조하였다. 또 어떤 역사가들은 인류의 발전 과정에 있어서 사회적, 경제적 사실들의 역할을 중요시하여 종교개혁을 그당시의 사회적, 경제적 상황에 대한 신학적 표현 또는 결과로 설명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20세기 후반기 이후로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및 비그리스도교의 역사가들은 세속적인 영향을 인정하지만, 그보다는 종교개혁의 종교적 원인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3. 종교개혁에 대한 가톨릭 입장
과거에, 수많은 가톨릭 지도자들은 교회 내의 악폐가 프로테스탄티즘의 발생과 성장 및 발달에 이바지하였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하였다.
우 리는 그 한 예를 교황 Adrean 6세가 Nurngerg 의회에 파견된 교황사절인 Francesco Chieregati에게 보낸 훈령에서 볼 수 있다. 이 훈령은 의회에서 1923년 1월 3일에 공개되었다. 여기서 Adrian은 성직자들, 특히 교황들과 성청의 성직자들 사이에 있었던 폐해는 Luther의 종교개혁의 기원에 책임이 있다고 고백하면서 Chieregati에게 이러한 과오들을 공개적으로 시인하고 교황 자신은 聖廳의 개혁에 있어 최대의 노력을 다할 준비가 되어있었다는 사실을 공표하도록 지시하였다.
그리고 가톨릭 교회의 지도자들 중에 종교개혁을 단순히 부정적 사건, 즉 반가톨릭적 사건으로 생각치 않는 이들이 있다.
그 들은 프로테스탄티즘의 긍정적인 종교적 의미를 강조하고 종교개혁은 교회(가톨릭)에 대한 적의의 증악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참다운 종교적 열망에 의해서 일어났다고 주장하였다. 한 예로 비엔나의 성인이라고 불리우는 Clement Mary Hofbauer를 들 수 있다. 그는 독일 민족이 교회에서 탈퇴한 것은 그들이 경건한 백성이 되어야겠다는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며 종교개혁은 이단자들이나 사상가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앙심을 추구하던 이들에 의해서 뿌리박고 전파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본인의 입장에서도 이 주장은 납득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Luther도, 다른 종교개혁가들도 처음부터 새로운 교회를 세우고 있다고 생각치 않았고 가톨릭 신부로서 교회 안에서 비록 실패는 하였지만 교회개혁에 대한 가톨릭적 요구를 내세웠다.
바오로 6세는 제2차 Vatican공의회 제2 회기의 개막식에서 옵서버로 참석한 비가톨릭 종교자들에게 가톨릭이 그리스도교의 분열의 책임을 나누어지고 있다고 말하면서 갈라진 그리스도교 형제들에게 용서를 청하였다.

사목 67호, 1980년 1월, 14-25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