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하느님을 찾을 수 있다

인간이 하느님을 찾을 수 있다
사람은 절대자[행복]를 갈망한다

사람은 각자 나름대로 믿는 바가 있다. 자기를 믿거나, 타인을 믿거나, 또는 이성(理性)이나 과학에 대하여 믿는다든지, 더 나아가서 초자연적 존재나 힘을 믿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믿음[신앙.종교]의 동물이며 숭배하는 동물이다.

사람은 부단히 무언가를 추구(追求)하고 있다 하지만 그 구체적 목표는 모두 다르다. 어떤 사람은 금전, 권력, 명예, 애정 등을 획득하는 데에 열성을 쏟고 잇다. 열정은 때로는 종교인들의 절대자 숭배에 못지 않는다.

사 람은 현세적, 지상적(地上的) 어떤 것을 찾아 누려도 만족하지 못한다. 마음 속 깊은 곳에는 항상 무한히 착하고 바르고 아름다운 삶을 영원히 누리고 싶어한다. 모든 것에서 최고의 진선미(眞善美)인 절대자[신.하느님]를 갈망하고 있다.

하느님께 대한 이 갈망이 인간의 마음 속 깊이 새겨져 있다는 것은 인간이하느님에 의하여, 하느님을 위하여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끊임없이 찾고 있는 진리와 행복은 오직 하느님 안에서만 찾을 수있다.

1. 사람은 종교가 필요하다

어 버이와 자녀를 결합시키는 따스한 도덕적 관계를 효도라 한다. 종교는 창조주(創造主)의 하느님[절대자.신]과 피조물(被造物)인 사람을 결합시키는 가장 아름다운 은애(恩愛)의 관계이다. 이는 인간의 모든 관계에 가장 근본[宗,종]되는 가름침[敎,교]이 된다. 그러므로 사실 무신론자란 있을 수 없다.

사람의 가장 중효한 문제는 종교만이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누구나 종교가 필요하다.
사람에게 의.식.주와 교통수단과 같은 물질 문제는 과학적 기술 개발로써 해결할 수 있다.
희로애락과 같은 정서와 감정에 관한 것은 수양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지식과 같은 지성에 대한 것은 학식을 추구함으로써 해결한다.
생(生) 사(死) 존(存) 亡(망)과 같은 인간의 한계를 무한히 초월하는 것은 무엇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오로지 종교 밖에 없다.
삶의 극한 상황이나 절망에서 사람이 가진 어떤 것으로도 해결하지 못할 때 그 최후의 희망은 종교이다. 거기에 귀의(歸依)하여 구원을 얻고자 한다.

지 금까지 문화 수준이 높거나 낮거나 어디서나 신령한[초월적.초인간적] 존재를 숭배하며, 이에 상응한 신앙과 종교적 행위들(기도 제사 예배 묵상)로써 하느님을 찾는 표현을 해 왔다. 그래서 하느님의 도움을 간구하고 종교의 계명을 어기는 것을 두려워 했다. 이러한 종교의 표현 양식들은 비록 모호한 점들을 가지고 있으나, 어느 시대 어느 민족에게나 있는 매우 보편적인 것들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종교적 존재라 일컬을 수 있다.

인류 사회에는 윤리 도덕 준수가 절대 필요하다. 종교는 이 도덕의 최고 영역이며 기본적 바탕을 이루기 때문에 건전한 사회는 건전한 종교를 필요로 한다.

2. 어느 종교나 다 같지는 않다

종교는 크게 나누어 자연종교와 계시종교가 있다.

자연(自然)종교
사람의 이성과 경험으로 하느님[天主=천주.신.절대자]이 있음을 깨닫고 양심에 따라서 섬기는 것이다. 이 종교는 수천년에 걸쳐 많은 사람들의 심혼(心魂)에서 발로되는 표현이며 심오한 경전을 가지고 있다. [유교.불교]

계시(啓示)종교
사 람이 전연 알 수 없는 하느님의 본성(本性)과 진리[생명구원 영생]를 하느님이 직접 인간이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게 나타나서 가르쳐 주심에 따라 하느님을 섬기는것이다. 즉 하느님의 계획, 하느님의 생활한 현존, 하느님의 역사(役事)에 인간을 결합시켜,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참되고 생활한 관계를 이루는 종교다. [그리스도교.유대교.회교]

3. 인간이 종교(하느님과 대화 사귐 신뢰, 신앙하는 깊은 생명의 결합)를 잊거나, 인정하지 않거나 거부할 수 있다.

종교 무관심, 거절하는 이유
세상의 불행에 대한 반발
종교적 무지와 무관심
현세와 재물에 대한 근심
신앙인들의 좋지 못한 표양
종교에 대한 적대적 사조(思潮)
하느님이 두려워 몸을 숨기며 그 분의 부르심을 듣고 달아나는 죄인인 인간의 태도 때문이다.

4. 하느님을 "깨달을 수 있는" 길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기 위해 깨달을 수 있는 길(하느님의 존재 증명)들은 물질 세계와 인간을 그 출발점으로 한다.

하느님 존재의 증명

세계
세계의 움직임 변화 우연성 질서와 아름다움에서 우주의 시작이요, 마침이신 하느님을 알 수 있다.("변화하는 아름다움들은 변화하지 않는 아름다움이신 분이 아니면 그 누가 만들었겠습니까?" - 성 아우구스띠노)

인간
진 리와 아름다움을 향한 개방성, 윤리적 선(善)에 대한 감각, 자유와 양심의 소리, 무한과 행복에 대한 갈망 등으로 인간은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 스스로 묻는다. 이러한 것들을 통해서 인간은 자기 영혼의 표지(標識)등을 파악할 수 있다. 즉 인간이 자기 안에 지니고 있는 이러한 영원의 씨는 물질로 환원될 수 없으므로 인간 영혼의 근원은 오직 하느님 한 분 뿐이심을 깨닫게 한다.

세 계와 인간이 자신 안에 스스로 최초 원인과 최종 목적을 가지지 못할 뿐아니라, 시작도 마침도 없이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의 존재에 참여함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여러 가지 '길'들로써 '모두가 하느님 이라고 부르는' 제1원인이면 최종 목적인 실재가 존재한다고 깨달을 수 있다.

인간이 이성의 빛으로써 만물의 근원이며 목적이신 하느님을 확실히 "인식할 수 있다". 인간이 이런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하느님의 모상 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성의 빛만으로 초자연적 존재인 하느님을 인식하기에는 많은 장애와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므로 하느님 께서는 인간이당신과 친밀하게 되고, 오류없이 쉽게 이해하게 되도록 인간에게 계시(啓示.성서와 성전)의 빛을 주신다. 그리고 신앙으로 이 계시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인간에게 은총(恩寵)을 주신다. 하느님 존재에 대한 이 증거는 신앙을 준비시킬 수 있다. 그리고 신앙이 인간의 이성에 위배되지 않음을 깨닫게 해 준다.

하느님을 찾는 내용이 비록 결함과 오류가 섞여 불완전하지만 어느 민족이나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다. 어떤 민족도 바른 마음으로 진리를 추구하는 한 하느님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므로 만민은 어떤 의미에서 같은 하느님을 가지고 있다. 또한 각 시대에 따라 개인과 민족은 하느님에 대한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하느님은 진리이다. 진리를 찾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건 모르건 하느님을 찾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