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도 안전거리를!...

찬미 예수님

인간관계에도 안전거리를!

대학 졸업반인 영철은 서류 심사를 거쳐 면접시험을 치르기 위해 대기실에 앉아 있었습니다. 면접이 시작되면서 앞에 있던 사람들이 한 명씩 면접실로 들어가자 대기실은 긴장감과 초조함으로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면접을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의 창백한 얼굴을 보자 영철의 가슴은 두근거렸습니다. 자신의 말 몇 마디에 취업이 될 수도, 자칫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되지 않는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대기실을 둘러보는데, 영철의 눈에 청순한 얼굴의 여성 지원자 한 명이 들어왔습니다. 그녀의 얼굴은 초조함과 긴장감으로 인해 더 이상 창백할 수 없을 정도로 하얗게 질려 있었고, 누군가 살짝이라도 건드리면 그녀의 눈에서는 당장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아마도 난생 처음으로 면접을 치르는 것 같았습니다.

영철은 자신의 입장도 그녀와 다를 바 없었지만 그래도 한두 번 경험이 있는 상태였기에 다가가서 많이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해 주고 싶었습니다. 영철이 그녀에게 한 걸음 옮기려고 막 일어서는 순간, 그녀의 입에서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i ~ c8 열나 떨려!”

무의식중에 터져 나온 그녀의 한마디에 영철은 그녀에 대한 생각이 달라져 버렸습니다. 청순하고 가련하게 생긴 여인에게서 풍기는 인상과는 전혀 다른 험악한 말이 튀어나온 것입니다. 가까이 다가갔다가는 곤란한 일을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영철은 그녀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못하고 면접을 치른 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전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뜻하지 않은 문제와 맞닥뜨릴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관계에는 안전거리가 필요합니다. 그 거리는 서로를 신뢰할 수 있을 만큼의 거리이고, 상대를 참아줄 수 있는 만큼의 거리입니다. 상대가 어떠한 요구를 해도 다 들어줄 수 있다면, 그 거리는 가깝게 유지해도 괜찮습니다. 그렇지만 가까이 할수록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라면 조금은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내가 힘들지 않을 만큼의 거리, 부딪쳐서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만큼의 거리, 속도를 줄이면 언제고 안전하게 멈출 수 있는 거리가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인간관계의 안전거리입니다.

(김흥식)

댓글

참 좋은 내용입니다.

사람들과 관계를 할 때는 교퉁법 준수가 정말로 필요합니다.

안전거리를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차선위반, 나만 빨리가면 그만이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일상생활에서는 경찰이 딱지도 떼고, 단속을 하지만,,

법적인 제약을 벗어나지 않는
사람들 관계의 단속은 아무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사람들의 운행에 개입하여
우리가 가야할 길을 제시해주시고,
어떻게 가야할 지..잘 알려주고,
일일이 교통 정리를 해주고 계시는데..

정작 우리들이 그분의 수고를 못알아보고, 좌충우돌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맘에 접촉사고를 내고도 모른 척하고,
냅다 튀는 것이 사람들의 일상사가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하느님도 딱지를 팍팍 떼 주셔야 하는데.. ^^;)

사람들 사이에서의 교통법 준수 정말 필요합니다. ^^;

P.S.
여러 교우님들의 발칸포 기도에 감사합니다.
이제 회복기에 접어 들었습니다.

인간관계보다...

더 어려운 게 있을까요?
이것만 정복하면 성인 반열에 오르는 것 아닐까요???
회복 되신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안셀모

가슴 아픈 안전 거리 유지!

위에 열거된 인간관계의 안전거리 유지를 위한 이유들은
저와 같은 아주 특이한 성격 소유자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1) 자신이 옳다고 생각 하면 앞 뒤 생각없이 덤비는...

2)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 여겨지면 아내의 충고를 귓 등으로 흘리는...

3) 학교에서 바른생활 시간과 교회에서 배운것은 그대로 실천 하는것이 마땅하고 옳다 고
목소리 높이는...

4) 월 수입이 만 달러 이상인 신자중 20 %의 신자는 교무금을 전혀 내지 않는 다는
본당 30 주년 기념집의 설문결과에 어떻게 그런일이??? 라며 혼자 흥분하는....

5) 2700 여명의 신자를 가진 본당의 주일미사 참여 숫자가 왜 10년전과 별반 차이가없고
그 많은 신자 중 빈첸시오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는 신자는 손가락으로 셀 수 있는
정도 뿐이냐며 혼자 열 내는 ....

6) 운전하고 가는 길에 버려진 깡통과 플라스틱 빈병을 보고 저거, 브라질의
나환자들에게 보내야 할 5 센트인데! 하며 아쉬워하고 샤핑 센터의 파킹장에서
주운 깡통을 주위의 시선에 관계없이 집에 가져와 모으는...

7)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여력이 있다면 아프리카나 남미, 그중에서도 가장 불쌍한
나환자들을 도와야 한다고 벅벅 우기는...

그런 제게는 분명 다른이들이 모두 나 처럼 느끼지도 생각 하지도 않는다는것을
알게 해 주는 좋은 글이 될 수 있으나,

" 상대의 요구를 다 들어 줄 수 있는 거리"가 과연 존재 하는지?

'내가 힘들지 않을 만큼'이라던가
'부딪혀서 문제 되지 않을 만큼의 거리' 그런 명분 때문에
선한 사마리아인은 자꾸만 줄어들고 있지 않을까요?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인간관계의 안전거리는 적정거리의 10배도 넘어서
오히려 무관심과 말을 거는것 조차 부담스러워 하는 현실이라는 점을
생각 할때
글을 읽을수록 점점 남을 경계 해야만 하는 것 처럼 느껴지는건 저 만의 생각이거나
잘못된 판단 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