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1월 16일 연중 제1주간 수요일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나와,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곧바로 시몬과 안드레아의 집으로 갔다.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사람들이 곧바로 예수님께 그 부인의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다가가시어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이 가셨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 온 고을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면서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새벽 아직 캄캄할 때, 예수님께서는 일어나 외딴곳으로 나가시어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래아를 다니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마르 1,29-¬39)
‘카파르나움에서의 하루’를 소개하고 있는 오늘 복음 내용은 생각만 해도 신명나는 모습입니다. 어쩌면 예수님과 제자공동체가 가장 잘 나가던 시절, ‘끝발 날리던 하루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물결처럼 밀려드는 인파로 인해 예수님과 제자들은 휴식시간은커녕 식사할 시간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싫은 기색 하나 없이 그들의 원을 아낌없이 채워주셨습니다.
치유면 치유, 구마면 구마, 위로면 위로...그날 카파르나움 도시 전체는 하루 온 종일 하느님의 은총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습니다.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그 은총의 단비를 맞고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몰랐습니다. 그야말로 지상천국이었습니다.
치유 받은 사람 가운데는 열병에 시달리던 베드로 사도의 장모도 있었고, 갖은 불치병에 시달리던 카파르나움 사람들도 있었고, 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수송해온 마귀 들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소원을 성취한 사람들, 하느님의 구원 역사를 자신들의 온 몸으로 체험한 사람들의 기쁨은 그 어떤 인간의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치유활동은 복음서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예수님께서는 병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습니다.
치유자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께서 고통 받는 인간을 얼마나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고 계신가는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시는지, 얼마나 그들과 가까이 하고 싶어 하시는지를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지니신 본성 가운데 두드러진 요소 하나가 ‘하향성’입니다. 우리 인간과는 철저하게도 그 맥을 달리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두말할 것도 없이 ‘상향성’입니다. 기를 쓰고 위로 올라가고자 발버둥을 칩니다. 좀 더 나은 학교, 좀 더 높은 자리, 좀 더 나은 급여, 좀 더 그럴듯한 직함을 획득하기 위해 아등바등합니다.
이런 우리이기에 철저하게도 ‘하향성’을 지니신 하느님 앞에 마음 깊이 불편함을 느낍니다. 껄끄럽습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끊임없이 맨 밑바닥으로 내려가셨습니다. 기를 쓰고 가난함을 추구하셨습니다. 고통을 자처하셨습니다. 죽음을 스스로 불러들이셨습니다.
그분은 높은 곳에서 허리만 구부려 소외된 자를 향하지 않으셨습니다. 편안한 자리에 앉으셔서 찾아오는 불행한 사람들을 맞이하지 않으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동정어린 눈길만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이런 모습은 정확한 의미에서의 하향성의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직접 인생의 가장 밑바닥으로 내려가셨습니다. 밑바닥 인생들 옆에 바짝 다가가 앉으셨습니다. 고통이 가장 극심한 그 곳에 당신의 거처를 마련하셨습니다. 세상의 극단, 인간 세상으로부터 가장 동떨어진 그곳으로 계속 다가가셨습니다. 아직도 눈에 눈물이 고여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안 이상 편히 쉴 수 없으셨습니다.
밑으로 내려가는 하향성의 삶이야말로 하느님께서 계시는 방향으로 정확하게 나아가는 움직임입니다.
하느님을 만나 뵙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가장 낮은 것으로 내려가십시오. 가장 소외된 지역을 찾아가십니다. 아직도 눈물과 한숨이 남아있는 곳으로 찾아가십시오. 거기 반드시 우리의 하느님께서 자리 잡고 계십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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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복음 묵상
"열병으로 누워 있어서"
몸에 열이 나는 병만을 열병이라 하지 않다.
내 마음데로 되자 않아 안절부절 아무것도 못하거나
매사에 의욕을 잃고 무기력해지는 것도 열병이라 한다.
나는 지금도 가끔 열병을 앓는다.
어디론가 가서 무엇인가를 폭발시키고 싶다.
이럴 때 주님께 손을 내밀면
주님께서는 잡아 주시고
열병은 천천히 가라 않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려 주신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뭔가 좀 된다 싶으면 그 자리에 그냥 눌러 앉고 싶다.
애써 또 고생길을 찾아 나선다는 것이 영...
어느 선교사 신부님이 하셨다는
"사람들한테서 칭찬 소리가 들리고 더 있으라고 붙잡을 때가 바로 떠나야 할 때라고 한다."는
말씀이 새삼 가슴을 찡하게 와 닿는다.
바람 같이 살아온,
그래서 나이 오십 넘어 미국까지 건너 와 살고 있는
나의 인생 여정과 떠나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겹쳐 흘러간다.
주님의 이끄심에 따라 여기까지 왔다고 믿습니다.
주님 이끄소서...아멘.
안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