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1월 20일 연중 제2주일
그때에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저분은,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하고 내가 전에 말한 분이시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 요한은 또 증언하였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 (요한 1,29-¬34)
오세영 시인의 '12월'이란 시(詩)를 좋아하는데, 한번 읽어보십시오. 마치 세례자 요한의 삶을 두고 지은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불꽃처럼 남김없이 사라져 간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스스로 선택한 어둠을 위해서 마지막 그 빛이 꺼질 때,
유성처럼 소리 없이 이 지상에 깊이 잠든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허무를 위해서 꿈이 찬란하게 무너져 내릴 때,
젊은 날을 쓸쓸히 돌이키는 눈이여, 안쓰러 마라.
생애의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사랑은 성숙하는 것.
화안히 밝아 오는 어둠 속으로 시간의 마지막 심지가 연소할 때,
눈 떠라, 절망의 그 빛나는 눈.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세례자 요한은 뛰어난 언변과 타고난 지도력으로 당대 백성들에게서 큰 추앙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삶이 얼마나 경건했던지 세상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이야말로 오시기로 된 메시아일거야'라는 착각에 빠지곤 했습니다.
그럼에도 세례자 요한은 진정 겸손했습니다. 자신의 신원, 자신의 사명에 대해서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는 사람', '예수님이 주연인 연극에 가장 충실한 조연'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잘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자 예수님을 향해 "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 저기 오신다"고 거침없이 외칩니다. 긴가민가하고 의구심을 갖던 당대 백성들에게 예수님이야말로 그들이 그토록 고대했던 이스라엘의 구원자가 틀림없음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지막 사명을 다한 세례자 요한은 깔끔하게 꾸며진 무대를 예수님께 내어드리고 조용히 뒤로 사라집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서 주연인 구세사 무대에 최고의 '남우조연상' 후보였습니다. 자신의 신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요한이었기에 결코 주연이신 예수님보다 튀지 않습니다. 결코 나대지 않습니다. 주연이신 예수님이 더욱 확실하게 '뜨도록' 목숨 바쳐 열연한 조연 중의 조연이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눈발이 휘날리는 황량한 산 능선에 묵묵히 선 이정표와 같은 존재가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위험한 겨울 산을 타는 등산객들이 길을 헤매지 않도록 안전하게 산정(山頂)으로 인도하는 고마운 이정표로서 삶이 세례자 요한의 삶이었습니다.
오랜 만에 아이들과 농구경기를 했습니다. 선수교체로 잠깐 들어가 뛰었는데도 숨이 턱까지 차 올라와서 '이제 나도 맛이 갈 때까지 갔구나'하는 느낌에 약간 서글퍼졌지요. 반면에 어느새 부쩍 커버린 아이들은 펄펄 날더군요. '정말 오랜만에 리바운드 하나 잡는구나'하고 흐뭇해하는 순간, 어느새 달려온 한 아이가 제 공을 낚아채 갔습니다.
힘으로, 실력으로 아이들을 이길 수 없었지만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 무대를 새로운 세대에게 물려주고 조용히 한 걸음 물러나는 일, 그것도 결코 속상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 순리에 따른다는 것, 나이에 맞게 적당히 물러서는 일, 참으로 지혜로운 일이고 서로를 위해 너무도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떠날 때가 왔음을 알았을 때,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바람처럼 떠나는 수행자 뒷모습처럼 아름다운 것은 세상에 또 없는 듯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세례자 요한의 삶은 우리 수도자들에게 귀감 중 귀감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물러설 때를 확실히 파악했습니다.
비록 그 순간이 가장 에너지가 넘치던 시절, 소나기 골을 마구 터트릴 수 있는 절정의 순간이었지만, 일말의 아쉬움이나 미련도 없이 확실하게 뒤로 물러섭니다. 때가 왔음을 알게 된 세례자 요한은 조금도 망설이는 법이 없습니다. 완전히 자신의 모습을 감춥니다. 주님께서 확실하게 '뜨도록', 주님께서 활짝 꽃피어나도록 철저하게도 자신을 죽입니다.
우리 안에서 매일 우리 자신이 조금씩 사라지길 바랍니다. 우리 안에서 매일 우리 자신이 소멸되길 바랍니다. 우리 자신이 사라지고 소멸되어야만 비로소 그 자리는 주님 현존으로 가득 채워질 것입니다. 그 순간이야말로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사시는 순간,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성장하시는 순간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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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동감합니다..
저도 물러날 때가 된 듯하네요. ^^;
자신이 소멸되어야 더 훌륭한 일꾼이 빈자리를 메꿀 것입니다.
동감, 동감.. ^^;
뭔가 잘못 올린 듯...
아직 팔팔한 청춘이신데 무슨...???
어르신들이...
.
.
.
*^^*
안셀모
아 복음묵상을 잘못했나요? ㅎㅎ
다시 한번... 읽어봐야지..
물러날 때...
이 물러날 때를 잘 알기만 하면
인생은 성공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닐까요???
남이 더 있으라고 할 때,
남들이 당신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할 때
이 때가 떠나야 할 때라고 어느 수사신부님께서 말씀하셨다라고
제가 몇일 전에 썼던 갓 같습니다...
글쎄 그러면 ....
할 없슴...쩝쩝...
은혜로운 주일...*^^*
안샐모
이제 시작하구선..
이제 얼마 됐다고 벌써 물러난다고요?
글쎄.....
원래 대통령도요..
더 하고 싶을 때.. 물러나야 나라가 잘된다는 말이 있지요. ^^;
밥도 더 먹고 싶을 때, 숟가락을 놓을 줄 알아야 건강에도 좋구요..
이젠 차세대를 이끌어갈 신진 인물을 발굴해야할 때입니다.
대책없이 손을 놓으면 안되겠지요.. ^^;
근데, 발굴이 쉽진 않군요.. ㅠㅠ
힘 있고 폼 나는 자리는 그렇고요...
힘들고 고달픈 자리는
아니지 않을까요...
다니엘 형제님,
그 자리는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는
외롭고 고달픈 자리이거던요...
꿈 깨시지요...
잘 암시롱...ㅎㅎ *^^*
좋은 저녁 시간 가족과 함께...
안셀모
봉사를 하면서 배울 수 있다면..
그거야 말로 일석이조 아닙니까?
이 일이 바로 그런 일입니다.. ^^;
잠들어있던 두뇌가 깨어나는 것같은 상쾌한 느낌!
함께 느끼시지 않으시렵니까? ㅎㅎ
드디어 제 정신이...
돌아 오셨네요...휴우~~~~ *^^*
안셀모
넘치지도말고 모자라지도 않는...
삶을 사는게 우리들의 바램이지요.
하지만 그런 때를 결정하기란 쉽지 않답니다.
각자 나름대로 최선을 다 하는 삶이 중요하겠지요.
요셉
나의 복음 묵상
저도 이제 가는 형아입니다.
어떻게 하면 있는 듯 없는 듯
그렇게 조용히 무대 뒤로 사라지느냐를 생각하곤 합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절 소리소문 없이 조용히
그렇게 절 뒷방으로 밀어내고 있습니다.
아직은 아닌 것 같은 데 말입니다.
솔직히 두렵습니다...
무대에서 사라지기가...
안셀모
무대에 서면 될것을...
사라지다니요?
주님의 무대에 서실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특별히 세일기간이라 오디션도 없이 그냥 세워드립니다.
많은 일중에 주님을 묵상도 좋은데
찬양을 하면 더 좋지 않을까요?
녜~~~무대도 여러가지 무대가 있군요...
먹고 살아야 하는 일상 삶의 무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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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먹여 살려야 하는 식구가 많습니다.
안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