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2월 13일 사순 제1주간 수요일 / 요나의 기적, 오늘에도 가능하다!
그때에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다. 그 여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 (루카 11,29-¬32)
요나는 니네베 사람들에게 회개를 선포하였고
수많은 사람들을 회개에로 이끌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사람들에게
내가 보여줄 기적은 요나의 기적 밖에 없다고 하신다.
그러시면서도 요나보다 더 큰 기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회개에로 이끄셨다.
문득 엉뚱해 보이지만 이런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면 나는 이 세대에게
무슨 기적을 보여줄 것인가?
예수님의 제자이고 성 프란치스코의 제자로 불림받은 나는
어떤 삶을 통해 세상사람들을 회개의 길로 이끌 수 있단 말인가?
성 프란치스코는
가난과 겸손의 길을 통해서 회개의 삶을 살았고
또 그 삶을 통해 세상 사람들을 회개의 길로 이끌어 주었다.
그 덕에 나도 프란치스칸으로 살아가고 있는 은혜를 누리고 있다.
나 또한
회개의 삶을 통해 세상사람들을 회개의 길로,
은총의 길로 초대해야 할텐데
때론 막연하기조차 하다.
내 한몸조차 깊이 회개하지 못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회개를 어찌 운운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생각에 이르게 되면
실망스럽고 자신이 없어진다.
그렇지만 요나에게서 그 답을 찾게 된다.
그래 요나 또한
연약하고 비겁한 일꾼이지 않았던가?
그러면서도
하느님의 명을 받아 수행해야만 했던 예언자가 아니었던가?
그렇게 생각하면
하느님께서는 내가 잘나서, 능력이 있어서
당신의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수행케 하신 것이 아니라
나 비록 부족하고 보잘것없지만
요나처럼 또다른 예언자가 되라고 하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요나는 이러한 점에서 나의 모델이다.
우리 자신이 비록 부족하고 연약하다 하더라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회개를 이루시는 이는
내가 아니라 바로 하느님이시다.
나는 하느님의 메신저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
말로써 보다는 삶으로써 말이다.
결국 내가 보여주어야 할 기적은
숨은자로서, 가난한자로서, 겸손한자로서 살아가는 것밖에 없으리라.
거창한 하느님 나라의 일꾼으로서도 아니요,
유명한 설교가도 아니요,
이름난 영신지도자도 아니요,
훌륭한 조직가도 아니요,
행정가도 아니요...
그냥 작고 가난한 한 영혼으로서
조용히 조용히
성실히 성실히
겸손히 겸손히
묵묵히 묵묵히
아무것도 아닌 양,
아무것도 게의치 않으면서
그냥 작은 기쁨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리라.
그리고 기회가 되는 대로
그분께서 선포하시라고 명하신다면
메신저가 되어 드리면 된다.
그것이 하느님 나라를 위해
세상 사람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아니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가장 큰 기적이 아닐까?
이 아귀다툼하는 세대를 위해서 말이다...
결국 요나는
기적을 이루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
하느님이심을 장엄하게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실수하는 것은
내가 뭔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잘못된 강박관념이 아닐까?
나는 하느님 나라의 조연일 뿐인데 말이다...
+ 프란치스코 형제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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