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2월 21일 사순 제2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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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1일 사순 제2주간 목요일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주십시오.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주십시오.’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루카 16,19-¬31)

<하느님께서 축복해주시지 않으면>

오늘 복음의 비유에 등장하는 부자는 어떻게 처신했기에 그토록 심한 고통(타는 불꽃 속에서의 갈증)을 겪고 있을까요?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너무도 "잘" 살았기 때문입니다. 지닌 재산이 너무도 많았기에 그 재산을 이용해서 누릴 것은 다 누리며 살았습니다. 의식주 그 어느 것 하나 아쉬운 것이 없었습니다. 몸에 좋다는 것이 있으면 액수를 따지지 않고 사다가 먹었습니다. 옷은 오로지 최고급 명품으로만 잔뜩 치장했습니다. 집은 임금님 대궐처럼 지었습니다. 매일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마냥 즐겼습니다. 오직 제 한 몸 챙기기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다 같이 즐겼더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입니다. 부자가 진귀한 음식을 즐기고 있던 바로 그 식탁 밑에만 하더라도 라자로라는 거지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짐승처럼 엎드려서 "언제 빵 부스러기가 떨어지나?" 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부자는 라자로를 동네 개 보듯이 했습니다. 기분 좋으면 뜯고 있던 닭다리 하나를 크게 선심 쓰듯이 밑으로 던져주었습니다.

비유에 전개된 상황을 머리 속에 떠올리기만 해도 "세상에 어쩌면 그럴 수 있나?" 하는 생각에 치가 떨리지만 오늘날 우리 가운데서도 엄연히 벌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부자의 가장 큰 과실은 자신에게 주어진 부 앞에 겸손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자신의 부가 원래 자신의 것이 아니라 이웃과 잘 나누어 쓰라고 하느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임을 간과했던 것입니다. 돈이면 다인줄 알고 가난한 사람들을 철저하게도 무시하면서 오만하게, 안하무인격으로 살았기 때문에 다음 세상에 가서는 지옥불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목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불평등과 불의, 의인의 고통,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서러움을 우리 역시 나몰라라 하고 있지 않습니까?

열심히, 성실히, 꾸준히, 정직하게 일해서 획득한 부와 명예는 너무나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그분들은 훌륭한 부자들, 하느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부자가 되고 난 후의 처신은 더욱 중요합니다. 본인이 열심히 일한 탓으로 부자가 되기도 했겠지만, 결국 하느님께서 축복해주시지 않으면 그 부는 너무나도 일시적인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그 떳떳하고 영광스런 부와 영예, 재능 앞에 무엇보다도 먼저 감사할 일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축복으로 주신 그 부와 명예, 재능을 하느님께 도로 돌려드리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께 돌려드린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나눌 줄 아는 넉넉한 부자,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부자로 산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나누지 않고 제 한 몸 챙기기에만 여념이 없었던 부자의 최후가 어떠했는지 예수님께서는 잘 묘사하고 계십니다.

이 지상에서 너무나 호의호식했기에 저 세상에 가서는 물 한 방울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소리소리 지르며 물 한 방울만 주셔서 타고 있는 혀를 축여달라고 사정하고 있습니다.

작은 것일지라도 나누고, 작은 손길이라도 보태는 사랑의 실천을 통해 하늘에 보화를 쌓는 오늘 하루가 되길 빕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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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저도 좋은 글을.. 가져왔습니다.

대문 앞의 라자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1987년 회칙 ‘사회적 관심’을 통해,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사랑’에 영감을 받은 결단은 무수히 굶주리는 사람들, 곤궁하고 집이 없으며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무엇보다도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사람들을 향해야 한다는 것을 천명하셨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현실을 무시하는 것은 ‘부자’가 거지 라자로를 모르는 체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끊임없는 군비경쟁과 자신들만의 이윤축적에 혈안이 된 세계의 선진국들에게 호소하셨습니다. 우리들 일상의 문간 앞에 놓여진 ‘라자로’는 바로 저개발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아프리카라고 말이죠. 그 후 2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는 선임 교황님의 호소를 기억하게 됩니다.

얼마 전 다이아몬드 광산을 둘러싼 아프리카 서부 시에라 리온의 비극을 다룬 ‘피의 다이아몬드(Blood Diamond)’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습니다. 광산이 개발되기 전, 가난했지만 평온했던 마을은 광산의 주도권을 둘러싼 내전에 휘말리게 되고, 아이들은 소년병으로 끌려가거나 광산 토굴 속에 들어가 온종일 다이아몬드를 캐야 했습니다. 내전을 유지하기위해 다이아몬드는 선진국에 싼값에 팔리고 그 돈은 또다시 무기를 구매하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아프리카의 악순환, 그것은 분명 현대문명의 부끄러운 비극입니다.

가난한 라자로는 먹을 것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구조악’의 종기로 인해 고통을 받습니다. 하지만 부자는 화려한 고급염료의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아갑니다. 라자로는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었기에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부자는 라자로를 돌보지 않습니다. 부자는 일상의 분주함으로 바빴거나, 미처 그의 존재를 깨닫지 못했거나, 혹은 그의 가난과 불행과 무능함은 그의 탓이라고 여겼는지도 모릅니다. 결국 라자로는 무관심 속에 죽고, 부자는 많은 이들의 애도 속에 화려한 장례식을 치룹니다. 하지만 죽음 이후의 입장은 뒤바뀌어 라자로는 생전에 고통받은 ‘무관심’에 대한 위로를 받고, 부자는 고통을 받습니다. 부자는 나중에서야 자신의 벌이 하느님의 사랑을 들으려하지도 않고 거슬렀던 ‘무관심’에서 비롯됨을 깨닫지만, 지나간 기회와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라자로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그는 늘 우리의 집 문간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보려하지 않고, 보아도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그들을 향한 용기있는 결단은 주위를 둘러보고 혼자 먹을 사과를 쪼개어 먹는 사랑입니다. 나 자신만을 위한 ‘삶의 질’에 눈이 멀게 아니라, 인류 공동체의 삶의 질을 위해 연대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과를 반으로 쪼개어 나누어 먹으면 절반의 부족함은 가슴 뿌듯한 기쁨과 행복으로 채워집니다. 그 행복이 진정한 하늘나라의 기쁨이며 희망입니다.

한만삼(하느님의 요한) 신부

진정한 나눔만이...

모든 구조적인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신앙 생활을 통하여 얻은 제 나름의 소신입니다.

주님께 감사...!!!!

안셀모

나의 복음 묵상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오늘 복음 말씀에는 '부자'와 "가난한 이'가 대비 되면서 저에게 다가옵니다.

'부자', 많이 가진 자 모두를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 것 같습니다. 가진 것을 나누기 보다는 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사는 이기적인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가난한 자', 진복팔단 말씀이 떠오릅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행복...."
자기 가진 것을 남을 위해 버림으로써 스스로 가난하게 된 사람들...

가장 철저한 가난을 살았던 사람...
하느님이시면서 사람으로 와서 '가난한 자'로 살다...
마지막 자신의 몸과 피까지 내어 주는 삶을 살았던 진정한 '가난한 자'
나의 스승 예수님...!!!

겨자씨 만큼이라도 닮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프란치스칸 수사신부님의 묵상 글중 한토막 깊이 묵상해 봅니다.

가난을 즐기고
참으로 온 세상이 우리의 수도원이요
온 우주 만물이 나의 형제자매들임을 즐길 때
우리는 참으로 진복자가 아니겠는가!
이것이 진정한 복음적 가난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 나의 삶의 자리에 접지하기 ***
적게 주셨음에 불평하기 보다는,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는 여유를 주셨음에 감사하는 하루를 살아야겠다.

나의 가정이 그리고 일터가 수도원임을 잊고 살았습니다.
오늘 하루 온 세상이 수도원임을 잊지 않는 하루를 살아야겠다.

안셀모

대문앞에 있는...

너무 바빠서 미처 대문앞에 있는 라자로를
보지 못하고 지나쳤나 봅니다.
반성하며 주위를 둘러 보며 하루를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