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2월 23일 사순 제2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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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3일 사순 제2주간 토요일-루가 15장 1-3,11ㄴ-32

그때에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그런데 작은아들이,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 하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가산을 나누어 주었다.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자기 것을 모두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였다.
모든 것을 탕진하였을 즈음 그 고장에 심한 기근이 들어, 그가 곤궁에 허덕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 고장 주민을 찾아가서 매달렸다. 그 주민은 그를 자기 소유의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그는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그때에 큰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다. 그가 집에 가까이 이르러 노래하며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하인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묻자, 하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오셨습니다. 아우님이 몸성히 돌아오셨다고 하여, 아버님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큰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 그를 타이르자, 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그러자 아버지가 그에게 일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루카 15,1-¬3.11-¬32)

<부드러운 주님의 음성>

오늘 복음을 묵상하다가 가사 말이 너무 좋아 자주 흥얼대던 복음성가 한 곡이 생각났습니다. "탕자처럼."

"탕자처럼 방황 할 때도 애타게 기다리는

부드러운 주님의 음성이 내 맘을 녹이셨네.

오! 주님 나 이제 갑니다. 날 받아주소서

이제는 주님만 위하여 이 몸을 바치리다."

당신께로 발길을 돌릴 때마다 한 번도 내치지 않으셨던 제 인생의 주님이셨습니다. 돌아갈 때마다 조용히 제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시고,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셨던 그분은 진정 자비의 주님이셨습니다.

그 주님은 제가 아무리 못할 짓을 했어도 용서해주셨던 주님, 제가 아무리 거스르는 짓을 했어도 눈감아주셨던 주님, 제 죄를 용서하는 것, 제게 한결같이 자비를 베푸는 것이 특기이자 유일한 낙이신 주님이셨습니다.

이런 자비의 주님을 두고 너무도 자주 딴 짓을 하고, 너무도 딴 길을 갔었던 지난날을 다시 한 번 뉘우칩니다. "오! 주님 나 이제 갑니다. 날 받아주소서"외치면서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작은 아들이 보였던 행동은 인간으로서 해서는 도저히 안될 행동, 어처구니 없는 행동, 한마디로 싸가지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이 세상 그 어떤 사회에서도 유산이란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 고려하는 것이 기본적인 도리입니다. 그런데 작은 아들은 아직 아버지가 멀쩡히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제 몫의 유산을 챙겨 아버지를 떠나갑니다.

이 말은 이제 "당신은 당신, 나는 나"란 말과도 같습니다. 결국 남남이 되었다는 말, 부자간의 인연을 끊었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합니다. "더 이상 내 인생에 참견하지 말라"는 행동이었습니다.

작은 아들이 떠나간 후 남은 아버지가 느꼈던 심정은 어떤 심정이었겠습니까? "참담함"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짐"이었겠지요.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완전히 맛이 가버린 작은 아들은 수중에 땡전 한 푼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야 자신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자각합니다. 더 이상 먹을 게 없어서 돼지가 먹는 짬밥으로 겨우겨우 연명하게 되는 데, 다행히도 그 상태에서 작은 아들은 아버지를 떠올립니다. 아버지의 따뜻한 품을 기억합니다.

회개의 과정에 있어서 우리 자신의 잘못에 대한 철저한 반성도 중요합니다. 앞으로는 정말 정도(正道)를 걸어야겠다는 굳은 결심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한없이 자비로우신 아버지께로 우리의 얼굴을 돌리는 일"입니다.

진정 수치스럽고 면목 없는 일이겠지만 아버지 집으로 발길을 돌려야겠다고 결심하는 일이야말로 회개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입니다.

회개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향해 얼굴을 돌리는 일이 아니라 태초부터 주의 깊게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그분을 향해 우리의 얼굴을 돌리는 일입니다.

그분의 자비로운 눈길에 우리의 시선을 맞추는 일입니다. 세상으로 향했던 우리의 얼굴, 악에로 기울었던 우리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아버지 쪽으로 돌리는 일이 바로 회개의 핵심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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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바닥을 쳐야만 돌아서는...

우리 인간들은 어쩔 수가 없나봅니다.
바닥을 쳐야만 비로서 자신을 버리고 돌아오니 말입니다.
작은 아들의 모습은 바로 나를 보는 것과 같으니까요.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나의 북음 묵상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겠지만
대체적으로 범생으로 살아온 큰 아들이라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어려움이 다가 왔을 때는
하느님이 어디에 계시냐고 하느님을 원망하곤 합니다.

하느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이
제가 바로 집 나간 작은 아들입니다.

하느님은 항상 나와 함께 계심을 느끼며 살아 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주님은 지금도 돌아올 저를 기다리며 멀리 바깥을 내다보고 계십니다.
대자대비하신 주님께로 갈음을 재촉해야겠습니다.

*** 나의 삶의 자리에 접지하기 ***

오늘도 미사와 복음 묵상으로 하루를 시작하면서
주님이 항상 나와 함께 하심을 느끼는 주말이 되었으면 좋겠다.

주님께 감사...!!!
안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