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3월 6일 사순 제4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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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6일 사순 제4주간 목요일 - 요한 5,31-47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유효하지 못하다. 그러나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 나는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분의 증언이 유효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 그는 진리를 증언하였다. 나는 사람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너희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한때 그 빛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 너희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고, 그분의 모습을 본 적도 없다. 너희는 또 그분의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는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은 추구하지 않으니, 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그러나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을 것이다. 그가 나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희가 그의 글을 믿지 않는다면 나의 말을 어떻게 믿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요한 5,31-47)

<저리 고운 옥색 하늘이 열리는 날>

가끔씩 바닷가의 날씨는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도 잔잔하던 바다, 그래서 호수 같은 바다였는데, 순식간에 세찬 바람과 함께 높은 파도가 몰려옵니다. 먹구름과 함께 인자한 노인 같던 바다는 한 순간에 화가 잔뜩 난 난폭한 젊은이로 바뀌고 맙니다.

그런 바다, 갯바위 위에 오래도록 서 있었습니다. 뺨에 와 닿은 바람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몸에 느껴지는 바람의 강도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먹장구름을 뚫고 푸른 하늘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신속히 구름이 걷히면서 하늘이 열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평소에 전혀 느껴지지 않던 새로운 감정이 밀물처럼 제게 다가왔습니다. 언젠가 하느님의 도움으로 내 인생도 먹장구름이 활짝 걷히고 저리 고운 옥색하늘이 열릴 날이 반드시 다가 올 거야, 하는 충만한 희망이 다가왔습니다.
잠시지만 너무나 은혜로운 체험이었습니다. 피정의 결실인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비록 이렇게 불투명하고 흐리지만, 언젠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하느님의 말씀이 보다 생생하게 전해져올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성경말씀의 은총이 폭포수처럼 제 영혼에 내려와 하느님 말씀 한자 한자가 감사와 선물로 다가올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날 그분의 말씀은 제게 정녕 피가 되고 살이 되고, 생명의 양식이 될 것입니다. 그때 그분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는 꿀처럼 달 것이고, 생명수처럼 시원할 것입니다. 그 말씀은 제 인생을 환히 밝히는 등불이 되겠지요. 그때 제 삶은 보란 듯이, 그리고 말끔히 정돈되고, 삶은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성경을 읽기 시작하면서 드는 심각한 반성입니다. 그간 너무도 주변에서만 맴돌았구나. 원뿌리를 외면하고 가지만 붙들고 있었구나, 하는 후회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 원전입니다. 성서 본문입니다. 원천에 대한 진지하고 성실한 봉독은 뒷전인 채, 주석서다, 해설서다, 지침서에만 너무 매달렸습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성경말씀, 성경 원전이 제 삶의 중심이 되길 바랍니다. 그 말씀은 바로 예수님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왜 이리 삶이 허황된가, 왜 이다지도 인생이 허전한가, 생각해봤더니 말씀의 핵심으로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더군요.

매일의 말씀에 삶의 지침이 있음을, 그러기에 다른 곳이 아닌 바로 말씀에서 하루를 살아갈 에너지를 얻길 바랍니다.

그렇게 될 때, 그 어디에 있든, 그 어떤 곤경 앞에 서 있든, 그 아무리 무거운 십자가가 다가온다 해도, 흔들리지 않고 외로워하지 않고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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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한국에서..


과거에 고등학교 입시준비를 경험한 교우님들은 모두 공감하실 겁니다.

실제 학교 교과서보다는 '영어완전정복', '수학의 정석' 같은 참고서적이 더 인기가 많았었죠.
학교선생님보다는 어디어디 쪽찝게 학원선생님이 더 인기가 있었지요.

허황된 망상이지만,

'만일 천국이 대학입시처럼 시험을 잘본 사람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면,,
성경보다는 '천국완전정복', '천국정석' 같은 참고서라 불티나게 팔리고,
인기있는 성직자가 있는 교회로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현상이 생길지도 모른다'

는 웃기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런 모습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분명 아닐 것입니다.
하루하루 성경 말씀안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이를 묵상하고 행하는 사람을 원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 역시... 성경을 보면, 음.. 이게 무슨 말씀일까 아리송할 때
참고서를 보면, 아~ 이게 이런 말씀이구나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래도 기본에 충실하라는 말씀 다시 새겨듣고 갑니다. ^^;

벼락치기는 안 되고...

당근 참고서가 필요하지요...
그리고 선생님도 필요하고요...
그러나 벼락치기로는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어제 개강한 레미지오 수녀님이 하시는 성경공부... 어렵사리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기초부터 다시 시작하기에는 더 없는 좋은 기회인 것 같습니다.

같이 한번 해보시죠...
다음주 수요일 저녁에 나오세요...

안셀모

나의 복음 묵상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성경을 읽으면서 아주 나쁜 습관이 생긴 것을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줄거리를 알다보니 건성건성 읽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제대로 된 묵상으로 들어 갈 수가 없을 때가 많습니다.
몇일 전부터 매일 복음 말씀을 영어와 병행하여 읽기 시작했습니다.
영어 단어 하나하나의 뜻을 헤아랄 수 밖에 없기에 원문에 충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또 다른 느낌하나...
말 또는 문자 자체에 얽매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공부,
성경에 관한 지식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닐진데...
하느님께서 문자를 통해 제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정신은 온데간데 없고
말꼬투리만 잡고 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 성인의 권고 말씀을 옮겨 봅니다.

사도가 말합니다: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사람을 살립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받고
또한 친척이나 친구들에게 줄 많은 재물을 획득하려고
다만 말마디만을 배우기를 열망하는 이들은
문자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문자(성서)의 정신을 따르기 원치 않고
말마디만을 배워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해 주기를 열망하는 수도자들은
문자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알고 있는 문자나 알고 싶어하는 문자를
모두 자기 육신의 것으로 하지 않고
오히려 모든 선을 소유하시는
지극히 높으신 주 하느님께
그것들을 말과 표양으로 돌려드리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문자의 정신으로부터 생명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 나의 삶의 자리에 접지하기 ***
나는,
문자에게 죽임을 당하고 있는가?
문자의 정신으로부터 생명을 얻고 있는가?

복음 말씀의 정신으로부터 생명을 얻도록 해야겠습니다.

깨우침으로 이끌어 주시는 주님께 감사...

안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