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3월 10일 사순 제5주간 월요일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 다시 성전에 가시니 온 백성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그때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에 세워 놓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그 여자에게,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 여자가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요한 8,1-11)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오늘 복음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 예수님의 등장으로 인해 자신들의 지저분한 바닥을 낱낱이 세상 앞에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속에 든 것도 없이 괜히 무게만 잡던 자들이었기에 진리이신 예수님 앞에 전혀 게임이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만날수록 그들은 자신들의 아집, 위선, 추하고 완고한 마음을 하나하나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영혼이 다 빠져나가 버리고 껍데기만 남아있는 비참하고 허탈한 거짓 종교인의 모습을 스스로의 눈으로 확인해야만 했습니다. 얼마나 분통터지는 일이었겠습니까?
자신들이 목숨처럼 여겨왔던 계명과 율법, 예물봉헌규정, 안식일 규정 등등, 자신들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예수님 앞에서 그들은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예수님 이름만 들어도 분통이 터졌습니다.
이런 사연으로 인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시선은 오로지 예수님에게로 향하게 됩니다. 눈에 불을 켜고 예수님의 언행 하나하나를 바라봅니다. 조그마한 건수라도 생기면 즉시 예수님에게 올가미를 씌우고, 고발하고, 죽음으로 몰고 가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찾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예수님 앞으로 데려온 이유도 예수님의 고견을 경청하기 위한 것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궁지에 처한 여인이 어떻게 될 것인가는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 여인은 그저 하나의 도구였습니다. 예수님에게 올가미를 씌우고, 예수님을 골탕 먹이고, 결국 예수님을 죽음으로 몰고 갈 도구로 여인이 선택된 것입니다.
한시라도 빨리 당혹해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보고 싶었던 그들, 조금이라도 빨리 올가미에 걸려 허둥대는 예수님의 모습을 직접 보고 싶었던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 빠른 대답을 강요합니다.
진정 절대 절명의 순간이었습니다. 그 절박한 순간에 보여주신 예수님의 대응은 참으로 독특합니다.
“몸을 굽혀 땅바닥에 무엇인가를 쓰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행동은 다분히 의미심장하리라 여겨집니다. 많은 학자들이 예수님의 이 행동에 대해 깊이 묵상하고, 진지하게 탐구해왔지만 정확한 개념파악은 아직 미흡합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땅바닥에 글을 쓰시며 심사숙고하셨을 것입니다. 잠시 침묵 가운데 상황을 파악하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준비하셨을 것입니다. 짧은 순간이지만 침묵하시면서 하느님 아버지께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지혜를 청하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이윽고 고개를 드신 예수님, 안쓰럽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여인과 율법학자들을 바라보시던 예수님께서는 단 한 마디 말씀을 던지십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간단한 한 마디 말이지만 이 말씀은 한 여인을 죽음에서 구하시는 생명의 말씀이었습니다. 적대자들을 한 순간에 물리치시는 승리의 말씀이었습니다.
죽음을 향해 걸어가던 한 여인, 완전히 갈 때 까지 간 여인, 더 이상 어떻게 해 볼 수 없었던 속수무책이던 여인, 그 여인을 다시 한번 일으켜 세우시는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해방자 예수님, 새 인생을 되찾아주시는 예수님, 단죄가 아니라 위로와 격려만을 주시는 예수님, 모든 사람이 다 포기한 인생에게 조차도 희망을 두시는 예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는 ‘단죄가 아니라 구원’ 때문이라는 사실, 얼마나 감사해야 할 일인지요.
오늘도 죄 많은 여인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제 인생의 짙은 어두움을 바라봅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다 도토리 키 재기입니다. 거기서 거기입니다. 그 여인이나 저나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마치 밥 먹듯이 지어온 숱한 죄와 과오 속에 살아온 제 지난날을 돌아봅니다. 물론 정말 부끄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으로 인해 다시금 희망을 갖습니다. 우리의 죄가 진홍빛 같을지라도 죄질이나 죄 값은 뒷전이신 예수님, 오직 우리들의 해방, 구원, 영원한 생명에만 관심이 지극하신 자비의 예수님 때문에 오늘 다시 한번 힘을 내야겠습니다. 힘차게 일어서야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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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너를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제 자신의 죄 보다는 남의 죄에 대하여 더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고 단죄하려 합니다.
단죄는 하느님의 몫입니다.
예수님께서 단죄하기 보다는 구원을 위하여 오셨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죄를 뉘우치고 주님께로 돌아올 것만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마라."
*** 나의 삶의 자리에 접지하기 ***
남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교만,
참지 못하고 폭발시키는 분노,
마시기만 하면 과음하는 식탐,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잘못을 돌아보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도록 주님께 이끌어 주시길 청합니다. 아멘.
안셀모
나의 복음 묵상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제 자신의 죄 보다는 남의 죄에 대하여 더 관심이 많습니다.
그러고 단죄하려 합니다.
단죄는 하느님의 몫입니다.
예수님께서 단죄하기 보다는 구원을 위하여 오셨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해야 할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죄를 뉘우치고 주님께로 돌아올 것만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마라."
*** 나의 삶의 자리에 접지하기 ***
남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교만,
참지 못하고 폭발시키는 분노,
마시기만 하면 과음하는 식탐,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잘못을 돌아보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도록 주님께 이끌어 주시길 청합니다. 아멘.
안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