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3월 9일 사순 제5주일
그때에 어떤 이가 병을 앓고 있었는데, 그는 마리아와 그 언니 마르타가 사는 베타니아 마을의 라자로였다.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분의 발을 닦아드린 여자인데, 그의 오빠 라자로가 병을 앓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 자매가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주님,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가 병을 앓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 말을 듣고 이르셨다. “그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 병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와 그 여동생과 라자로를 사랑하셨다. 그러나 라자로가 병을 앓고 있다는 말을 들으시고도,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머무르셨다.예수님께서는 그런 뒤에야 제자들에게, “다시 유다로 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스승님, 바로 얼마 전에 유다인들이 스승님께 돌을 던지려고 하였는데, 다시 그리로 가시렵니까?” 하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낮은 열두 시간이나 되지 않느냐? 사람이 낮에 걸어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어디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밤에 걸어 다니면 그 사람 안에 빛이 없으므로 걸려 넘어진다.”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에 이어서, “우리의 친구 라자로가 잠들었다. 내가 가서 그를 깨우겠다.”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그가 잠들었다면 곧 일어나겠지요.”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라자로가 죽었다고 하셨는데, 제자들은 그냥 잠을 잔다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제야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분명히 이르셨다. “라자로는 죽었다. 내가 거기에 없었으므로 너희가 믿게 될 터이니, 나는 너희 때문에 기쁘다. 이제 라자로에게 가자.” 그러자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가 동료 제자들에게, “우리도 스승님과 함께 죽으러 갑시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가서 보시니, 라자로가 무덤에 묻힌 지 벌써 나흘이나 지나 있었다. 베타니아는 예루살렘에서 열다섯 스타디온쯤 되는 가까운 곳이어서, 많은 유다인이 마르타와 마리아를 그 오빠 일 때문에 위로하러 와 있었다. 마르타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분을 맞으러 나가고, 마리아는 그냥 집에 앉아 있었다. 마르타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주님께서 청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지금도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하시니, 마르타가 “마지막 날 부활 때에 오빠도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마르타가 대답하였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마르타는 돌아가 자기 동생 마리아를 불러, “스승님께서 오셨는데 너를 부르신다.” 하고 가만히 말하였다.
마리아는 이 말을 듣고 얼른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 예수님께서는 마을로 들어가지 않으시고, 마르타가 당신을 맞으러 나왔던 곳에 그냥 계셨다.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으면서 그를 위로하던 유다인들은, 마리아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그를 따라갔다. 무덤에 가서 울려는 줄 알았던 것이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계신 곳으로 가서 그분을 뵙고 그 발 앞에 엎드려, “주님, 주님께서 여기에 계셨더라면 제 오빠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마리아도 울고 또 그와 함께 온 유다인들도 우는 것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북받치고 산란해지셨다. 예수님께서 “그를 어디에 묻었느냐?” 하고 물으시니, 그들이 “주님, 와서 보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흘리셨다. 그러자 유다인들이 “보시오, 저분이 라자로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몇은,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해주신 저분이 이 사람을 죽지 않게 해주실 수는 없었는가?”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속이 북받치시어 무덤으로 가셨다. 무덤은 동굴인데 그 입구에 돌이 놓여 있었다. 예수님께서 “돌을 치워라.” 하시니, 죽은 사람의 누이 마르타가 “주님,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 하였다. 예수님께서 마르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그러자 사람들이 돌을 치웠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우러러보시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제 말씀을 들어주셨으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아버지께서 언제나 제 말씀을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드린 것은, 여기 둘러선 군중이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큰소리로 외치셨다.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 그러자 죽었던 이가 손과 발은 천으로 감기고 얼굴은 수건으로 감싸인 채 나왔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그를 풀어주어 걸어가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마리아에게 갔다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본 유다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요한 11,1-45)
우리 국민들의 노령화가 점점 가속화되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가끔씩 문상을 가보면 요즘 80은 장수한 축에 끼지도 못합니다. 90 넘어 돌아가시는 분들이 수두룩합니다. 아직 생존해계시는 100세 이상의 노인들이 한국에만 1,000여명 남짓 된답니다.
세계 최고령 남자는 올해로 만 112세를 넘기신 다나베 도모지라는 할아버지랍니다. 기네스 협회 관계자가 인증서를 수여하러 가서 인터뷰를 했습니다.
“할아버지, 몇 살까지 살고 싶습니까?”
112세 된 할아버지는 거침없이 대답하셨답니다.
“영원히!”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너무 오래 살아 미안하지만, 얼른 죽고 싶지는 않습니다. 허락된다면 쭉 나가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은 누구에게나 필연적으로 찾아옵니다. 위 할아버지께서 “영원히 살고 싶다”고 하셨지만, 그분의 삶이 앞으로 며칠 남았는지 모를 일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그 어떤 것도 확실한 것이 없지만,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습니다. 그 누구든 상관없이 언젠가 반드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으며, 또한 다가오는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류역사상 그 누구도 죽음의 땅으로 한번 건너간 사람 이상 다시 이쪽 세상으로 건너오지 못했습니다.
물론 가끔씩 예외적인 상황이 없지 않았겠지요. 외관상으로는 죽은 듯했지만, 아직 완전히 목숨이 덜 떨어진 상황에서 사망진단을 내렸다가, 다시금 생명이 회복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라자로는 그런 상황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완벽하게 죽었습니다. 그래서 장례까지 치렀습니다. 염을 했고, 무덤에 묻었고, 바위로 봉하기까지 했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나 시신이 부패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라자로가 소생되는 은총을 입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죽음조차 지배하시는 전지전능하신 예수님의 모습이 돋보이는 복음입니다. 죽었던 사람도 일으키시는 능력의 주님이십니다. 썩어가는 시신을 일으켜 세우시는 재창조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창조주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생명과 죽음을 좌지우지하는 힘이 부여받으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생명 자체이실 뿐만 아니라 생명의 주관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땅에서 생명의 땅으로 건너가게 이끄시는 관문이십니다.
결국 우리가 그토록 두려워하는 죽음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삶의 이정표로 삼는 수밖에 없습니다.
라자로는 한번 소생했지만, 영원히 살지는 못했습니다. 인간의 한계와 조건을 뛰어넘지는 못했습니다. 20년, 30년이 흘러 그는 또 다시 죽음 앞에 직면하게 되었고, 자연의 순리에 따라 흙에 묻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라자로의 소생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그분은 당신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이 세상의 죽음을 물리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신의 부활로 온 세상 사람들이 죽음을 물리쳤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까지 선물로 주셨습니다.
매일 아침 우리에게 주어지는 또 다른 하루는 예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선물로 주시는 ‘작은 부활’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한 조각’입니다.
오늘 지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 하루, 감사하면서, 기뻐하면서, 찬미하면서 최대한 만끽하는 것, 그것이 생명의 주관자이신 예수님께 우리가 드릴 참된 예배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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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나의 복음 묵상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죽음'
오랜시간을 저를 음울하게 만들었고,
지금 제가 누리는 일상 속 주님의 기쁨에로 이끌어 주었던 화두입니다.
사람은 죽기 위해서 살고,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한다는 이 간단한 진리를 깨닫고는
저에게 주어진 그 순간순간을 열심히 살다보면
그냥 주어지는 주님의 평화와 기쁨...
이것이 '저 자신의 작은 부활'이 아닐까요...???
지금 이순간을 살아가는 힘이요,
이 순간순간을 부활의 삶으로 살아가는 주님의 은총입니다.
*** 나의 삶의 자리에 접지하기 ***
오늘도 내일도
주님이 라자로를 부르셨듯이
주님이 날 부르고 계심을 알아차리는 그 순간이
나 자신의 '작은 부활',
그 순간임을 알고 순간순간의 일상을 열심히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안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