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3월 12일 사순 제5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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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2일 사순 제5주간 수요일-요한 8장 31-42절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을 믿는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말 안에 머무르면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된다. 그러면 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아무에게도 종노릇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찌 ‘너희가 자유롭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십니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죄의 종이다. 종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르지 못하지만, 아들은 언제까지나 집에 머무른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 나는 너희가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알고 있다. 그런데 너희는 나를 죽이려고 한다. 내 말이 너희 안에 있을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이야기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실천한다.” 그들이 “우리 조상은 아브라함이오.” 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아브라함이 한 일을 따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너희는 지금, 하느님에게서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이야기해 준 사람인 나를 죽이려고 한다. 아브라함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너희는 너희 아비가 한 일을 따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우리는 사생아가 아니오. 우리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느님이시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하느님께서 너희 아버지시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할 것이다. 내가 하느님에게서 나와 여기에 와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다.” (요한 8,31-42)

<모든 것이 떠나간 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최근 30-40년간 우리나라의 여러 지표들을 비교 측정하는 과정에서 가장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낸 것은 너무나도 당연히 ‘경제’였습니다.

사실 30-40년 전, 지금 이맘때면 ‘춘궁기’를 보내느라 많은 사람들이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당시 상당수의 국민들이 농업에 종사했었는데, 초봄이 오면 가을에 저장해둔 양식들이 어김없이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딸린 자식들은 또 얼마나 많았습니까? 그 어떤 수를 써도 양식을 구할 수 없었던 부모님들은 산으로 들로 나갔습니다. 삼시새끼 굶지 않는 것, 그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였던 지난날들을 돌아보니 참으로 놀라운 성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경제지수 못지않게 성장을 거듭한 것이 ‘민주화’입니다. 지금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그 누구든 하고 싶은 말 자유롭게 하며 살아가지 않습니까? 그러나 불과 20년 전만 해도 암울했습니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큰코다쳤습니다. 다들 숨죽이며, 억울해도 하고 싶은 말 꾹꾹 눌러 참으며 그렇게 살아갔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사고의 틀’이란 것, ‘이념’이라는 것, ‘이데올로기’란 것이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일정한 사고의 틀에 갇히게 될 때 사람이 얼마나 우습게 되는지를 우리를 지난 역사를 통해서 잘 체험해왔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시절을 살았습니다. 극과 극을 달리는 상반된 이데올로기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오랜 세월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노예처럼 살았습니다. 끝도 없이 반복된 세뇌작업 끝에 웬만한 사람은 기계처럼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냉전체제 하에서 지속되어온 공산주의와 반공 이데올로기의 끝도 없는 대립, 그 산물이 획일화였습니다. 조금 색다른 것, 조금 다른 목소리는 용납이 되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경제개발이 최우선적 화두로 자리 잡으면서 우리 사회 안에는 자연스럽게 물질만능주의, 물신주의가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물질의 노예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영적인 것, 정신적인 것, 철학적인 것은 끼어들 틈이 없게 되었지요.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유다인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는 ‘율법’이었습니다. 율법지상주의, 율법만능주의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따로 있습니다. 우리가 목숨처럼 중요시 여기는 재산, 사실 뜬구름 같은 것입니다.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입니다.

청춘까지 바치고, 삶을 송두리째 바쳤던 이념이나 사상들도 유행처럼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죽고 못하는 사람들도 언젠가 다 떠나갑니다.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결국 모든 것이 지나가고 나면 영원한 불변의 진리이신 예수님만 남게 됩니다. 참 진리이신 예수님만 우리 앞에 서 계실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잃고, 모든 것을 다 떠나보낸 우리 앞에 그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으시는 대 자유이신 예수님께서 다가오실 것입니다.

결국 사랑만이 영원합니다. 결국 예수님만이 영원합니다. 결국 예수님의 말씀만이 영원합니다. 결국 진리 자체이신 예수님의 가르침만이 영원합니다.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해줄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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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성경 말씀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고 흔히들 말하는 것을 듣곤 합니다.

보수와 진보라는 사회적 갈등속에서 성경말씀은 이리저리 인용되고, 어느 한편의 주장을 위해 사용되는 일도 흔히 있어왔으며, 현재도 그런 것 같습니다.

위 묵상말씀에 동감을 합니다.

복음은 어떤 특정 이데올로기(사상)에 얽매인 말씀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말씀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란 이 말씀속에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영원불변한 참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란 충고의 말씀이 있다는 것을 오늘 새삼 깨닫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의 복음 묵상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는 정녕 자유롭게 될 것이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변함 없이 이랬으면 하는 것이 있다면
'자유롭고 싶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주 간단한 초식으로 가려쳐 주십니다.

진리를 알고,
그대로 살면 된다.
그런데 그 진리는 예수님 따라 살기를 하면 된다.
예수님 따라 살기를 하려면,
말씀을 새기고 그대로 살면된다.

예수님 따라 살기 흉내를 내 보았을 때,
정말 자유롭게 느꼈던 경험이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면서 외쳐 봅니다.

"나는 오늘도 또 자유롭고 싶다...!!!"

*** 나의 삶의 자리에 접지하기 ***
아직도 내 마음 속에 엉긴 채로 있는 실타래를 찾아 풀어 보자.
이것이 나를 자유롭게 하리라...아멘.

안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