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3월 30일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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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0일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요한 20,19-31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 하고 말하였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 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20,19-31)


<평생의 과제, 하느님 체험>

수도자로 살아가면서 늘 부끄럽게 생각하는 일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수도자라면 당연히 신분에 걸맞게 언제나 하느님을 눈 앞에 뵙는 듯이 살아가야 하는데,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조심조심 살아가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성체 앞에 앉아서 곰곰이 그 원인을 추적해 보았습니다. 결론은 너무도 당연하더군요. '하느님 체험'의 부족이었습니다. 소홀했던 영적 생활의 결과였습니다. 사는 데 바빴던 나머지 하느님께 나아가는 시간을 너무 많이 줄여버린 결과였습니다.

가끔씩 만나는 신자들이 자신들이 경험했던 하느님 체험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할 때마다 저는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한 가지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모두가 공평하다는 진리 말입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수도자에 대한 '특별우대'가 없습니다. 성직자라고 해서 얻게 되는 프리미엄도 없습니다. 언제까지나 육적 삶만 고집한다면, 영성생활에 우선권을 두지 않는다면 누구나 하느님 현존을 의심하는 비신자나 냉담자로 전락하게 됨을 뼈저리게 느끼며 살아갑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토마스 역시 3년여 세월을 예수님과 동고동락했던 사람이었지만 정면으로 예수님 부활을 거부합니다. 언제나 예수님과 함께 다니면서 그분의 생생한 가르침을 귀담아 들어왔던 제자였지만 그분의 현존을 의심합니다.

물론 안타깝게도 토마스는 예수님 발현 현장에 없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난 후에 뛸 듯이 기뻤습니다. 거의 제 정신들이 아니었습니다. 뒤늦게 만난 토마스를 향해 제자들은 감격에 찬 어조로 이렇게 외칩니다.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

토마스는 그들이 헛것을 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니면 '이것들이 다들 짜고 날 놀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어이! 자네들, 지금 날 놀려먹으려고 작정들 했지? 그게 말이 되나?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는 이상 죽어도 난 못 믿겠네! 그게 사실이라면 내 손에 장이라도 지지겠네!"

토마스는 예수님 부활을 극구 부인합니다. 목숨 걸고 예수님 부활을 불신하는 토마스 사도 앞에 보란 듯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토마스의 '내 눈으로 확인하지 않는 이상 죽어도 못 믿겠다'는 의혹은 어쩌면 바로 오늘 우리의 의혹입니다. 토마스의 불신은 바로 오늘 우리의 부족한 신앙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하느님 현존 체험', 신앙인들에게 있어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요소입니다. 그런데 하느님 현존 체험은 거저 주어지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하느님 현존 체험을 위한 속성 과정은 따로 없습니다. 하느님 현존 체험을 위한 족집게 과외 역시 없습니다. 오직 간절한 기도, 고통과 십자가에 대한 적극적 수용, 하느님께 대한 항구한 충실성, 하느님께서 활동하시는 순간을 끝까지 기다리는 인내심만이 하느님 현존 체험의 열쇠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영적 생활의 무미건조함 여부에 상관없이 언제나 우리 인생 여정에 함께하시고 우리 인간 역사에 활기차게 역사하시는 분임을 저는 믿습니다. 하느님은 우리 인간 개인의 행복과 불행에 상관없이 언제나 우리 삶 가운데 현존하시는 분이심을 저는 확신합니다.

오늘 하루 주님께서 우리 눈을 밝혀주시길 기원합니다. 누가 우리를 이 죽음의 계곡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구원의 주님이신지를 알게 하는 혜안을 청합니다. 누가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로 인도하는 부활의 주님이신지를 알게 하는 지혜를 청합니다.

"주님, 오늘 하루 인간적 눈을 감고 영적 눈을 뜨게 해주십시오. '괴롭다, 괴롭다' 하며 보낸 지난 세월은 지옥 같은 고통의 세월이 아니라 주님께서 늘 뒤에서 지켜주셨던 은총의 세월이었음을 인정할 줄 아는 영적 눈을 뜨게 해주십시오. 하루하루 모든 순간들은 그저 허송세월하면서 흘려보내야 할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라 금쪽 같이 소중한 순간, 부활의 기쁨을 힘차게 노래해야 하는 구원의 순간임을 알게 하여 주십시오. 가장 가까이 지내기에 어쩔 수 없이 상처를 주고받는 이웃들은 나를 성장케 하고 죽음을 넘어 부활의 기쁨으로 인도하는 가장 감사해야 할 존재임을 알게 하여주십시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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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이런 저런 이유로,

마음속의 죄를 그대로 묻으며 살아가는 모습을 제 안에서도 발견합니다.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오늘은 이 말씀이 와닿습니다.

나의 복음 묵상

“평화가 너희와 함께!"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실 때마다
무언가 잡수십니다.
그런데 오늘은 먹는 것 대신
평화를 주십니다.

그런데,
'너'에게가 아니라,
'너희'에게 라고 하십니다.

함께 하는 그곳에 주님의 평화가 함께 하십니다.
천당 입구에 이런 벤너가 걸렸다고 합니다.

"단체 입장 환영! 개인 입장 불가!"

우리 함께 가요!!!!

안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