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4월 8일 부활 제3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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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8일 부활 제3주간 화요일-요한 6장 30-3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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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군중이 예수님께 물었다. “그러면 무슨 표징을 일으키시어 저희가 보고 선생님을 믿게 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시렵니까?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그들에게 빵을 내리시어 먹게 하셨다.’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빵을 내려준 이는 모세가 아니다. 하늘에서 너희에게 참된 빵을 내려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빵이다.” 그들이 예수님께, “선생님, 그 빵을 늘 저희에게 주십시오.” 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요한 6,30-35)


<과잉친절의 하느님>

언젠가 형제들과 농가 봉사활동을 갔을 때의 일입니다. 절대로 민폐 끼치지 않으려고 점심 식사로 도시락까지 맞춰 갔었는데, 홀로 사시는 할머님, 막무가내셨습니다. 아무리 설명을 드려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저희를 위해 큰 가마솥에 밥을 지으셨는데, 뚜껑을 여는 순간, 냄새부터 다르더군요. 밥에 기름이 자르르 흘렀습니다.

후덕하신 할머님, 아니나 다를까, 밥공기 크기부터 달랐습니다. 놋쇠로 된 무거운 밥그릇은 보통 식당 공기그릇의 거의 두 배였습니다. 그런 그릇에 밥을 꽉꽉 눌러 담은 다음, 또 다시 애써 고봉으로 담으시는 것이었습니다. 거기다 껄쭉하게 잘 끓인 청국장을 큰 대접에 한 대접씩 퍼주셨습니다.

밥숟가락을 부지런히 움직여도 밥공기에 든 밥은 통 줄어들지를 않았습니다. 저희 모두는 하나같이 밥그릇, 국그릇, 비운다고 죽는 줄 알았습니다.

살았다, 이제 다 먹었다, 했는데, 비호처럼 다가오신 할머니, 어느새 제 밥그릇 안으로 밥 한 주걱을 더 얹어주시며 하시는 말씀.

“덩치는 산만한 장정들이 밥 먹는 게 통 시원찮여! ”

‘밥 고문’ 당할 당시는 물어보지도 않고 너무나 일방적인 할머니가 엄청 미웠지만, 돌아오면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게 할머님으로서는 우리 젊은이들에게 취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표현이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는 예수님도 마찬가지셨겠지요. 할머님과 비슷하셨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좋은 것을 선물하고 싶어 안달이 나신 분, 어떻게 해서든 우리를 더 잘 먹이려고, 더 많이 먹이려고, 더 좋은 것을 먹이려고 기를 쓰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도망을 가고, 우리가 외면을 해도, 어떻게 해서든 쫓아와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과잉친절’의 하느님이 우리의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희망을 주셨습니다. 기쁨을 주셨습니다. 사랑을 주셨습니다. 위로를 주셨습니다. 격려를 주셨습니다. 새 출발할 힘을 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당신이 지니셨던 모든 것을 다 내어주신 예수님, 더 이상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당신의 생명을 주십니다. 살과 피를 주십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평생토록 자비와 은총을 흘러넘치도록 베풀어주시는 풍요의 주님이 우리의 예수님이십니다. 주다주다 못해 줘서는 안 될 당신의 살과 피까지 내어놓으신 사랑의 주님이 우리의 예수님이십니다.

오늘도 매일의 성체성사를 통해 당신 사랑의 기적을 되풀이하시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가 있습니다.

당신께서 그러하셨듯이 우리 역시 가난한 이웃들과 가진 바를 관대하게 나누는 것입니다. 공동체와 형제들을 위해 아낌없이 우리의 시간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소외된 이웃들, 고통 받는 이웃들 싫다고 해도 쫓아가서 위로의 손길을 건네는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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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먹어도 배고픈 나에게..

어머니는 항상 나에게 먹는 것이 걱정이셨습니다.
나 역시 어머니만 보면 모든 것이 해결되던 일이 생각나는군요.
환갑이 넘은 나에게 밥 먹을 것을 걱정해 주시던 어머니처럼,
주님의 사랑이 어머니처럼 느껴지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복음 묵상

"생명의 빵"

예수님께서는 몸소 '생명의 빵'이 되시어 매일 저희에게로 오십니다.
영원히 오실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희들도 작으나마 또 다른 '생명의 빵'으로 살아 가도록 초대하십니다.

저는 제 주변을 살리는 '생명의 빵'으로 살아 가고 있는가,
아니면 주변을 썩게 하는 '부패된 빵"으로 살아 가는가?

*** 나의 삶의 자리에 접지하기 ***
오늘 하루 다른 사람에게 기쁨이 될 수 있다면 나의 작은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겠다.
안셀모

저두,,,,

하와이에 살고 계신 엄마와 전화를 할 때면 항상 엄마는,,
"밥먹었니??" 하는 안부로 시작하십니다.

그 말속에는 "잘지내고 있니", "건강은 괜챦니?" 등의 안부인사를 함축하고,
"먹어야 산다" 는 옛어른들의 의지가 들어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심오한 인사에, 요즘식으로,
"너무 많이 먹어으면 탈나" 식으로 짜증대꾸를 하면, 안되겠죠..
(저도 몇번 그랬지만.. ^^;)

"기름진 쌀밥"은 보리고개 시절, 아주 귀한 식량입니다.
지금은 백미만 섭취하는 것은 건강에 해로울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 귀한 식량을 안면부지의 봉사자들에게 내놓는다는 것은..
과거 어른들의 '민심'입니다.

세상이 그 뒤로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요즘처럼, "쓸까 말까, 베풀까 말까" 망설이고, 갈등하는 '민심'과는 대조적입니다.

우리 공동체에도 이런 '민심'이 넘쳐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