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7/11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양승국 신부님
7월 11일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마태오 10,16-2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어떤 고을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마태 10,16-23)
< 나만의 감실 하나 >
베네딕토 성인께서 살아가셨던 시대는 전쟁과 혼란, 그로 인한 민족들의 대이동 시대였습니다. 힘겹게 땅을 일구고 농사를 지어봐야 허사였습니다. 약탈이 수시로 반복되었습니다. 아무도 내일 일을 장담하지 못할 정도로 백성들의 삶은 불안정했습니다.
이러한 시대 베네딕토 성인은 정주(定住) 수도회를 설립함으로써 시대의 요구에 응답합니다. 높은 산 위에 견고하고 웅장한 수도원을 설립합니다. 더 이상 수도자들이 이곳 저 곳 떠돌아다니지 않고 고요하게 정진(精進)할 수 있는 관상 수도회의 기틀을 닦습니다.
베네딕토 성인이 수도회를 건립하고, 수많은 수도자들의 참된 영적 지도자로 우뚝 서기까지는 참으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만 했습니다.
때로 아무도 찾지 않는 깊은 산속 한 동굴 안에서 3년간이나 홀로 생활했습니다. 그 외로운 나날을 통해 자신의 내면 안으로 깊숙이 들어간 베네딕토는 그 안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나약한 자기 자신의 본래 모습과 대면합니다. 어둠의 세력과 맞붙어 힘겹게 싸워나갑니다. 철저한 고독과도 투쟁합니다. 이런 고통스런 과정을 통해 베네딕토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점차 확장시켜나갑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베네딕토의 삶에 매료된 입회자들이 점점 늘어나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원리원칙주의자였던 베네딕토를 견디다 못한 수도자들은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합니다. 워낙 대쪽 같던 베네딕토였기에 아직 그들의 나약함과 미성숙함을 받아들일만한 그릇이 되지 못했습니다. 베네딕토의 열성을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던지 그를 따라가지 못했던 수도자들은 독살(毒殺)까지 시도합니다. 이처럼 베네딕토 역시 흔들렸습니다. 난관 앞에 고통스러워했습니다.
이런 험난한 여정을 거치면서 베네딕토는 서서히 내공을 쌓아나가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자신의 내면 깊숙이 그 누구도 침해하지 못할 자신만의 자리를 만드는 데 성공합니다. 영혼의 바탕을 마련한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 안에 그 누구도 점령할 수 없는 견고한 성채 하나를 건설합니다. 거룩한 감실 하나를 준비합니다.
이제 베네딕토는 그 어떤 외부의 자극으로부터도 동요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어떤 풍파 앞에서도 평화를 만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자신만의 감실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뜻만 추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드디어 참 지도자, 참 스승으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내면 안에 참 평화를 확립한 베네딕토에게 있어 주변 환경은 점점 밝고 풍요롭게 변화되어 갔습니다.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 역시 평화롭게 되었고, 내적, 외적 사슬에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자신 안에 하느님의 자리를 확고하게 마련한 베네딕토에게 하느님께서는 특별한 은총을 입게 하십니다. 하느님을 향한 완전한 몰입이 가능해진 베네딕토는 그간 자신을 덮고 있던 막 하나가 사라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느님과 하나 됨을 통해 세상과도 하나 되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좋은 것으로 다가왔습니다. 모든 존재와 쉽게 화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비로운 하느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니 용서가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제대로 된 하느님 체험은 우리의 현실을 변화시킵니다. 하느님 체험은 산더미처럼 쌓인 우리들의 문제와 고통들을 하느님 자비의 바다 속으로 던져버리게 합니다.
이토록 은혜로운 하느님 체험을 거친 베네딕토였기에 만년에 다가온 죽음조차도 친구로, 은총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베네딕토는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자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하늘을 향해 두 팔을 펼쳤습니다. 선채로 열렬히 기도를 바치면서 하느님 품으로 건너갔습니다. 그는 죽음에 의해 점령당한 것이 아니라 죽음을 맞이하러 나갔습니다.
돌이켜보니 수시로 흔들리는 나약한 우리들입니다. 지나가는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심각한 상처를 받습니다. 난 데 없이 다가온 돌 하나에 죽느니 사느니 난리입니다. 외부 환경적 요인에 너무나 민감합니다. 삶이 피곤할 수밖에 없습니다. 삶이 짜증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도 베네딕토처럼 우리 내면 안에 우리만의 자리를 마련하면 좋겠습니다. 그곳에 그 누구도 아닌 하느님 그분만을 모시면 좋겠습니다. 그분께서 그 안에 굳건히 자리 잡고 계시는 한, 그 어떤 세상 풍파 앞에서도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게 될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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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나의 복음 묵상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주실 것이다."
타고난 성격 탓인지 남에게 말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말문을 터기까지는 두번의 계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첫번째는 학교를 졸업하고 먹고 살기 위해서 직업전선에 설 수 밖에 없을 때였고,
두번째가 주님을 알았을 때 입니다.
주님을 알고 나서는
내가 놀랄 정도로 용감해졌습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다니..."하면서 놀랄 때도 한두번이 아닙니다.
이제는 아예
"주님, 이렇고...저렇거던요..."하고는 하면서 별 다른 준비 없이 그 자리로 갑니다.
*** 나의 삶의 자리에 접지하기 ***
오늘도 좋은 말 골라서 하기...
안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