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9/27 토요일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양승국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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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7일 토요일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 - 루카 9,43ㄴ-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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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루카 9,43ㄴ-45)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

일설에 의하면 예로니모 사제는 세속에 몸담고 있을 때, 잘 나가던 때, 휘황찬란했던 날들의 기억을 떨치기 위해 성경을 펴들었고, 제대로 된 성경번역을 위해 한 평생 매진하신 교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제대로 된 성경 번역작업을 위해 오랫동안 그 어려운 히브리어 공부에 매진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넘실거리며 다가오는 유혹의 높은 파도가 다가올 때 마다 예로니모는 성경을 펴들었습니다. 성서 번역과 연구는 예로니모의 본업이자 아르바이트, 특기이자 취미였습니다. 하루 온 종일 성서에 매달렸었는데, 잠깐의 휴식은 다름 아닌 성경읽기였습니다.

탁월한 언어감각을 지니고 있었던 예로니모는 라틴어뿐만 아니라 그리스어, 히브리어에 능통했습니다. 대단했던 어학실력을 바탕으로 그는 가톨릭교회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대대적 성경 번역 작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습니다. 장장 20여 년 동안 심혈을 기울인 끝에 히브리어 성경을 라틴어로 깔끔하게 번역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대학자였던 예로니모였지만 늘 겸손했습니다. 지극히 겸손했던 그는 사제서품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너무도 사제직에 부당하다고 생각했던지 한 동안 한사코 미사봉헌을 거절했다고 전해집니다.

예로니모는 보다 정확한 성경 번역의 필요성을 느끼고, 다시금 신구약성서에 대한 번역작업에 들어갑니다. 이를 위해 새롭게 카르데아어를 배웠고, 또 다시 20여 년 간의 세밀한 번역작업 끝에 그 유명한 불가타 성경 번역을 완성시킵니다.

예로니모의 탁월한 지적 능력, 성경에 대한 열정은 당대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사람들은 그에게 교부라는 칭호를 붙이는데 조금도 의의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대학자 예로니모였지만 그에게도 십자가는 있었습니다. 과거 영위했던 세속생활의 유혹들이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습니다. 죄책감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쉼 없이 하느님의 도움을 청했던 노력, 어려울 때 마다 인간적인 위로를 찾기보다 하느님의 보화가 담겨있는 성경으로 끊임없이 돌아가고자 했던 그 노력으로 인해 그는 끝까지 자신의 성소를 지켜나갈 수 있었습니다.

예로니모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한 가지 있습니다.

어느 날 한 마리의 사자가 절룩거리며 예로니모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앞발을 내밀었습니다. 예로니모가 자세히 보니 사자의 앞발에 커다란 가시가 박혀있었습니다. 보기가 딱했던 예로니모가 그 가시를 빼주었습니다.

사자는 너무나 기쁜 나머지 갈기로 덮여있던 자신의 머리를 예로니모의 몸에 비볐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성인의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고 전해집니다.

예로니모는 사자 같은 용기로 교회를 위해 투쟁하였습니다. 강인함으로 자신을 잘 다스렸습니다. 자신을 극기했었고, 자신의 결점이나 악습 같은 가시들을 제거하기 위해 부단히 투쟁했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성경에 대한 예로니모의 열정과 사랑이 얼마나 극진했으면, 그는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성경을 파고드십시오.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입니다. 성경을 모르는 것은 하느님의 권능도 그분의 지혜로 모르는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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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나의 복음 묵상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어쩌다보니 의도하지 않았던 지향으로 양승국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글을 퍼 옮기면서 제 자신 나름의 목상글을 댓글로 올린지도 꽤나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제 자신의 단상을 글로 쓰보자는 아주 단순한 생각으로 시작하였건만...
어떤 때는 남을 가르칠려고 하고,
어떤 때는 남을 의식하고 말에 포장을 하고 있는 저를 봅니다.

생각이 엉뚱한 데 가 있다 보니 말씀 속에 감춰진 뜻이 제대로 보일리가 없습니다.
말씀을 알아 들을 수가 없습니다.
깡통 소리가 납니다.

초심으로....

*** 나의 삶의 자리에 접지하기 ***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포장하지 않아도 되는 하루...
안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