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복음 묵상 】2월 3일 연중 제4주간 수요일…양승국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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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3일 연중 제4주간 수요일-마르코 6장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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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가셨는데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안식일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많은 이가 듣고는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 그의 손에서 저런 기적들이 일어나다니 !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 간이 아닌가 ?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에 살고 있지 않는가 ?”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서 병을 고쳐 주시는 것밖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놀라셨다. (마르 6,1-6)


<한 송이 연꽃처럼>

주님 봉헌 축일을 지내며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봉헌한다’는 말이 뜻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웃어른께 좋은 것을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선물을 드린다는 말입니다.

선물을 드릴 때는 아무것이나 드리지 않습니다. 내게 필요 없는 것이니 드리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내가 지니고 있는 것들 가운데 가장 좋은 것, 가장 가치 있는 것, 가장 의미 있는 것, 가장 흠 없는 것을 골라 드립니다.

선물한다는 것은 그냥 물건 하나를 던져주는 것이 아니지요. 내 정성을 담아, 내 마음을 담아, 내 영혼을 담아 드리는 것입니다.

돌아보니 하느님께서는 제게 과분한 정도로 많은 선물들을 주셨는데, 제게 그분께 돌려드는 것이 너무나 보잘 것 없어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제게 당신 전체를 주셨는데, 제가 드리는 것은 너무나 부분적인 것이어서 부끄러울 뿐입니다.

아담한 호수 수면 위로 탐스런 연꽃들이 몇 송이 활짝 피어올랐습니다. 한 사람은 활짝 피어난 꽃봉오리들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경탄합니다.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찬양합니다.

그러나 다른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 어여쁜 연꽃의 자태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수면 밑에 잠겨 있는 연뿌리를 생각합니다. 연뿌리 삶아먹으면 어디에 좋다던데, 저 정도면 시장에 내다팔 수 있을 텐데...

보십시오. 우리의 시선을 어디에 두냐에 따라서 우리네 삶은 천지차이입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고향으로 가셨는데, 안식일 날 회당에 들어가셔서 사람들 앞에서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말씀이 어떻게나 청산유수인지, 내용은 또 얼마나 알찬지, 그 가르침이 얼마나 정곡을 찌르는지 사람들이 경탄할 정도였습니다.

나자렛에서의 오랜 준비 끝에 이제 예수님의 삶은 어여쁜 한 송이 연꽃처럼 활짝 만개했습니다. 예수님 말씀에서는 지혜가 번뜩였습니다. 그의 언변은 그 어떤 예언자들보다 탁월했습니다. 드디어 하느님 아버지께서 열어주신 예수님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새로운 모습에 어떤 사람들은 함께 기뻐해줬습니다. 진심어린 축하의 마음을 보내주었습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고향 마을 사람들, 활짝 핀 연꽃 같은 현재 예수님의 모습은 보지 않습니다. 양부 요셉을 도와 하루 온종일 묵묵히 일하던 나자렛 청년 예수님만 기억했습니다. 그런 예수님의 놀라운 변신에 축하는커녕 예수님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었고 속상해했습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더 모든 것을 얻었을까? 저런 지혜를 어디서 받았을까?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 요세, 유다, 시몬과 형제간이 아닌가?”

이러한 관점의 차이로 인해 초래될 결과는 너무나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우리 가톨릭교회의 핵심 교리, 꽤나 복잡해보이지만 의외로 단순합니다.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메시아 하느님으로 인정하는 일,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자취를 발견하는 일, 그분께서 선포하신 말씀을 내 삶의 방향키로 삼는 일, 바로 이것입니다.

바로 이런 간단한 노력을 통해 우리 모두는 자비하신 아버지의 충만한 사랑을 얻을 수 있을뿐더러 영원한 행복의 나라를 보장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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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삶의 자리

" ... 저 사람은 목수로서 마리아의 아들이며, ..."

현실은
출신 성분이 많은 것을 결정해버린다.
이런 것들로 많은 화를 품었던 젊었던 시절이 새삼 떠오른다.
뛰어 넘기에는 너무 높은 벽은 ...
여전히 지금도 그 자리에 있다...
지금은 단지 마주했던 그 벽을 등지고 있을 따름이다.

*** 나의 삶의 자리에 접지하기 ***
순간에 충실하면서...

안셀모